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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럽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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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Apr 15. 2021

그날 아침, 드디어 로망을 실현했다.

룸서비스 조식으로 누리는 호사

아침 식사를 차리는 일이 내게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랜 자취 내공으로 토스트 하나에 좋은 치즈와 햄, 얇게 슬라이스 한 야채 혹은 과일을 금방 차려내면 그것으로 충분했으니까. 조금 더 여유 있는 주말이면 후다닥 계란을 휘저어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 수도 있고, 폭신폭신 따뜻하게 팬케이크를 구워도 된다. 오븐에 반조리 빵을 구워도 빵 향기가 솔솔 부엌에 퍼지며 행복한 아침을 맞이 할 수 있고, 캡슐 커피든 인스턴트커피든 예쁜 잔에 담아 식탁에 앉으면 훌륭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다.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는 아침 루틴이자 일상에 치여 고생하는 스스로에게 주는 간단한 선물. 아침 식사는 특히, 복잡한 조리가 필요하지 않아 내공이나 손재주보다 원재료에 맛이 좌우되는 부분이 더 크므로 누구나 맛있게 준비할 수 있는 특별 식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별 요리가 필요 없는 만큼 재료가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질 좋은 재료 구하기. 식재료가 풍부하고 저렴한 스페인에서 행복한 부분 중 하나이다. 특히 다른 건 몰라도 빵과 치즈가 필요하다. 아주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발견해서 정착한 3군데의 빵. 여전히 빵집 순례는 계속하고 있어 앞으로도 더 추가될 것 같다. 치즈는 이제 이미 잘라서 진공 포장한 슈퍼의 치즈를 사지 않는다. 치즈 섹션에 가서 커다란 덩어리를 잘라달라고 하는데, 조금 더 비싸도 그 가격을 한다. 아니 가격의 차이보다 맛의 차이가 월등하기에 이젠 무조건 치즈가게의 치즈를 먹게 되었다. 우리 집 최고 미식가는 두 아기들인데, 아이들은 그런 차이를 기가 막히게 안다. 조금 더 말랑말랑하고, 조금 더 풍미가 좋고, 조금 더 신선한 느낌이 아이들에게는 더 크게 다가오나 보다.


하루 세 끼 중 특별히 더 좋아하는 아침 식사. 그래서 오랜 시간 나의 로망 리스트에는 호텔 조식을 룸서비스로 시켜 먹는 것이 올라가 있었다. 보통의 집에서의 조식도 좋아하지만 여행 가서 먹는 '남이 차려준 조식'은 얼마나 맛있는지! 집에서 먹으면 여러 가지를 조금씩 먹기는 어려운데, 호텔에 가면 팔레트처럼 향연이 펼쳐져 있지 않나. 어찌나 푸짐하고 알록달록 다채로운지 그냥 보고 먹기에만 아쉬워 꼭 사진을 찍어 남겨 두는 그곳. 행복하게 이것저것 담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난 줄도 모르는 즐거운 시간. 갓 구운 빵에 버터를 듬뿍 바르고 재료 하나씩 올려 먹는 재미, 에그 스테이션에 가서 평소 집에서는 잘하기 어려운 수란 주문하기, 익숙한 햄 말고 프로슈토 한 장 먹어보기. 예쁘게 깍둑 썰기한 과일을 푸짐하게 샐러드로 먹기 등 나만의 아침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나 많다.


이렇게 신나는 호텔 조식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호텔 식기를 깨뜨리진 않을까. 얌전히 잘 앉아 먹을까. 외출복에 오렌지 주스를 쏟는다던지. 큰 소리를 낸다던지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조금 더 크면 점점 좋아지겠지만 여전히 함께 우아한 아침을 먹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도는 해본다. 어느 날은 조식을 먹으러 입장했다가 5분 만에 퇴장한 적도 있다. 아기 의자가 마침 모두 사용 중이라 그랬는데, 그날은 두고두고 아쉬운 날이었다. 아침 한 끼 겨우 안 먹었을 뿐인데, 여행의 반이 날아간 기분까지 들었다. 조식 뷔페를 호텔 스테이의 하이라이트 부분으로 생각하기에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여름 포도밭 한가운데 위치한 와인잔의 넘실대는 모습과 꼭 닮은 한 호텔에서 나는 처음으로 로망을 실현했다. 이전 실패를 교훈 삼아 꼭 아침은 시켜 먹어야지. 게다가 아이가 둘이라 이 호텔에서는 테라스가 넓은 방으로 예약하길 권장했다. 그래서 방의 이름도 테라스 룸. 이곳의 특장점은 테라스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 프라이빗한 테라스에서 먹는 호텔 브런치라니 그 기억만으로 피로가 날아간다. 이제 아이들이 아기 침대를 졸업하면 언제 이런 좋은 호텔에 올 수 있겠나 싶어 하며 고른 호텔이 신의 한 수였다. 호텔의 명성만큼 훌륭했던 아침 식사. 네 가족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오랜 시간 천천히 아침을 즐겼다. 주위에 피해를 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 그랬는지 나도 모르게 여유가 생겼고 그 여유를 아이들도 느꼈는지 하나하나 맛 보여 즐거워했다. 


Marques de Riscal 테라스룸 조식


특히 따뜻한 페이스트리가 있으니 아기들에겐 아마 거의 케이크를 먹는 것처럼 신세계였을 것이다. 좋아하는 딸기를 마음껏 먹었고 멜론도 아주 달콤했다. 스페인의 샴페인 Cava도 두 잔 가져다주셨고, 갓 짜낸 오렌지 주스 또한 어찌나 향기로운지. 커피는 보온 주전자에 1리터를 가져다주셔서 두고두고 하루 종일 잘 마셨다. 탄성 터지는 바깥 풍경과 우리만의 공간. 상상했던 룸서비스 조식보다 백배는 더 근사했던 그날의 기억. 


페이스트리와 과일 샐러드


평소에 잘 접하기 어려운 음식들도 나왔다. 이곳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수제 베이컨과 특산품인 버섯. 올리브유에 강한 화력으로 볶아 준 것 같다. 베이컨은 좀 탄 것 같아 의아하기도 했지만 스페인 식당에 가면 조금 탄 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주는 것으로 보아 이것도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겠거니 하고 먹었다. 맛있었다!라는 좋은 후기면 좋겠지만 이 접시만큼은 아이들도 잘 먹지 않았다. (100% 만족하기란 이렇게 힘들다) 육가공품과 치즈도 신기했다. 스페인 답게 하몽도 나오고 초리조와 만체고 치즈도 나왔다. 저기 돼지 껍질 비주얼의 큐브는 젤리 같았다.


스페인 특산품 위주로 구성된 접시


모든 메뉴가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하나 좋은 재료를 쓴 것 같았다. 초리조에도 비린맛이 하나 없고 매콤한 맛이 의외로 입맛에 맞아 찾아먹는 메뉴가 아닌데도 모두 잘 먹었다. 슈퍼에 가면 들어보지 못한 재료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아 자꾸 먹는 것만 먹게 되는데 이렇게 새로운 재료를 접해보면 음식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기분이 들기에 익숙하지 않은 메뉴 또한 반가웠다.


그렇게 네 가족의 아침 식사를 마쳤다. 호텔 안, 그것도 객실 안에서 먹었지만 이 일련의 모든 과정이 어디 레스토랑에서 한 끼를 먹은 것 같은 만족감을 선사해주었다. 이번에도 조식을 먹지 못하려나 걱정하던 마음과는 다르게 여행 속 또 다른 여행을 선물해준 식사였다. 


로망의 실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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