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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Oct 23. 2020

엄마 반성문 (1)

모든 건 엄마 잘못이다.

에바가 9개월에 접어들면서 이유식에 들어가는 재료도 다양해졌다. 원래도 아무거나 잘 먹는 듯한 에바였지만 워낙 피부가 예민하고 알레르기 반응이 잘 나타나는 타입이었기에 항상 조심한다고 조심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일본에 오게 되면서 일본과 한국의 이유식, 아니 육아 방식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았고 일본에서는 가능한 한국에서 공수해온 의학서적, 이유식 서적과 조율해가면서 일본 소아과 의사가 시키는 데로 하려고 했다. 밀가루, 대두, 계란을 가능한 한 빨리 시도해야 나중에 알레르기 반응도 적다는 말에 7개월 즈음에 허겁지겁 소량씩 시작했고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남편과 함께였기에 어쨌든 잘 넘겼다.


오늘은 남편이 직장 상사와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한 날.

코로나도 신경 쓰였지만, 육아가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알기에 이미 일과 육아로 투잡을 뛰는 남편은 고작 하루 본인의 일정이 생겼을 뿐인데, 나에게 너무나 미안해했다. 이미 전날 저녁부터 이른 퇴근을 해서 에바를 돌보고, 오늘 아침은 한 시간이나 더 나에게 자유시간을 주는 남편.


"미안해요 최대한 빨리 올게요"


나는 확실히 쿨한 와이프 타입은 아니지만 꽁해있을 수도 없었기에,


"조심해서, 기왕 나가는 거 맛있게 먹고 즐기다 오세요"


늘 하던 데로 에바는 오전 11시 즈음 1차 낮잠에서 깨어났고 나는 이틀째 먹이는 밥새우 이유식을 덥혔다. 남편이 새우 알레르기가 있지만 부녀지간에 알레르기 품목까지 공유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했고, 한국에서 사 온 모 이유식 베스트셀러 후기 이유식 메뉴에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만들었던 것이었다.

옴뇸뇸 잘 받아먹는 내 새끼.

나는 다음 이유식 메뉴로 게살을 점찍어 뒀었기에 새우가 별 이상이 없는 것 같아 게살 손질을 시작했다. 내 발밑에서 총총 거리는 에바가 귀여워 그만 1미리 정도 쭉 찢어서 에바 입에 쏙.

옴뇸뇸 예쁘게 웃으면서 잘도 받아먹는 내 새끼.


그러다 때는 정오를 갓 넘긴 시간. 에바가 징징 대기 시작하며 내 품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벌써 졸려?"


낮잠에서 깬 지 1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의아했지만 오늘은 비 오는 날, 하루 종일 산책도 가지 못하고 남편 없이 하는 육아에 이미 지치려고 하는 타이밍이었기에 나도 그냥 에바를 침대에 눕혀버렸다.

막 내 점심을 차려서 한 숟갈 뜨고 에바를 보는데 아뿔싸. 낯익지만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그것. 에바 얼굴이 알레르기 반응으로 온통 울긋불긋하며 왼쪽 눈이 부어있었다. 에바는 간지러워서 자꾸 비비고 있었던 것인데 엄마가 그것도 몰랐던 것이다. 나는 처음 겪는 일도 아니었지만 또다시 패닉 했다.


급히 가던 소아과에 전화를 넣어 12시까지 인 줄은 알겠지만 지금 내 딸이 라잇나우 알레르기 반응이 있으니 병원에 가도 되겠냐고 물었고 나는 말 그대로 맨발을 운동화에 꾸겨넣고 풀어헤친 머리를 만질 새도 없이 내복 차림의 에바를 들쳐 매고 걸어 10분 거리에 있는 병원을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아. 또 나 때문에.'


혹자는 큰 병이 아니고 피부일뿐인데? 라고 하지만 눈에 보이는 스트레스가 나에게는 더 크게 다가왔다.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났을 때 기록을 위해 찍어놓은 사진을 나중에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만큼 가슴아프다.



"게 먹였어? 돌도 안됐는데 갑각류는 아직 빠른 거 아니야? 앞으로 갑각류, 오징어 같은 건 먹이지 마. 알레르기 검사해도 되는데 게 때문에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네. 아무튼 약은 5일 치 처방해줄 테니까 증상 없으면 안 먹여도 돼"


청진기를 갖다 대도 입안을 살펴봐도 다행히 에바는 울지 않았고 의사의 말은 그게 다였다.

참고로 일본에서 의사라는 위치는 '센세(선생님)'이라는 극존칭이 따라다니고 의대/병원 업계 내에서는 아직도 엄청난 상하 수직적이고 같은 의사들끼리도 남녀차별이 심한 낡은 시스템 속에서 보호받는 절대권력의 직업이다. 몇 년을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을, 반말을 찍찍 훈계하듯 말하는 의사의 말의 이면에 '참, 너 외국인이지? 한국에서는 돌 전에 먹이냐?(이상한 나라다)' '넌 그것도 모르냐'  같은 뉘앙스가 느껴졌지만 숨소리 헉헉 대며 달려온 엄마와는 다르게 내 품 안에서 왠지 의젓하게 있어준 에바에게 감사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누가 시킨것도 아닌 미안하다는 그 말이 이렇게 가슴 저미는 것이었을까, 나는 눈물이 났다.


단시간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끼고 다시 에바를 안고 집으로 돌아서는 길. 혼자 찔찔 짜는 엄마가 이상했는지 나를 올려다보며 팔자 눈썹을 더 늘어뜨리며 쳐다보는 에바. 그런 딸아이를 보며 나는 더 이상 울 수 없었다.

"초보 엄마가 또 실수했구나, 조심, 또 조심해야지. 엄마가 미안해, 집에 가면 재미있게 놀아줄게."



다짐을 한지 하루도 안 지났지만 나는 에바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남편 없는 지난 6개월간 대체 어떻게 혼자 에바를 돌본 걸까. 인간은 이리도 무섭게 적응을 해버린다. 세 식구 함께 산지 2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남편과 함께 하는 루틴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 나는 평소보다 몇 시간이나 더 일찍 지쳐버렸다. 에바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낮잠도 많이 자주 었고, 싫어하는 알레르기 약도 잘 먹어주었고, 듬성듬성한 치아가 매력적인 살인미소도 종종 보여주었다. 물론 여러 번 보채기도 했지만, 아기가 보채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이제야 그걸 아는데 혼자 딸아이의 짜증을 다 받아주려니 지쳐버렸나 보다. 평소보다 2시간이나 일찍 목욕을 시키고 옷을 입히는데 항상 남편이랑 둘이 매달려서 하는 이 고된 작업을 혼자 하려니 손길이 거칠었나 보다. 에바가 평소보다 더 발버둥을 치며 울어댔다. 아기 울음소리는 인간의 뇌를 엄청나게 자극한다고 한다. 멍하니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오늘은 짜증보다는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막수를 끝낸 후 나도 침대에 기어들어가고 싶었지만 주섬주섬 널브러져 있는 장난감을 주우며 하루의 마무리 일과를 ‘시작’했다.

낮버밤반 이라던가. 옛날에 어떤 방송인가 유튜브에서 들었던 용어인 것 같은데. 낮에 버럭하고 밤에 반성하는 엄마들이 늘어나고 있다던데 내가 딱 그 짝이었다. 나는 오늘 버럭은 하지 않았고 그냥 무표정했다. 피곤하고 지쳐서 리액션도 부족하고 어딘가 고장 난 선풍기처럼 아주 최소한의 바람만을 내며 가만히 에바를 '보고(look)' 있었다는 자책.


자가채점을 하자면 100점 만점에 10점 즈음이었을까, 나는 또 누가 시키지도 않은 반성을 하며 또 울컥했다.

그러고 보니 낮에 차려놓은 식탁에 식은 밥이 그대로였다.

'아. 밥을 못 먹었구나. 커피 말고 밥을 먹었어야 하는데. 한것도 없으면서 끼니를 거르다니. 나도 참.'


에바가 먹다 남긴 이유식을 뜨문뜨문 주워 먹다 보니 헛배가 불러서 정작 나 자신의 끼니를 잊었던 모양이다.

저걸 먹는 시간을 아껴 얼른 아무것도 안하고 싶었기에 그냥 냉장고에 도로 넣어버렸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 때문에 언제부턴가 입밖으로 꺼내보지도 못한 그 말.


“아-ㄱ 힘들어죽겠다!”


이렇게 찔찔이가 앞으로 어떻게 우리 가족을 지킬 수 있을까. 반성의 루프를 멈추지 못하고 눈물이 난 것에 대한 반성을 하며 반성하는 것을 또 반성했다. 엄마는 뭐가 이렇게 미안한 게 많은지. 돌이켜보면 이런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덧 딸과 함께한 270날이 쌓였다. 딸, 이런 엄마여도 괜찮겠니?


곤히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며 반성으로 끝나는 흔한 엄마의 하루

남편한테 투덜거릴 체력도 없는데 이런 날은 어서 빨리 이불속으로 파고들어가 아무것도 하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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