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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Nov 05. 2020

남편에게 거짓말하고 누운 옆자리.

잠자리의 중요성

나는 원래 불면끼가 있는 편이다. 하고 많은 끼 중에 하필 불면끼가 있을까 싶은데, 심각한 건 아니고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많이 설치는 편이다. 현남편이자 전남친과 뉴욕을 돌며 그의 가족과 베프들을 만날 때는 여행하는 일주일 내내 거짓말 안 하고 1시간밖에 못 자고 새벽 4시에 호텔을 뛰쳐나가 맨해튼의 바를 전전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이 잠을 못 자면 어떻게 되는지 옴짝달싹도 못한 채 호텔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눈물이 나던 그때,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일본 집은 12월 한겨울에도 대개는 집 밖보다 안이 더 춥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추운 편인데, 한국식 보일러 바닥 난방이 거의 없는 데다가 새시도 없는 구조라 외풍 같은 것이 있어서 실내 공기가 실제로 더 찬 편이다. 에바가 태어나기 전에는 있는 데로 에어컨 난방모드를 켜거나 히터를 따로 구입해서 틀곤 했는데 아이가 있으니 안전이나 전자파, 습도 같은 것이 신경 쓰여 한국에서 어렵사리 온수매트를 공수했다. 유지관리가 어렵다는 리뷰에 일단 하나만 사보고 좋으면 우리 부부 침대용으로도 하나 사려고 했는데 웬걸! 장점밖에 안 보인다 이 매트. 뜨끈뜨끈한 게 너무 좋은 데, 어린아이는 자칫 저온화상을 입을 수 있다는 말에 처음 매트를 까는 날 우리 부부도 간접체험을 위해 처음으로 같이 에바와 함께 자보기로 했다. 미국인 남편은 바닥에서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체질이라 처음에는 나의 제안에 난색을 표했지만 세 식구 같이 자면 캠핑 같지 않겠냐는 나의 말에 설득당하며 우리 셋은 그렇게 동침을 했다.


에바가 새벽에 뒤척이거나 아침 첫 분유 수유와 기저귀 갈기로 일과를 시작하는 아침당번은 원래 남편인데 그날 밤은 자연스레 내가 더 반응하게 되었다. 따로 침대에서 잘 땐 일어나는 게 그렇게도 힘들더니, 에바와 함께 자며 함께 뒤척이고 함께 눈을 뜨는 것은 생각보다 덜 힘들었다.


그때의 그 느낌이 좋아서였을까, 나는 하루 더 딸아이 옆에 자게 되었다. 그 날 새벽녘 느낌이 이상해 열을 재보니 38도. 그동안 흘린 콧물이 예사롭지 않다 싶었더니 에바가 감기에 걸린 것이었다.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으나 나는 저리는 심장으로 평소보다 더 안아주고, 더 정성껏 먹여주고, 더 다정한 노래와 손길로 에바를 재웠다.


다행히 에바는 칭얼거리는 것도 줄어들고 많이 호전되어 더 이상 나의 간호는 필요치 않았지만 왠지 에바 옆에 눕고 싶었다. 에바를 간호하는 며칠 동안 사실은 내가 더 잘 잤기 때문이다. 목욕이 끝난 후 분유 라테를 원샷하고 기운이 넘치는 딸아이를 재우기에만 급급했던 지난날들과는 달리, 기분 좋게 노곤해진 딸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부드럽게 어루만지다 보니 교감이 된 것일까.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녀가 나를 그녀의 세상 전부로 보는듯한 느낌이, 너무 행복했다. 내가 불러주는 노래를 에바가 좋아한다는 걸 처음 느꼈는데, 에바도 나도 비슷한 타이밍에서 항상 스르르 눈이 감겼다. 레퍼토리는 섬집아기와 you are my sunshine의 무한반복.  


애미가 너를 필요로 해서 네 옆에 누웠다.

고가의 온수매트 덕분일 수도 있지만, 그냥 나는 딸아이의 옆에 눕는 것이 너무 좋았다.

뒹굴거리다가 내 겨드랑이 밑으로 쏙 머리를 집어넣고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그 까만 눈동자. 갓 빚어낸 것 같은 뽀오얀 얼굴. 내 가슴에 착 밀착되는 딸아이의 포동포동한 몸. 남편과 심사숙고해 고른 부드러운 아기 이불속에서 꼼지락 대는 발가락. 코골이인지 그냥 숨 쉬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들리는 새근새근 숨소리까지도.


남편과 침대에서 잘 때면 아침부터 들이부은 카페인 탓에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잠을 포기할 법한 밤에도, 그렇게 딸아이를 재우다 보면 빨려 들어가듯 나 또한 금방 잠이 잘 들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부가 따로 자는 집들이 많다고 하지만 우리는 절대 그러지 말자 다짐한 것도 있기에 에바옆에서 더 자고 싶다고, 남편이 섭섭해할까 봐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자기 피곤하잖아요, 당분간 에바도 아프고 당신 출근할 때 아침 당번 내가 보려면 에바랑 같이 자야 할 것 같아"


내 본심(?)을 알리 없는 남편은 지금까지 그러했듯 아침 당번을 자처했지만 나는 한사코 하룻밤 더 딸아이 옆에서 잠들기로 했다. 지금은 거짓말까지 해가며 딸아이 옆을 지키는 이기적인 아내이지만, 한창 잠을 못이루던 내가 남편과의 연애 초반에 남편 침대에서 거짓말처럼 숙면을 취하면서 '아, 이 사람이다'라고 느낀 적이 있다. 속궁합 같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순수하게 그의 옆에서 숙면을 취했다는 것 만으로 내 곁을 지킬 사람은 이 사람이였고, 그 선택은 옳았다. 잘못 고른 상대는 나를 병들게 하지만 잘 고른 사람은 나를 낫게 한다. 잠시 아픈 딸아이를 간호하며 누운 옆자리가, 나는 너무나 아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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