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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Dec 16. 2020

그깟 스타벅스가 뭐라고.

부정적인 사람의 전형적인 사고 회로

자유부인의 날. 남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 나는 남편이 제발 좀 나갔다오라고 하는데도 집안에서 자유부인 타임을 갖겠다고 고집하는 여자였다. 하지만 남편이 나에게 자부 타임을 주는 조건은 오로지 내가 외출할 때만 허용됐기에 원래도 활동적이지 않은 나는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였다. 남편에게도 나의 외출을 고집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공간의 구분이 없는 우리 집 특성상 한 지붕 아래에서는 쉬어도 쉬는 게 아니라 기분전환이 안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부딪히기 쉽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몇 주 전부터 신주쿠교엔(新宿御苑)에 새로 생긴 스타벅스가 그렇게 멋지다며 꼭 가보라고 했다. 내가 거기 가서 멍도 때리고 커피 한잔 마시며 책 읽거나 쉬다가 오면 기분전환이 될 거라며.

신주쿠교엔은 원래 황실의 정원으로 만들어졌을 만큼 역사도 깊고, 크기도 크고, 관리도 잘 되어있는 도쿄에서 몇 안 되는 명실상부 국민공원이다. 유료 티켓으로 입장을 할 수 있기에 요요기공원에 비하면 훨씬 깨끗하고 아름다워서 남편이 좋아하는 공원. 그 공원에 뷰가 끝내주는 스타벅스가 생겼으니 갔다 오라는 것이었다.


못 들어가면 어떡해

이게 나의 사고 회로였다. 못 들어가면 짜증 날 테니 아예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유명 맛집이 생기면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일본인들. 분명 이 스타벅스도 유명세를 치르고 있을 테니 사람들이 줄 서있을 테고, 난 또 그 안에 들어가 보겠다고 아침일찍부터 준비해서 갔는데도 이미 앞선 사람들 때문에 자리가 없으면 허무하고 짜증이 나겠지? 내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이도 싫었다.


"괜히 갔다가 못 들어가면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가 싫어."


그렇게 거절 아닌 거절을 하고 샤워를 하는데, 그런 말을 했던 나 자신에게 흠칫 놀랐다. 나는 정말 어지간히 부정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 딸이 저런 식으로 반응을 했다면 난 뭐라고 해줬을까? 내 딸이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거나 해보지도 않은 일을 지레짐작으로 겪지 않겠다고 하면 난 대단히 실망했을 것 같다. 공부는 못해도, 내 딸이 그 정도의 용기와 긍정적인 자세는 갖춘 여자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남편, 나 그냥 빨리 갔다 올게! 못 들어가면 할 수 없지!

그래, 못 먹어도 GO다. 하루하루 1% 나아지기로 하지 않았던가. 1% 나아지려면 매일 같은 것을 해서는 안되고 나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주변 사람을 바꾸거나 장소를 바꾸는 것이다. 나는 사람을 바꿀 수는 없으니 장소를 바꿔야 했다. 무조건 현관을 나서야 했다.



신주쿠교엔 근처 역에 내려서부터 나는 신이 났다. 공원에 입장하면서 스타벅스를 향하며 내심 조바심이 났지만 나는 '한 철 유행하는 그 스타벅스를 노리고 온 사람이 아니다'는 아무도 관심 없는 쿨한 척을 하며 주변 풍경도 둘러보며 총총 걸었다.

평일 아침. 거의 사람이 없는 한산한 공원.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한가로이 뒹굴거리며 책을 읽던 사람들.

스타벅스에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느려졌다.

 '아름답다. 예쁘다. 따스하다. 에바와 남편과 함께 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 자리에 앉아보고 싶네? 여기 이 나무는 정말 멋지다.'와 같은 생각들로 행복감이 느껴졌고, 사진을 찍어도 나의 느낌을 고스란히 담을 수 없었기에 두 눈으로 꼭꼭 셔터를 누르기로 했다.


아침 9시 오픈하자마자 갔을 때 스타벅스 풍경


가끔 진한 라떼가 마시고 싶을 때는 무스라떼. 분명 톨사이즈를 시켰는데 그란데적인느낌.


어쩌다 보니 생각보다 자리가 있었던 스타벅스. 일단 왔으니 앉아나 보자 싶어서 구석 한편에 자리하고 밖을 내다보았다. 예뻤다. 행복했다. 그러다가 '이깟 스타벅스가 뭐라고 난 그렇게 지레 겁을 먹었을까.' 싶어 한시간전의 내 자신이 참 한심했다. 생각보다 나는 훨씬 부정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스타벅스의 멋진 뷰를 볼 수 있는 이 자리가 차있으면 어때? 이 자리는 내 것이 아닌데. 사방이 아름다운 이곳에서, 아무 데나 앉으면 그 뷰가 내 것이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절로 들며 가게를 나와 잔디밭에 앉아보았다. 그곳은 내 생각보다 훨씬 폭닥하고 따뜻했다.




더 어렸을 때 실패를 많이 해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집안에 내가 아니어도 문제가 많아서 나는 줄곧 알아서 잘 커야 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100점이 아니어도 학업도 학교생활에서도 엄청나게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평균 80점 이상은 받아왔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곳에서만 잘하고 아닌 것은 대충 버리면서 그렇게 '평균'을 유지하는데만 급급했고 그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밑천이 드러날 때가 많았다. 그 평균은 눈속임이었고, 사회에 나와서는 디테일이 중요하다. 디테일을 잘 살리려면 말 그대로 엣지(edge)가 있어야 하는데 실패를 많이 해봐야 노하우가 생기고 구석구석 잘 갈고 닦인 뾰족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관성의 법칙때문에 살다보면 그 편안한 평균에 머물러 있는다. 더 이상 무언갈 '해볼'기회가 확 줄게 되는데, 실패를 하려면 뭐든 해봐야 한다. 정말 별것 아닌 아주 사소한 일에도 그냥 도전해보는 마음가짐, ‘ 되면   없지 그래도 해봤으니까 됐다’는 삶에 대한 태도. 언젠가 우리 에바에게 나는 따라 해 보고픈 엄마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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