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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Jan 13. 2021

육아에 분업이 답은 아니었다.

에너지 펑크 난 어느 부정적인 날에 대한 기록

작년 연말부터 굉장히 글이 안 써졌다. 작고 큰 글감은 또 많아서, 쓰다가 말고 타이틀만 써놓고 혹은 아이디어만 써놓은 임시저장 글들만 11개나 되었다. 전문 작가도 아니지만 꾸준히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니 스트레스였다. 글감은 많은데 긍정의 글은 마무리가 재미지지 못해서, 부정의 글은 판단의 잣대가 여기저기서 날아올까 봐 이래저래 주저하다 보니 진도가 안 나갔다. 제일 행복할 때가 '어쩌다가'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몰아치듯 끝까지 다 쫘-악 써졌을 때인데 그 카타르시스를 못 느끼니 쓰는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내 서랍 속 쓰다만 글들은 방치해 둔 채 하루하루 열심히만 살던 나는, 스스로가 방치된지도 모르고 있었다.


딸아이가 요 며칠 엄청나게 보챘다.

징징거리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떼도 쓰고 무언가 자기 마음대로 바로 해결되지 않으면 보챘는데, 주로 오전 시간에는 나도 상대해줄 체력과 여유가 있으니 덜 하다가 오후로 가면서 심해지는 패턴이었다면, 오전 오후 할 것 없이 조금의 빈틈만 보여도 에바의 징징거림이 내 귀를 뚫고 들어와 뇌를 자극했다.


듣기 싫었다.


며칠을 그렇게 억누르고 억누르다 에바에게 버럭 소리를 질러 버렸다.


"그만 좀 하라고! 시끄러워! 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에--------------------------------엥"


당연히 나의 날카로운 버럭에 아이는 더 크게 울었다.

소리 지르고 1초도 안되어, 아니, 이미 소리를 지르면서 후회하고 자책했지만 엎드려서 흐느껴 우는 나의 머리칼을 잡아당기는 딸아이에게 또 신경질이 나서 버럭 하고야 말았다. 겨우겨우 먹이는 이유식도 힘에 부쳐서, 할 수만 있다면 에바가 몇 번이고 떨어뜨리는 숟가락을, 나 또한 힘껏 벽에다 대고 집어던져버리고 싶었다.


엄마도 인간인지라, 엄마 마음이 참 간사하다. 한창 예쁘고 순할 때는 그렇게 힘이 나고 우리 애는 특별하다며 으쓱하더니, 자아와 고집이 좀 생기기 시작하니 '갑자기 우리 애가 왜 이럴까' 라니. 옹졸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쉽게 오고 갈 친구도, 도움받을 친정도 시댁조차 없는 상황에서 자가격리형 독박 육아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며칠이나 그랬을 까.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아이의 잠자리와 꿈나라나마 평온하게 지켜주겠노라 아이 옆에 눕는 것으로 나의 죄책감을 달랬다. 한 때는 퇴근한 남편에게 미주알고주알 이런저런 하루의 일과를 공유하며 투정도 부렸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힘에 겨웠다. 말해도 알아줄 것 같지 않다는 마음이 아마도 제일 나를 외롭게 만들었던 것 같다. 회사 업무와 에바 돌보기를 병행하며 육아에 지친 와이프까지 건사하느라 나의 '괜찮은 남편'까지 여유가 없어졌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터였다. 퇴근 후 첫인사를  'you look exhausted'로 건네는 남편의 얼굴도 지쳐있었기에 뭐라고 말을 하기 싫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부부들은 으레 싸운다고 하던데, 정말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부딪히고 서로에게 입을 닫아버리기 시작한 우리 부부였던 것이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우리는 어쩌다가 툭 튀어나온 서로의 배려 없는 한마디에 신경이 거슬렸고 짜증이 나기 시작하면서 이틀을 함구했다. 원룸에서 세 식구가 살면서 버티는 그 침묵의 시간들이란, 엄청나게 묵직한 것이었다. 나는 평소보다 더 몸과 마음이 힘들어 침대에서 나오질 못했던 것 같다. 한없이 침대 매트리스 바닥끝으로 꺼지고 있었고 나는 더더욱 꿍했다. (이제야 깨달은 거지만 PMS가 톡톡히 한몫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사소한 말다툼에 왜 이렇게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까.


분명 나에게는 육아 스트레스와는 다른 문제가 있다.

한참을 그렇게 그 어느 때보다 오버스럽게 멜랑꼴리 한 나 자신을 들여다봤다. 나는 또 '나에게'문제가 있다고, 직감적으로 알고는 있는데 그 문제의 실체가 뭔지 모를 뿐이라고 주절주절 새해를 맞이해 준비한 빨간 일기장에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건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뿐이다. 지금은 그것이 나의 사랑하는, 나의 유일한 가족- 남편이다. 타지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다 보니 혼자 살 때보다 더 외로움을 느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 역시 친구도 가족도 아무런 연고 없는 나라에 살며 나를 만나 가정을  꾸리며 남편에겐 이제 나밖에는 없다고 했다. 그런 남편과 조금이라도 사이가 틀어지거나 일상에 불협화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면 극도로 불안해지는 모양이다. 이 사람과 잘못될까 봐. 버려질까 봐. 노력하지 않은 나의 잘못으로 끝날까 봐. 그때를 대비하며 미리 슬퍼하듯, 그렇게 혼자 미리 방어기제를 발동시키며 남편도 밀어내나 보다.


남편도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이라도 한 듯, 매우 분노하며 소리쳤다.

"그래!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노력도 안 하고 잠만 자고 운동도 안 하고 맨날 퍼지고 있자, 그러자 우리!"

"맨날 타지에 와서 외롭다 그러고 이도 저도 안될 것 같고 그렇게 힘들면 차라리 어린이집에 맡기고 복직을 해!"


아이를 위한답시고 서로에게 큰소리치는 대신 침묵으로 일관하던 우리는, 남편은, 결국 나에게 소리를 쳤고, 의미가 있었을까? 에바에게만 억지웃음을 보이며 간식을 주던 나는 눈치를 보듯 시선을 회피하며 간식만 묵묵히 먹던 에바를 보고 한없이 미안한 마음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심한 욕설에 다치는 사람보다 바른말에 찔려 죽는 사람이 더 많다고. 나는 '이럴 때도 있는' 나를, 가끔은 엄마로서, 아내로서, 사회적 동물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열심히 살고 있어, 더 열심히 살라고, 노력하라고는 하지 마. 매일매일 새벽에 깨는 에바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면서 내 시간을 가지려고 하고 있고 나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나는 정말 그랬다. 새해부터는 새벽 4-5시 즈음에는 일어나 글을 쓰고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며 딸이 깨우는 아침이 아닌 내가 아침을 열고 있었고 우리 가족의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겠다고 온라인 쇼핑도 끊고 현금만 쓰겠다고 다짐하며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비록 안 들고 다니던 지갑을 들고 다니지 마자 잃어버리는 통에 수십만 원을 날리기도 하는 액땜을 해야 했지만 말이다)


결국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들로 복잡하게 얽힌 서로의 오해와 상처를 터트리고 나서야 포옹을 하며 극적으로 화해를 하고 '사랑'으로 마무리했다.

우리 부부에게 침묵은 도움이 되지 않는가 보다. 무엇보다 에바에게 또, 큰 빚을 져버렸다.



머리가 식은 지금에야 깨달은 거지만,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에바가 나를 힘들게 할 때마다 (그녀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나와 내 딸이 성장해가는 과정일 뿐.) '여기서부터는 당신이 맡아, 나는 쉴게'라고 분업을 선언할 것이 아니라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지금 좀 지쳤는데 에바를 더 잘 케어할 수 있도록 지금은 내 손을 잡아 줄래. 나와 함께 힘내서 에바랑 좋은 시간 보내자'와 같은 협업을 제안하는 것이 맞았던 것 같다.


회사에서도 그런 식으론 안 하는데-

여기 네가 좀 더해! 난 이제 간다 남은 건 네가 맡으렴! 이걸 이렇게밖에 못해? 아까 하라는 거 어떻게 됐어?

와 같은 무례함으로 회사 업무에서 동료에게 조차 하지 못할 태도로 서로에게 떠넘기듯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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