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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Nov 16. 2021

왜 엄마는 엄마가 챙겨야 해!?

기승전'소비'

우리 남편이 늘상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자기 자신을 먼저 좀 챙겨"


그럴때마다 대체 나 자신을 챙긴다는게 무엇인가 했더란다. 어쨋든 미치광이 짜증 대마왕의 시기를 거쳐 여유 좀 가져보고자 최근 두 달은 일본의 '일시보육'이라는 제도도 이용하며 나 나름의 휴식시간을 보내며 지냈다. (사실 태반은 누워만 있었던 것 같다.)

*일시보육(一時保育):가정 내에서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통원치료, 업무, 리프레쉬 등의 사유로 아이를  구립/사립 어린이집(일본에서는 보육원이라 부름) 맡기고 보육하는 제도. 각 지자체마다 이용기간과 시간은 다르며 대게 주 3회 하루 4시간에서 8시간까지 이용 가능. 가격 역시 지자체나 시설별로 다르긴 하나 대개의 경우 반일 이용 1500엔, 전일 이용 3000엔 정도.


여느 아침과 다를 것 없던 그날 아침.

그러지 않던 아이가 부쩍 새벽 1-2시면 깨서 2시간 정도 엄마 혹은 아빠와 꽁냥 대다가 자는 날이 이어져 평소보다 아침을 1시간 정도 늦게 시작한 날.


늘 그렇듯 부랴부랴 아침을 준비해 천천히 아이를 먹이고,

(내가 아침을 준비하는 것은 서둘러야 하지만, 내 아이의 식사시간은 왕처럼 여유로워야 한다!)

부랴부랴 가방을 싸고 보육원 선생님과 주고받는 교환일기를 휘갈기고 갈아입힐 옷을 준비한다.

아이의 목표 등원 시간은 9시. 나의 물리치료 예약시간도 9시.


남편이 씻는 동안 다 먹은 아이를 데리고 인형놀이를 하며 서둘러 옷을 갈아입히기 위해 기분을 맞춰준다. 요즘 여유가 좀 생겨서일까? 딸아이가 그저 예뻐 보이기만 하는 나는, 딸아이의 기분을 맞춰주다 보니 이 작은 생명체가 내 마음 한편까지 채워주는 놀라운 경험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각자의 준비가 끝난 남편과 딸아이가 집을 나서려는 시간 8:50


'... 어? 벌써 아홉 시네?'

아------악@4iojlk-#늦었다아아아%;3%&ㅆㄲㄸX13!!! 소리가 나오고 눈곱도 못 떼고 정신없이 실내용 추리닝에서 실외용 추리닝으로 갈아입는 엄마. 이건 겪어본 사람들만이 안다는 그 까먹었다는 말로도 설명이 안되는 유체이탈과도 같은거다.


왜 엄마는 아무도 안 챙겨주는 거야!
너도 아빠도 엄마가 챙겨주는 데, 왜, 엄마만, 엄마만 엄마가 챙겨야 해! 악!

알아들을리 없는 딸의 뒤에다 대고 전혀 악의도 없이 외마디 외치고는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어찌어찌 치료를 다 받고 이대로 집에 들어가긴 아쉬워 눈곱도 안 뗀 얼굴로 오랜만에 라테 값이 570엔이나 하는 동네 카페에 들어왔다. 찢어지게 가난하지 않아도 아이가 생기고 나면 자신에게 쓰는 것이 인색해지다 보니 또 '아, 또 과했나. 절약해야 하는데'라는 자괴감이 들려하는데 멋들어지게 묵직한 컵에 어여쁜 커피가 나왔다.

요 하트거품이 커피를 거의 다 마셔가는데도 없어지질 않는다. 고마워.


오랜만에 받아보는 대접. 내가 나를 챙겨주지 않아도 돈이 나 대신 챙겨주는구나. 이래서 갈 곳 없는 엄마들이 뭐가 되었든 끊임없이 쇼핑을 하나보다.



엄마가 자신을 챙긴다는 -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사는 것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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