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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Dec 07. 2021

우리 남편들의 삶은 얼마일까요?

"Is my life worth more than 1 billion?"

Is my life worth more than 1 billion?



오랜만에 에바를 재우고 마주한 남편과 나. 얼마나 오랜만이었을까. 한동안은 내가 딸을 재우러 먼저 들어간 사이 남편이 운동을 가거나 거실에서 혼자 유튜브를 보며 오락거리를 즐기거나 했고 딸이 잠들고 나서도 한참을 방안에 있다가 나도 같이 잠들어 버리거나 혼자 휴대폰을 끄적이며 분리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 지붕 아래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낸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이렇게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새삼스러운 것을 보면.


오늘 밤은 술 한잔이 땡긴다는 핑계로 남편이 먼저 시작을 했다. 오랜만에 술 한잔 하며 나와 대화하고 싶단다. 음주 자체는 절대 '오랜만'이 아니지만 오랜만에 남편이 젊을 때부터 뉴욕에서 즐겨 마셨다는 위스키, 제임슨에 진져에일을 따라 마시며 정말로 우린 오래간만에 이런저런 얘기들을 두런두런 나누다가 생명보험 얘기가 나왔다.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어른이라면 응당 들어야 할 것 같은 보험 하나 없던 우리. (어른의 정의 같은, 집이나 차도 없다. 생각해보니 없는 게 더 많은 우리. 아직 애린인가.)

최근에 남편 건강의 적신호를 계기로 급히 알아보게 되었다. 젊을 때 머리 좀 컸다고 깔짝댔던 투자서에 의하면 보험은 절대 논리적인 상품이 아니며 그 돈으로 주식이나 파생상품에 투자하라! 같은 이론에 감화되어 무장하고 있었는데, 나도 가정이 생기고 보석 같은 딸아이가 생기니 변했다. 내가 어떻게 되면, 남편이 어떻게 되면... 나이를 먹어가며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이제야 느꼈는지 남편도 남은 가족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무언의 책임 같은 것이 생겼는지, 보험의 필요성을 느끼고 알아보기 시작한 지는 몇 달이 된 터였다.



발품 팔아 알아보니 대략 한 달에 한화로 20만 원가량의 돈을 부으면 80세 이전에 죽었을 경우 1억 가량의 돈이 나왔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으나 일본에서는 그랬다. 개개인의 옵션과 가입조건, 나이 등에 따라 다를 것이고 매달 붓는 보험금에 따라 다를 테지만 어쨌든 '생각보다 죽어도 받는 돈이 적네.'가 내 인상이었다. 보험 스케일이 큰 나라에서 왔으니, 남편 역시 적잖이 황당해하는 기색이었다.

"1억 받을 거면 안 드는 게 낫겠다."


그렇게 사망 시 보험금이 적니 많네를 주고받으며 역시 일본스러운, 양심에 맡기는 시스템답게 자살을 해도 보험금을 준다는 시스템에 놀라워하며 우리는 어느 가격이면 우리 죽음에 대한 적정한 보상인가에 대해 토론을 시작하던 찰나에 나는 진심을 토했다.


"그래도 내가 오늘 상담받으며 느낀 게 있어. 자기를 사랑하긴 하나 봐, 1억이 아니라 10억이라 해도 자기가 안 죽고 건강하게 오래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싶더라."
-정말? 100억이라도?

"어, 100억이든 1000억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에이, 1조라도?

"물론이지 보험금 그따위꺼! 뭣이 중헌디"

-에이, 거짓말. 5대가 먹고살 수 있는 돈인데! 난 기꺼이 죽겠어. 가족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지!


문득 요즘 시세에 정말 1조같고 5대가 먹고살수 있을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큰 돈이긴 했다.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내 남편이자 우리딸의 아빠인데. 내가 알수도 없는 다음 세대까지 먹여살릴 의무도 없을 뿐더러 1조고 뭐고 그저 건강하게 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다.


그렇게  환상속 1조의 가치를 겨가며 시시껄렁한 대화를 이어나가남편이  말에, 나도 우스갯소리로 "그래! 그럼 나도 1조를 위해 죽어줄게! 그 돈으로 잘 살아"라며 큰소리치다 눈물이  돌았다. 이런 바보같은 이야기에 왜 우냐고 남편이 당황한다. 잠깐의 상상 속에서나마 내가 지금 가족의 경제적 자유와 행복을 위해 죽음으로(?)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사랑스러운 딸의 성장을 보지도 못하고, 사랑하는 그들의 삶의 일부조차 되지 못하고 사라져야 한다는  억울했다. 어쨋거나 가설을 계속 이어나가는 남편.


"생각해봐, 나는 만약 지금 죽을병에 걸렸는데 누가 나타나서 완벽하게 고쳐주지만  밖의 보상은 없다. 하지만  병을 고치지 않고 죽는다면 1조를 주겠다고 한다면  당신과 에바를 위해 기꺼이 후자를 택하겠어. 병을 고치는 선택은...  자신이 너무 selfish   같아. hmmmm… Is my life worth more than 1 billion? I don't know..."


망치로   맞은 한 나는 생각나는데로 조잘거렸다.


"Honey, You are not living for money!
그래 자기 삶이 1조가 안될 수도 있어, 그건 아무도 모르지. 그리고 자기가 가끔은  때문에 직장에 다닐 수도 있지. 나도 그렇고. 하지만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 자기는  벌어다 주는 사람이 절대 아니야. 우리한테  주려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살아. "



내가 1조를 위해 죽는다고 상상할 때보다 남편이 selfish 하다는 말을 뱉을  이상하게  현실적으로 가슴이 아렸고 눈물이 났다. 설사 정말 그런 병에 걸린다 해도 그렇게 도와줄 지니 같은 존재는 없을 테지만 얼마전 그의 동굴속에서 웅크린 등을 봐서 였을까, 오랜만에 듣는 장난끼 가득한 그의 말이었지만 잠시라도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   없었다. 앞으로 많은  함께 하자는 나의 제안에 다시 그의 눈빛이 생기있게 반짝이길 바랐다. 미리 준비한 것도 아니었지만,   몸에 확신이  멘트이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던, 똘망똘망 동그래진 눈으로 돌아온 남편이 너스레를 떤다.

"wow... that's very logical. not that much, but 'very' logical."



이 사람을 알게 된 지 6년.

내가 처음으로 설득이란 걸 논리적으로 해본 날.


누군가를 사랑하면, 없던 논리도 생기는 모양이고, 논리는 반드시 머리에서만 나오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photo:https://www.today.com/health/elderly-married-couple-62-years-died-within-hours-each-other-1D80023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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