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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Dec 08. 2021

존재하지도 않는 네 생각에 밤잠을 설쳤어.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것.

점심을 먹고 마신 커피가 너무 진해서였을까.

아님, 아이와 잠자리에 들며 읽어주는 동화책 이야기가 셀프 자장가가 되어 내가 먼저 잠든 게 화근이었을까.

저녁 9시 즈음 잠든 거 같은데 운동을 다녀온 남편의 소리에 깬 게 11시 반.


그 뒤로 새벽녘까지 잠들지 못하며 뒤척이다가 반강제적 미라클모닝을 하기로 했다.

에바가 일어나기까지 약 2시간 남은 이때에, 조금이나마 '생산적'인 활동을 해보고자 노트북을 열었다.


나에게 그 '생산적' 활동이란, 요즘 초저녁에 잠들어 자정 즈음에 눈을 떼는 생활이 반복되면서 생각이 많아지는 고질병이 도졌는데 그 생각들의 기록을 말한다.



오늘 밤은 정말 뜬금없게도 1도 계획에 없고 희망사항에도 없었던 둘째 생각이 나서 더 잠을 못 이뤘다. 아마 대한민국 모든 며느리들이 경험한다는, 불시의 검문 '둘째는 안 가지니?'라는 시어머니의 한마디가 카톡 비디오 챗을 뚫고 날아와 내 무의식에 박혔나 보다. (바다 건너 살든 지구 반대편에 살든, 세상이 좋아진 마당에 대한민국 며느리들의 통과의례 같은 것은 늘 따라다닌다.) 애당초 의식적으로라도 그런 것들로부터 멀어지며 신경을 끄려 했건만. 신경 끄는 것이 더 신경 쓰였던 그런 밤.



원래 우리 남편은 결혼 전에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너스레를 떨어가며 아이는 일곱은 있었으면 좋겠다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연봉 얼마면 돼, 얼마면 될까!' 라며 나름 철 지난 개그도 칠 줄 아는 센스 넘치는 그였는데 지금은 본인이 먼저 '둘째는 상상도 할 수 없다'라고 학을 뗀다.

사실, 첫째를 너무 힘들게 갖고 낳은 터라 제왕절개 수술 직후 울며 남편에게 한 가장 첫마디가 '여보 미안해 나 두 번은 못하겠어' 였던지라 할 말은 없지만 막상 남편이 거부를 하니 은근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사실이다.

자식 욕심이 많았던 사람인데 막상 하나로 겪어보니 더 이상은 못해먹겠다는 그의 말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육아와 가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뜻일 테니 '괜찮은'남편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셈인데- 괜찮지 못한 와이프가 출산과 육아를 겪으며 널뛰는 호르몬 밸런스를 이기지 못하고 종종 마녀가 되니 그 히스테리를 감당하지 못해 저런 반응을 하는 것은 아닐까, 내심 찔리기도 했다.


"내 히스테리 때문이지?"

"아니야, 우리 결혼 전부터 서로 아이를 갖더라도 꼭 부부 중심의 삶을 살자고 했었잖아. 근데 지금 봐봐 완전 에바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우리 시간은 1도 없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다들 그런 거 아니겠는가. 둘은 안 키워봐서 모르겠다만 특히 처음은 누구나가 다 잘 키워보겠다는 욕심도 있을 것이고,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고, 거기다 먼 타지서 단 둘이서 고군분투하는 입장인 데다가 마침 당신의 와이프가 모성애가 차고 넘치는 사람인 것을!



그렇게 괜스레 맘 카페에 '둘째 생각 있으신 분' '둘째 어떤가요' '외동 확정' 등과 같은 글들을 찾아보는데 각자 나름의 사정과 형편에 맞게 정하는 것이겠지만 오늘따라 둘째 임신의 추천으로 그득한 댓글과 하나도 괜찮지만 지나고 보니 아쉽더라 등과 같은 댓글들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훅 와닿는 건 '외로움' '친구와 피붙이는 다르다' '가족의 완성' '둘 이상이면 지들끼리 노느라 엄마를 찾지 않으므로 오히려 육아가 쉽다'(!) 같은 키워드였다.


'외로움'과 관련해서는 사실 세상의 편견만큼 외동이라고 외로운 건 없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랬는데 외동인 친구들, 지인들과 대화를 나눠봐도 거의 대부분 동의했다. 오히려 누군가 있다가 사라지면 외롭겠지만 처음부터 외동이었고 그게 당연하게 자랐고 어른들 틈에서 크기 때문에 오히려 눈치도 빠르고, 좀 커서 사춘기를 거치면서 어차피 친구들과 밖에서 돌기 때문에 외로울 틈도 없었다고.

다만 나의 경우는 나이가 들고 아이를 낳고 나서야 그저 나를 이해해줄 친정언니(동생)가 있었으면- 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극 INFP인지라 바깥세상을 샷다운 하고 살아서 그런 걸까? 아니야, 외향적인 사람들도 외향적인 대로 내 편이랑 놀러 다닐 수 있다면 행복이 배가 되겠지? 에바는 동생이 태어난다면 엄청 잘해줄 것 같은데...'

답도 없는 상상들만 머릿속을 돌아다니며 내 인생을 반추하느라 밤을 꼴딱 지새웠다.


나 역시 딸아이로 외동 확정판결을 내렸을 때는 그럴듯한 이유를 몇 개고 댈 수 있었다. 연달아 셋까지 낳고 싶어 했던 지인이 나의 언변에 넘어가 잠시 둘째를 미뤘을 정도로, '그때의 나'는 확고한 사정과 이유가 있었고 각자 나름의 사정 때문에 단념하거나 고민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수없이 많다.


지금, '오늘의 나'는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지만 지금도 큰 틀에서 그 결심(?)에 흔들림은 없다. 주변을 둘러봐도 둘 이상을 낳는 다고 해서 그들이 무조건 사이좋게 평생 친구처럼 지내리라는 보장도 없고 지금 나 스스로가 너무나 만족하는 딸아이의 육아 성과를 둘째에게서도 낼 자신이 없기도 했다. 그리고 어쨌든 나의 사랑을 나눠가져야 하는 형제자매들의 결핍 같은 것, 둘째도 딸을 원하는 것이 불순한 동기인 것 같은 죄책감, 남편과의 잦은 투닥거림, 이미 2년 넘게 뚫려버린 나의 커리어, 점점 더 불안전하고 불확실해지는 세계에서 번식하게 되는 모순,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가장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경제적인 이유와 체력 등 대충만 떠올려봐도 꼽을 손가락이 모자라다.



이 주제야 말로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고민 같다.

혹자는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조건 가져야 한다고도 하지만 그렇게 단순히 정해야 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일명 미친 척을 하지 않으면 계속 고민만 하다가 때를 놓친다고들 하지만 궁극적으로 계기와 결과가 어떤 형태이든 '사랑의 결실'이어야 하는 존재이기에 미친 척만 갖고 될 일이던가. 사랑 없이 정할 수도, 상대 없이 이룰 수도 없는 문제이고, 무엇보다 하나를 1년 넘게 키우며 이제 막 인간의 리듬을 갖기 시작했는데 또다시 우주인과 동고동락 하며 좀비의 생활로 돌아간다는 것은 엄마들에게 상당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아무튼 고민을 하는 것에 대한 훈수는 적절히 흘려듣기로 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모두가 '내 인생'이니까 '내'가 충분히 고민하고 최선을 다해 살면서 그때의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하나든 둘이든 가족의 완성은 내가 있는 것이 완성형일 테니.



새벽녘 글을 마무리 짓고 다시 누워보는 너의 옆자리; 이 세상에 없는 둘째 고민 하다가 너의 옆이 이렇게 좋은 것을 놓칠 뻔 했다.

오늘은 눈 뜨면 엄마가 먼저 일어나서 기다렸다는 듯이 안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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