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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Jan 11. 2022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너, 나.

기적 같은 너의 사랑.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ㅇㅇ일의 기적' 이란 말이 있다. 육아가 그만큼 힘들고 고된 과정이다 보니 그런 분기점이라도 있어야 버틸 수 있는 초장거리 마라톤이기 때문이리라.


초보 엄마 딱지를 떼지 못한 나 역시 매너리즘에 빠져있다가 두 돌을 앞두고 폭발적으로 말이 트이면서 다시 한번 매일매일 새롭고 '아이가 예뻐보이는' 기적을 맛보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말 비슷한 것을 따라하는 것이 너무 신기했고, 좀 지나니 그 상황에 맞는 말을 기억해 끄집어내는 것에 놀라웠고, 더 지나서는 소유격 같은 조금 고도의 문법을 사용해가며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풀어내는 게 기특했다. 아직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사실 에바는 균형 잡히지 못한 트리링구얼 환경(일본어 60% 한국어 30% 영어 5%)에 있기에 행여 말이 늦지는 않을까, 혼란스러워 입을 다물어 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것에 비해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수다쟁이'라고 할 정도이니 내심 안심하는 중이다. (어느 교육을 봐도 엄마는 말을 줄이고 아이들에게 말을 많이 시키라고 하니, 과묵한 엄마로서는 천만다행!)


그런 에바도, 유일하게 하지 '않는' 말이 있다.

바로, "미안해."


하도 안 하니까 남편은 내가 에바를 들볶는다 생각한 건지,

"아직 모르는 게 아닐까?"

"정말 이해하고 있는 거 맞아?"

"에바가 그 말한 거 들어본 적 있는 거야?"라며 딸내미를 감싸준다.


한창 자아가 싹을 틔우고 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 나이인지라 스스로 옷 입기 같은 것을 해낼 때는 이쁘지만 무언가 본인 직성을 풀어주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화풀이도 뒤따라온다.

주로 밥 먹다가 숟가락 젓가락 떨어뜨리기(던지기의 순화된 표현), 울며 엄마 아빠 찰싹찰싹 소리 나게 때리기, 귤을 밟아 뭉개기... 등 주로 대상이 있는 화풀이이기에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행위는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싶은 나는 나름의 훈육모드로 단호하게 No!라고 한 뒤 미안해를 시키지만 저얼대 하지 않는 우리 고집쟁이 딸.


엄마의 직감으로 안다. 더 어려운 애정표현도 곧잘하는 딸이, 미안해를 몰라서 못 하는 것이 아니다. 안 하는 것이다.

아- 이게 엄마와 딸의 신경전이라는 것일까. 나를 가장 사랑하는 딸이, 내 말을 거역한다. 그게 보이니까 유치하게 나도 꼭지가 돌아간다. 이 조그만 것이 악의가 있으면 얼마나 악의가 있다고 나도 참 밴댕이 소갈딱지다. 안다. 그래도 어쩌나. 주의를 줄수록 더 약 올리듯, 2살도 채 안된 딸이 나를 째려보고 빼째라 버티는 것이 너무나 얄미운 것을. 나도 똑같이 기를 쓰고 딸에게 "'미안'하다고 해야지!"라며 채근하곤 한다.




목욕이 끝나면 늘 같은 시간, 같은 잠자리에 딸은 본인이 원하는 책을 골라온다. 이 시간만큼은 그날 딸과 얼마나 싸웠든간에 모든 것을 뒤로하고 책읽으며 꽁냥대는, 그저 포실하고 아늑한 우리만의 시간이다. 


그날 밤은 3권밖에 되지 않았다. 적은 권수를 골라오는 날은 꽤 피곤한 날인데, 나는 또 내심 일찍 자겠구나 싶어 올레! 정시 육퇴 만세를 외친 밤이었다. 마지막 앙코르까지 합쳐 야무지게 도합 5번을 읽어주고 나서야 불을 끄고 누워있는데 불현듯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도 나한테 어쩜 그렇게 미안함을 가르치려 했었던걸까.

영등포 달동네서 살던 시절. 집에 놀러오신 외할머니를 위해 사온 순대에 먼저 손댔다고 5살의 내가 문밖으로 쫓겨났던 어느 달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외동딸 버릇 나빠지지 않도록, 어른이 먼저 드시고 나서 먹어야 한다는 '예의범절'을 가르치려 하신 것이었겠지만 대문 밖에 나가 손들고 서있으라고 할 것까지 있었을까 싶다. 지금이야 벌서는 동안에도 언니 오빠들과 놀았던 재밌는 추억거리도 생각나고, 나도 엄마가 되고 나니 당시 어려운 살림을 친정엄마에게 고스란히 보여야 했던 딸로서의 엄마의 마음도 짐작이 가 애잔하다.

 

'그렇게 자란 내가 미안하다고 해야 할 상황에서 정작 미안하단 소리를 못하고 있네. 혼자 치열하게 살아내느라 방어력만 올라가서 자존심만 세졌나. 결국 다 부질없는 것이었을까.'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에서 천마를 타고 내려온 아들에게 자식을 위하는 마음으로 팥죽을 쑤어주었지만 도리어 자식이 사랑을 잃고 평생 닭이 되어 우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홀어머니처럼, 나도 딸에게 뜨거운 팥죽을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노란 수면등을 바라보며 멍때리고 있자니 갑자기 딸이 등을 휙 돌려 돌아보더니 보드랍게 살이 오른 손을 내 얼굴에 포개어온다.


-왜? 안 졸려?

"옴마 미이-야-네." (미안해)

-? 응? 갑자기 뭐가 미안해?

"에바가, 엄마,엄마, 함께, 잇슐께에. 고앤차나- 괜차나." (토닥토닥)


-... 고마워.


에바는 그 뒤로 몇 번이고 함께 있어주겠노라, 나에게 약속하고는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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