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더 예뻐졌으면

내 딸의 위대하고도 슬기로운 말, 말, 말시리즈

by 여름의summer


스토케 하이체어에서 둘째의 탁탁 거리는 소리와 냠냠 쩝쩝 소리만 들려오는 저녁 식사 시간.

몸이 힘들면 마음도 힘들어지고 한번 힘들어진 마음은 좀처럼 나을 생각을 안 하는 그런 5월이었다. 꽤나 삶이 고되었다. 하나하나 디테일을 설명하자면 유치하게 들리겠지만 육아와 가사도 힘들었을 것이고 힘들다 보면 호흡도 가팔라져 있었을 것이고 가파른 호흡에 내 몸 여기저기가 고장 났을 것이고 옆 사람에게 짜증도 많이 내고는 매일 밤 후회와 자책으로 두통을 달고 살았을 것이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모종의 일들로 인해 남편과는 대화가 단절된 지 오래이고 아무튼 내 마음은 온탕과 냉탕을 오가고 있는 어느 주간의 주말. 오늘도 변함없이 에바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다 말다를 반복하며 '가족'의 저녁식사시간이 이어져나가고 있었다.


"근데 엄마는 말이야 바꾸고 싶은 데 없어?"

-응? 무슨 말이야. 뭘 바꿔?

"아니 그냥 엄마 모습 중에 바꾸고 싶은 게 없냐고"

-모습? 엄마는 모습은 그냥 이대로 괜찮은데. 왜 엄마 모자라? 부족해?

"아니이이이.엄마가 부족하다는 게 아니고 엄마가 더 예뻐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내가 바꿔주려고"

-에바의 마법으로? 뭐야- 더 예뻐지라는 거야? 지금은 못생겼어?

"아. 니. 라. 구. 엄마는 지금도 엄청 예쁘고 멋져! 근데 더! 예뻐지고 싶으면 내가 예뻐지게 도와주려고"

-에이 뭐야 그게 그거네, 뭔데 말해봐. 엄마가 어디를 바꿨으면 좋겠어? (헉 요즘 애들도 부모 외모 따진다더니, 그런 건가? 싶어 괜스레 과장되게 내 눈을 쪽 찝어도 보고 콧대도 세워보며 물었다)


"음... 엄마는 웃으면 더 예뻐져. 엄마가 더 많이 웃으면 좋겠어."



더 이상 아이에게 할 말이 없어 꾸역꾸역 치킨을 입에 밀어 넣으며 무너지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속죄를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바라는 단 한 가지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면서도 내 욕심과 남이 세운 기준에 맞춰 하루 일과를 끝내느라 외면하고 살았다. 한창 눈물 콧물 쏟고 있는 내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남편이 묻는다.


-What about dad? Do i need to change?

"없는데?" (아빠한테는 관심 없다는 투이다)

-Not at all? ok! (이 사람, 아빠는 완벽하다고 받아들였다)

"아!"

-?

"아빠는 엄마를 지켜줘. 나는 됐어. 동생은 내가 지킬게. 내가 엄마보다 강해. 아빠는 엄마나 지켜줘"




어쩔 줄 몰라 헤매기만 하는 나에게 답을 알려주고 우리 부부의 현주소를 정확히 짚어준 다섯 살짜리 딸내미의 말을 듣고 대문자 쌍따블 T남편이 무얼 느꼈을지는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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