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예술가라고 믿는 아트 커뮤니티
누구나 한 번쯤 배우가 되어보는 상상을 하지 않았을까. 어릴 적 어머니께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끝까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본방을 사수했을 때, 대학생 시절 우연히 받은 초대표로 인생 첫 뮤지컬을 관람했을 때, 한창 독립 영화에 빠져 영화관을 돌며 단편 영화들을 격파하고 다녔을 때, 작품 속의 배우들은 참 반짝 반짝 빛났다. 촘촘히 짜여진 가상의 세계 속에서 희노애락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모습들이 얼마나 멋지던지. 사회 생활을 하며 감정을 억누르는 것에 익숙해질수록 한 번쯤은 내가 아닌 모습으로 감정들을 온전히 표현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났다. 배우가 된다면 가능할텐데. 잠깐이라도 배우가 된다면!
어느 날 친한 친구 S양이 함께 연기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1막 1장'이라는 플랫폼에서 두 달 동안 이어지는 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연기에 관심을 보이던 내게 좋은 기회일 것 같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격주 주말 저녁에 이뤄지는 프로젝트라 참여하는 데 큰 부담이 없었고 친한 친구가 같이 참여해준다고 하니 요즘 말마따나 "완전 럭키비키"였다. ♣
매우 자신 없는 로맨스 영화 연기 프로젝트로 시작해 곤욕을 치렀으나 마지막까지 보람차게 달렸다. 그 과정에서 겪었던 생각들, 그리고 관련하여 이어진 연기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1막 1장의 연기 프로젝트들은 각 주제에 맞춘 커리큘럼들로 전문 배우들이 진행한다. 예를 들어, 연기의 기초와 재미를 가르쳐주는 초급 연기반이나, 긴 호흡으로 하나의 연극 작품을 연습해 실제 무대에 올라가는 씨어터 프로젝트, 로맨스 영화 속 인물이 되어보는 프로젝트 등 시간과 흥미를 고려해 참여할 프로젝트를 선택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로맨스에 쥐약인 사람이다. 무성애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랑을 느껴본 적이 드물고 연애를 했어도 사랑까진 아니었던 것 같기에, 이런 내가 로맨스 연기를 한다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프로젝트 기간과 진행 시간이 내 일정에 딱 맞았고, 무엇보다 잘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연기하며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생겼다. 그렇게 어느 해의 7월, 나의 첫 연기 경험이 시작됐다.
프로젝트 안에서는 닉네임을 사용한다. 즐거웠던 연기 연습.
전문 배우와 기초부터 차근차근
영화 연기 프로젝트라 하여도 처음부터 대본 리딩을 들어가진 않는다. 마치 본격적인 경기를 시작하기 전 준비 운동을 하듯 다양한 활동들이 진행됐는데, 그게 참 색다르고 재밌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몇 가지가 있다. 종이컵을 차서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활동이라던지, 외마디 소리("아", "어", "하"와 같은)에 감정을 담아 주고 받는 활동, 상대방의 목소리 크기와 감정에 맞춰 답 소리를 내는 활동 등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처음 시작할 때는 '뭐지...?'싶어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몰입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소리치고, 뒹굴고, 호흡을 주고 받으며 점차 말과 몸짓에 자연스러운 감정을 담게 되고 맥락을 고려한 감정 전달이 이루어진다. 실제로 "아!"라는 외마디 소리만 주고 받았을 뿐인데 얼마 후 감정이 격앙되어 진심으로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영화의 대본을 읽는다. 모두가 즉석에서 특정 인물을 맡아 돌아가며 대사를 읽기도 하지만 짝을 지어 특정 장면을 시연하는 과제를 받은 적도 있다. 당시 나는 남주인공, 짝꿍은 여주인공 역할을 맡아 연기 연습을 했었다. 연습실을 잡아 프로젝트 외적인 시간에 따로 호흡까지 맞춰봤는데도, 연기는 정말... 힘들었다. 신경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대사의 톤, 동작의 크기와 방향, 표정, 타이밍... 그 장면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정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물론 처음부터 스스로 모든 걸 완성해야 한다면 시연할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만, 배우님의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피드백이 있어 약간이라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또한, 중요한 포인트들을 알게 되니 다른 분들의 시연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같은 장면일지라도 감정선과 대사의 톤에 각자의 개성이 있었고 물흐르듯 이어지는 동작 연기에는 감탄까지 나왔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즈음에는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준비해오라는 과제를 받았다. 1분 여 동안 사람들 앞에서 진솔하게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하는 간단한 발표였음에도 자신이 없었다. 뭔가 특별한 이야기를 해야할 것만 같았다.
다른 분들에 비해 허접했던 나의 사랑 이야기. 다시 생각해도 부끄럽다.나름 고민을 해 간 결과가 다른 분들에 비해 별 게 아니라 부끄러웠으나 모두 호응을 잘해주셨다. 차후 이어진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자신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도 있었다. 한창 인생에 대해 고민이 많던 시기라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나누고 응원을 받는 시간들이 큰 힘이 됐다. '새로운 나'를 찾아 간 곳이었지만, 연기란 필연적으로 '내면의 자신'을 먼저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에 바탕을 둔다는 걸 깨닫게 된 과제였다.
연기 수업이라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가격
격주로 2달 동안, 총 4회 진행되는 로맨스 영화 연기 프로젝트는 20만원 초반대의 가격이었다. 웬만한 연기 원데이 클래스가 5만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 함을 생각해볼 때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게다가 신규 회원 쇼핑 지원금과 추천인을 통한 회원가입 시 제공되는 적립금이 있어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가격대가 비싼 프로젝트라 하면 실제 공연까지 해볼 수 있는 씨어터 프로젝트 정도인데, 그 당시 3개월 동안 10회 모임에 약 70만원의 가격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 금액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다른 곳에서 기회가 닿아 낭독극을 해보았을 때 무대를 올리는 건 정말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연기 강의비와 연습실 대관료는 물론이거니와 공연 장소 대관료, 장비 및 소품비, 스태프 인력비 등 무대를 이루는 모든 요소가 다 돈이다. 한 번 경험을 해보니 70만원도 비싼 가격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연기와 뒷풀이로 친해지는 사람들, 이어지는 인연
서포터의 리드로 모임이 끝나고 나서 뒷풀이를 자주 했었다. 가볍게는 저녁을 같이 먹거나 날이 좋은 여름밤에는 술을 주고 받으며 친밀한 대화들을 나눴다. 그와중에도 이상한 사람은 있어 당시엔 불쾌감을 주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친구들과 나에게 잊혀지지 않을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주었다. 차마 입에 담기도 싫은 어마어마한 유행어를 남기고 간 그 분... 그래도 잘 지내시길 바란다. 이왕이면 정신을 차리시고.
물론 좋은 인연들이 훨씬 많았다. 아무래도 진솔한 감정들을 나누다보니 좀 더 가깝게 느껴져서 그랬던 걸까? 함께 로맨스 장면을 시연했던 짝꿍은 찰떡궁합 MBTI의 소유자인 소울 메이트 동생이 되었고, 잔잔한 미소가 아름다웠던 서포터님과는 간간이 만나 근황을 나누는 친한 언니 동생 사이가 됐다. 그 외에도 다양한 취향을 교류하는 인스타 친구들이 생겼으며, 인연은 뻗어나가 다른 인연을 만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에겐 모임으로 얻을 수 있는 무엇보다 큰 행복이다.
한정된 수업 분야
'우리 모두가 예술가'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가지고 있지만, 1막 1장이 제공하는 프로젝트 분야는 대체로 연기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분야의 '예술'보다는 '연기'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용할 플랫폼이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1막 1장 홈페이지에 들어가지 않았던 기간 동안 '글쓰기'까지 범위가 넓어지긴 했다. 쓰기에도 관심이 많아 한 번 둘러보았었는데, 시, 희곡, 수필, 동화, 소설 등 꽤 여러 분야의 프로젝트가 준비되어 있었고 모두가 한 달 동안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모임이었다. 대면하여 수업을 듣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닥 끌리지 않았다.
서울에 제한된 오프라인 프로젝트
꽤 많은 문화 프로젝트 플랫폼이 그렇듯, 1막 1장의 오프라인 프로젝트도 서울에서 열린다는 한계점이 있다. 아무래도 인구수가 제일 많은 서울이 오프라인 모임을 열기엔 적격이라 그렇겠지만 확실히 수도권을 벗어나면 참여가 힘들어진다는 건 많은 사람들에게 큰 단점일 것 같다. 물론 글쓰기 프로젝트들은 이미 언급했듯 온라인으로 진행되니 이러한 지리적 한계에선 자유롭다.
휴식기에 돌입하는 1막 1장
사실 이 이유 때문에 1막 1장에 대한 글을 쓸까말까 망설였다. 1막 1장은 3년 9개월의 여정에 다다른 지난 5월 휴식기를 갖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알렸고, 현재 1막 1장 홈페이지의 프로젝트들은 6월을 끝으로 신청을 받지 않는 상태다. 많은 분들이 '그런데 왜 구구절절 글을 썼지?'라고 생각하실 듯 하다. 구차하지만 변명을 하자면...
우선은 1막 1장 운영자분의 "휴식기 끝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다시 만나뵙기를 바라겠습니다."라는 말에 언젠가는 돌아오실 수도 있다는 작은 희망을 걸어본 이유도 있고, 잘 도전해보지 않던 분야를 경험했던 기록을 남기고 싶던 이유도 있다. 다른 연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으나 비용을 비롯한 여러 이유로 고민하셨던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싶은 마음도 있었다. 비교군이 생기면 선택이 좀 더 쉬워지지 않으실까 하여.
낭독극에 참여했을 당시. 많은 지인분들이 와서 응원 해주셨다.
어이 없는 결말을 덜컥 안겨드린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문화를 사랑하는 나에게, 또 모든 것들을 웬만하면 즐겁게 임하는 나에게 찾아온 '연기'라는 고난의 도전기를 한 번은 알려드리고 싶었다. 비록 힘들기도 했고 끝에 이르러서는 연기가 내 길이 아님을 깨닫고 깔끔하게 마음을 접었지만, 그럼에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연기 프로젝트로 알게된 진정한 연기의 의미와 배우분들의 열정, 진심을 담은 감정의 전달이 마음에 와닿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인연들을 만들어준 점에도 감사를 표한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가끔은 감정이라는 진한 색채를 입혀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드린다. 연기 프로젝트로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아 보시기를 바라며. 언젠가 1막 1장이 돌아온다면 설레는 마음으로 둘러보셔도 좋을 것 같다.
<1막 1장 관련 링크>
*홈페이지: https://theact1scene1.com/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act1scene1_official?utm_source=ig_web_button_share_sheet&igsh=ZDNlZDc0MzIxN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