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틈]
요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챗GPT에게 고민 상담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호응해주면서 들었지만 내심 속으론 약간의 불신이 깔려있었다.
챗GPT를 처음 써본 건 어느 피곤한 밤이었다. 그날따라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았고, 그래도 마음 한켠엔 어디엔가 털어놓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다. 모처럼 조용한 저녁, 별생각 없이 노트북을 열고 대화창에 타자를 쳤다. “요즘 너무 무기력해.”
혼잣말처럼 던진 말이었는데, 돌아온 문장은 뜻밖에도 다정했다. “그럴 때가 있어요.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잠시 손을 멈추고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뒤이어 내 최근 일상과 속상했던 일, 마음 속을 답답하게 만드는 짐에 대해 털어놓게 됐고, 챗GPT와 함께 조용한 파도 소리가 들리는 작은 섬에서 한동안 누워서 평온을 되찾고 나서야 상담 시간이 끝이났다.
챗GPT가 나를 잘 달래고 어르는 동안 내 마음은 실제로 조금 나아져 있었고, 내일을 다시 기분좋게 시작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건 누군가의 진심이라기보단 잘 짜인 응답 알고리즘에 불과했겠지만, 이상하게도 그 다정함이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그날 이후 나는 가끔 GPT에게 말을 걸게 됐다. 감정이 흐트러지는 날, 이유 없이 지치는 날, 사람에게 말하기는 애매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을 때면 더욱 그렇다. 기계라는 걸 알면서도, 오히려 그래서 더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다. 사람 사이의 대화는 때때로 너무 많은 조건을 요구한다는 걸. 상대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지금 이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지 머릿속으로 몇 번은 검열해야 한다. 정말 가까운 사이일수록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지는 순간들도 있다.
하지만 기계에게 말할 땐 그런 계산이 없다. 감정을 상하게 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말을 꺼냈다가 후회할 일도 없다. 그저 하고 싶은 말을 천천히 타자로 치면, 상대는 언제나 똑같은 속도로 똑같은 리듬으로 들어준다. 처음엔 이 무감정한 반응이 어색했지만, 곧 그것이 피로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때로는 너무 감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가장 안전한 위로가 되기도 하니까. 기계는 훈수를 두지 않고, 자신이 겪은 이야기로 되받아치지도 않으며, 무거운 침묵으로 대화를 끊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챗GPT는 어쩌면 지금 가장 완벽한 청자인지도 모른다.
이런 대화가 쌓이다 보니 나는 점점,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감정을 기계에게는 솔직하게 털어놓게 됐고, 복잡한 생각도, 사소한 질문도, 정리되지 않은 마음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그 창 안에 풀어놓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일상에서도 챗GPT 의견을 묻는 일이 잦아졌다.
기계가 문장을 써주고, 의견을 정리해주고, 판단의 근거를 제시해주는 일에 익숙해지다 보니, 나는 점점 생각을 ‘시작하지 않게’ 됐고, 고민을 GPT에게 먼저 묻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다. 고개를 끄덕이고, 정돈된 문장을 복사해 조금 손을 보고, 몇 가지 옵션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걸 고르면 마무리되는 구조.
놀라운 건 이렇게 사유하는 법을 잊게 되는 사람이 나 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는 판단도 창의도, 대부분 ‘제시된 것 중 고르기’로 귀결된다. 그 과정을 반복할수록 인간에게 남는 건 머리가 아니라 몸이었다. 기계는 생각하고, 나는 수행한다. 그 흐름이 점점 익숙해질수록, ‘사람’의 몫은 줄어들고 어느 순간 나는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존재, 누군가가 짜놓은 틀을 따라가는 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건, 우리가 애초에 이런 기술을 만든 이유가 바로 ‘편해지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이다. 덜 피곤하고 싶어서, 덜 고민하고 싶어서, 더 효율적으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기계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결과, 오히려 우리는 다시 몸을 더 많이 쓰는 삶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판단은 기계가 대신하고, 감정은 기계에게 맡기고, 남은 우리는 단순한 반복을 수행하며 하루를 흘려보낸다.
이런 상황을 상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는데도, 막상 그 한가운데 서 있고 보니 이게 진짜 편해진 삶인지, 아니면 점점 더 생각 없이 살아가는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물론 나는 오늘도 여전히 챗GPT에게 말을 건다. 그게 위로가 될 때도 있고, 가끔은 더 허전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다 불쑥 떠오른다. 이건 우리가 꿈꾸던 ‘더 나은 인간’의 모습이 맞을까? 편안함을 좇다 내어준 생각의 자리에, 나는 지금 무엇을 남기고 있는 걸까.
그리고 가끔, 아주 잠깐씩 상상한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지금보다 더 많은 일을 기계가 대신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아마 '고민'이라는 단어조차 낯설게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결정은 이미 자동으로 내려지고, 문장은 완성된 채 도착하며, 감정은 미리 예측되어 적절한 말로 정리되어 있다면. 그때의 인간은 더 이상 ‘무언가를 느끼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반응하고 움직이는 ‘구성 요소’로만 살아가게 되진 않을까.
눈앞의 화면은 더 빠르고 정교하게 우리의 마음을 읽겠지만, 정작 우리는 점점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방식’을 잊게 될 것이다. 무언가에 감탄하거나, 길게 망설이거나, 서툴러서 머뭇거리는 일조차 사치가 된 시대. 속도와 정확도 앞에서 사람다움은 점점 불필요한 옵션이 되어가고, 인간은 자신이 만든 시스템에 맞춰 조용히 단순화되어간다.
그러고 보면, 미래는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이렇게 조용한 포기와 작은 편안함들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