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틈]
어느 퇴근길에 유튜브 쇼츠를 넘기다가 김창옥 씨의 강연에서 잠깐 멈칫했다.
‘가족은 지옥이다’라는 제목의 특집에서 그는 어떤 방청객 부부의 고민을 듣고나서 “차 앞유리가 백미러보다 큰 이유는, 돌아봐야 할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조언해 줬다. 쇼츠 영상은 그렇게 끝났고 나도 갈아탈 곳이 되어 화면을 닫았다.
평범한 퇴근길이었다. 꽉 들어찬 전철 안에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끼어 서서 목적지까지 이동했고, 집에 도착한 후엔 퇴근 후 운동을 가야겠다던 다짐은 고이 접어두고 저녁을 차려 먹고 그냥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다가 잠들었다.
그런데 며칠 뒤 이 짧은 문장이 머릿속에 불쑥 떠올랐다. 그다지 거창한 문장도 아니었고, 처음 읽었을 땐 ‘그렇지 뭐’ 하고 넘겼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자꾸 떠오른다. 찾아보니 누군가 책에서도 한 이야기였다. 김창옥 씨의 멘트보단 감동이 덜하지만 멜 로빈스가 <굿모닝 해빗>이라는 책을 통해 “자동차 앞 유리가 백미러보다 더 큰 이유가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자. 뒤로 가서는 안된다. ‘앞’을 봐야 한다.”라고 얘기했다.
며칠 전,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 길에도 그 문장을 떠올릴 일이 있었다. 앞차를 따라가다가 급정거를 했는데, 백미러에 잠깐 시선이 머물던 나는 브레이크를 조금 늦게 밟았다. 다행히 부딪치진 않았지만, 괜히 놀라서 남편에게 “미안, 방금 백미러 보고 있었어” 하고 툭 내뱉었다. 그러자 남편이 “운전할 땐 앞을 봐야지”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이 묘하게 겹쳤다. 앞유리는 크고, 백미러는 작다.
나는 과거를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자기 전에 누워서 오늘 낮에 만난 누군가가 지었던 표정을 떠올려볼 때도 있고, 때로는 몇 년 전 했던 말이나 어느 날 보냈던 메시지의 단어 하나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가 있다. 과거의 한 공간으로 고스란히 돌아가 과거의 나와 과거의 어떤 사람이 했던 대화를 토씨 하나하나 복기해볼 때도 있고, 서로 언성을 높이는 장면이나 끌어안고 울고있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도 한다.
‘그때 그럴 걸 그랬나?’ ‘그랬으면 뭔가 달라졌을까?’ ‘아니, 그러지 말고 이럴걸…’ 하고 되짚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 어이가 없기도 하다. 후회와는 조금 다르다.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결국 그 당시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을 걸지도 모른다.
실제로 내가 아무리 되돌리고 떠올린다고 해도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백미러 속 장면은 계속 멀어지고, 이미 지나온 길은 다시 달릴 수 없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가끔, 너무 자주 뒤를 본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그 질문을 붙잡고 서성이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속도를 놓치게 된다.
백미러가 꼭 필요하긴 하다. 가끔은 뒤에서 오는 위험을 알려주기도 하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시선을 너무 오래 머물게 두면, 전방이 흐려진다. 그리고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운전하는 건 결국 위험한 일이다.
이 생각은 나를 삶의 다른 장면으로 이끌었다.
그날의 실수, 그 사람과의 대화, 그때 놓친 기회. 그 모든 건 내 삶의 백미러 속 장면들이다. 다시 가서 바로잡을 수는 없지만, 그때의 내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음을 잊지 말자는 다짐만 남긴다. 백미러는 작고, 앞유리는 크다. 이 비율은 이유 없이 그렇게 만들어진 게 아닐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라도 앞을 보려 한다. ‘이번 주말엔 뭐 해 먹지?’ 같은 사소한 질문부터 ‘다음 달엔 그 전시회 보러 갈까?’, ‘연말엔 짧게라도 일본 여행 다녀오자고 해야겠다’ 같은 설렘까지. 앞날을 조금씩 계획하고, 그 계획 안에 작은 기대를 넣는다. 나를 앞으로 밀어주는 건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소소한 일상의 조각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건 아니다. 가끔은 꼭 돌아봐야 할 때가 있다. 그래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도 하고, 때로는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힘이 되기도 하니까. 다만, 그 시선이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도록 조심하려고 한다. 백미러는 참고용이지, 내비게이션은 아니다.
앞유리가 크다는 건, 우리가 아직 가야 할 길이 많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앞을 보자. 조금 더 자주, 조금 더 오래.
눈을 떼지 말고. 흐릿해지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