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것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올 때

[일상의 틈]

by 여름연못

앞으로 내가 좋아하는 곡은 알람음으로 설정하지 않기로 했다. 매일 아침 눈뜨며 처음 듣는 소리가 이 음악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설정했다가 ‘웬수’가 된 음악이 벌써 몇 곡째인지… 산뜻한 팝송도, 잔잔한 피아노곡, 어릴 때 한창 좋아했던 가수의 감미로운 발라드곡도 예외는 아니다.

아침마다 듣는 그 음악은 점점 ‘기상벨’이 되고 졸지에는 그 곡이 흘러나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어거지로 몸을 일으켜야 하는 순간들이 음악에 덕지덕지 붙는다. 처음에는 좋아서, 자주 듣고 싶어서, 가까이 두고 싶어서였는데 어느 순간 음악은 더 이상 감동이 아니라 반사작용이 되고 ‘반복’과 ‘용도’에 묻혀 나의 감정도 점점 흐려진다.

심지어 결혼식 행진곡도 마찬가지다. 대학생 때 휴 잭맨이 나오는 ‘위대한 쇼맨’이라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인상 깊게 보고, 레베카 퍼거슨(극 중 제니 린드)이 부르는 ‘Never Enough’를 들으며 참 아름다운 곡이라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몇 달 내내 플레이리스트에 들어 있었고, 그 뒤로도 잊을 만하면 그 선율이 떠올라 종종 찾아 들었던 곡.

몇 년이 지나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딴 딴따단~’으로 시작하는 흔한 결혼행진곡은 하고 싶지 않다는 데 남편과 단박에 의견이 모였는데, 그때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곡도 그 곡이었다. 그 자리에서 틀어서 들려주니 남편도 마음에 들어 했고, 그날 밤엔 넷플릭스에서 위대한 쇼맨까지 같이 보면서 잘 고른 곡이라고 자찬까지 했더랬다.

감정이 너무 북받쳐서 리허설 때는 눈물도 났다. 그런데… 결혼 7년 차인 지금 돌아보니 결혼식 이후 그 곡을 단 한 번도 듣지 않았다.

그 곡을 다시 듣는 순간, 나는 하객들 앞에 선 웨딩드레스를 입은 나로 되돌아간다.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고, 어지러울 정도로 환한 조명과 정신없이 흩날리는 생화 향기, 터질듯한 긴장감에 나는 연습한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버진 로드를 가로질렀고, 박수갈채에 정신을 차렸을 땐 Never Enough의 전주가 막 끝나고 가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지금도 그 음악을 들으면 복잡 미묘한 감정이 된다. 덮어두고 싶은 흑역사랄까. 아, 물론 우아하고 천천히 Never Enough를 천천히 음미하며, 하객들의 눈길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버진로드를 걸었다고 하더라도 이 음악은 다시 듣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떤 감정은, 반복되지 않아야 오히려 더 오래 남는 법이다. 사람도, 사랑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적당한 만큼 가까울 때, 딱 거기 멈춰서 있어야 질리지 않고 서로를 존중해 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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