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 기억]
남편과 차를 타고 어딜 다녀오던 중 라디오에서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발레리’가 흘러나왔다. 따듯한 날씨에 기분이 좋은 상태였던 내가 노래를 흥얼거리자 남편이 “에이미 와인하우스 살아있었으면 명곡 더 많이 나왔을 텐데…”하고 중얼거렸다.
그날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녀는 2011년 7월 23일, 런던 캠든 타운의 자택에서 고작 스물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사고사였다.
끈질긴 파파라치들의 스토킹과 악의적 루머, 일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 등으로 술과 마약에 의존했던 그녀는 생전에 여러 차례 재활 치료를 받았고, 마지막 몇 주간은 술을 끊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속사가 강행했던 유럽 투어 첫 공연에 술에 취한 그녀가 등장했고, 사람들의 야유와 함께 공연이 급하게 취소된 지 일주일 만에 그녀는 저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그녀의 가족도, 남편도 그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녀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언론과 파파라치도 마찬가지였다. 사망한 에이미가 구급차에 실려 나가는 순간에도 파파라치들은 ‘27살의 저주(커트 코베인,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등 유명 뮤지션들이 27세에 요절하면서 생긴 일종의 괴담)’를 사진에 담기 위해 미친 듯이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아이코닉함으로 여겨지는 볼륨감 있게 높이 묶은 헤어 스타일과 두꺼운 아이라인이 사실은 그녀의 자존감이 낮아질 때마다 점점 높아지고, 점점 두꺼워진 것이라고…
두 장의 앨범이 전 세계에서 성공을 얻었던 만큼 그녀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그녀가 마지막까지도 외로웠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래전 내 안에 묻어둔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고등학생 때였다.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이 안 계시는 동안 우리 집에서 같이 공부를 하다 가곤 했던 친구가 책상 위를 기어 다니던 파리 한 마리를 아무 생각 없이 손바닥으로 쳐서 죽였다. 그 순간, 눈물이 줄줄 흘렀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즈음의 나는 벌레를 발견하면 휴지로 집어 문밖에 놔주곤 했다.
그렇다고 파리를 좋아하는 것도, 파리에게 미안한 것도 아니었다. 모기가 옆에서 성가시게 군다면 살려주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주 작고 무력한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막연하고 이상한 슬픔이었다. 한 순간에 눈앞이 새카매지고, 그 순간으로 그의 인생은 끝이 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내가 '상실'이라는 걸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었던 것 같다. 친구의 손 아래에서 어떤 존재가 사라졌고, 그 사라짐을 보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야 한다는 게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던 기억.
에이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때의 파리를 떠올렸다. 스포트라이트 아래 천천히 무너져가던 한 사람. 그리고 그 무대 뒤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굴러가는 세상. 너무 무력해서 도와줄 수 없었던 누군가를 향한 이상한 미안함.
지금의 나는, 여전히 그 감정을 잊지 못한 채 작은 상실에도 울컥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누군가의 말투, 향기, 지나가듯 들린 오래된 노래 한 소절에도 이미 지나간 존재들이 불쑥 떠오르곤 한다. 그럴 때면 마음 한켠이 어지럽고, 한동안은 내가 왜 이토록 쉽게 흔들리는 사람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감정을 너무 오래 눌러두지 않으려 한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런 순간들이 내 마음이 아직 무뎌지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믿는다. 지나간 누군가를 기억하고, 아주 잠깐이지만 그 부재에 대해 다시 슬퍼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어쩌면 지금도 내 안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지키고 있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크고 작은 상실들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오고, 세상은 여전히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무력한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다. 그 기억이 때로는 나를 울리고, 때로는 나를 다시 사람답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