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 기억]
귀찮다고 선크림을 종종 빼먹은 탓일까, 서른을 넘기면서 양쪽 광대에 기미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거울을 볼 때마다 혼잣말로 볼멘소리를 했더니 남편이 기미에 ‘직빵’이라는 비타민 앰플을 주문해 줬다.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바르니 기분 탓인진 몰라도 조금 환해진 느낌이 들어 어느 날 저녁 남편에게 “그 앰플, 효과가 좋은가 봐. 요즘 피부가 좀 다른 것 같지?”하면서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남편도 끄덕끄덕, 호응하면서 “그럼~ 이게 얼마짜린데, 비싼 값을 하네”하고 답했다. 남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별 뜻 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그 짧은 순간 둘 다 각자의 과거로 떠내려갔다 돌아와서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남편은 어릴 때 아버지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란다. “이러려고 비싼 거 사줬냐.”, 조금 더 커서는 “이러려고 비싼 학원 보냈냐”. 칭찬보다는 기대, 격려보다는 효율의 언어가 조금은 익숙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내 기억 속에서도 비슷한 말이 떠올랐다. 다섯 살, 아니면 여섯 살 쯤이었을까. 아무튼 돈과 화폐의 개념이 없을 때였다. 신발장 한편에 들어있던 빨간 비닐 노끈을 발견하곤 둘둘 말아서 인형 목에 걸고, 줄넘기인 양 뛰어 넘고, 리본 체조를 흉내내고, 조각조각 자르고… 그런 식으로 한참을 놀았다.
주방을 정리하고 나온 엄마가 그 모습을 보더니 한마디 했다. “그거 막 쓰면 안 돼. 다 돈이야, 돈.”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물건은 소중히 다뤄야 해’라는 의미였겠지만, 그 말을 들은 어린 나는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 비닐 노끈에 ‘화폐적 가치’가 있다고 믿은 거다. 어쩐지 빨갛고 예쁘더라. 그래서 신발장 안 깊숙이 들어있었구나.
노끈 = 돈. 이 단순하고 분명한 등식이 머리에 박혔다. 그날 나는 그 빨간 노끈을 다시 쭉 펴고 조심스럽게 돌돌 말아서 작은 비닐봉지에 넣고, 내 방 깊숙한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다. 가끔 서랍을 열다가 노끈이 눈에 띄면, 꺼내어 흐뭇하게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부자다.’
몇 달 뒤 어느 날, 문방구에서 사고 싶은 게 생겼을 때 그 ‘비밀 자산’을 꺼내 들고 엄마에게 갔다. “엄마, 그럼 이걸로 문방구에서 얼마나 살 수 있어요?” 기대 반, 설렘 반.
엄마는 한참 나를 보다가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OO아, 이건 돈이 아니고 그냥 노끈이야. 그냥 비닐줄.” 말문이 막혔다. 당황스러웠지만, 여전히 어렸던 나는 내가 잘못 이해했다곤 깨닫지 못했고 돈이었던 게 그냥 돈이 아니게 됐나 보다,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편으론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노끈을 더 이상 돈처럼 모시지 않았지만, 어쩐지 한동안은 버리지도 못했던 것 같다.
값어치를 따질 줄도, 계산기를 두드릴 줄도 몰랐던 시절의 나. 그 노끈을 들고 문방구에서 뭘 살 수 있을지 물었던 아이는 이제 물건 값을 따지고, 의미를 계산하고, 말 속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다른 의도를 곱씹는 어른이 됐다.
어른이 되니 나 역시 자주 같은 말을 하게 된다. “이게 얼마짜린데.” “이게 다 돈이다, 돈.” 비싸니까 더 잘 써야 하고, 비싸니까 괜히 더 속상해지고, 비싸니까 괜히 더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일들.
하지만 가끔은 생각한다. 그때의 내가 진짜 부자였던 건지도 모른다. 실제로 뭘 살 수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노끈을 몰래 꺼내어 보던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남편이 앰플에 대해 했던 말도 꼭 가격 이야기만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이게 얼마짜린데'라는 말 뒤엔, ‘그만큼의 마음을 담았다’라는 속뜻이 조용히 따라왔던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