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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summersea Jul 02. 2020

계속 실패하는 대학원생

연구가 싫다.

  나는 자연을 사랑한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자 실천하고 물과 전기를 필요 이상으로 사용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또 자가용보다 대중교통 사용과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 자연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아마 어렸을 때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나는 학원이라는 네모난 공간에서 책을 만지고 읽기보다 천장 없는 공간에서 흙을 만지고 나무 타기를 더 열심히 한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자연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었고 그런 연구자가 되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생각했던 연구자와 지금 내가 걷고 경험하고 있는 연구자의 길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봄에 나무들이 깨어나는 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조만간 따스한 봄이 오겠구나?, 새 옷을 사야 할 때가 왔네!, 벚꽃놀이 준비를 해야지!, 황사!, 아니면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질문을 해서 당황스러운가?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봄이 오면 작고 연한 연두색 잎이 거친 갈색 가지에서 까꿍~하며 피어나는 모습이 싱그러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연구를 시작함과 동시에 나무에 잎이 나기 시작하는 봄은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계절이 되어 버렸다. 나의 첫 연구 주제는 사진기를 통해 나무에 잎이 피어나는 시점을 관찰하고 잎이 나무에 얼마나 피어 있는지 추정하는 것이었다. 인턴 기간을 포함하여 약 1년 반 동안 매주 대중교통으로 편도 2시간이 걸리는 산속에서 자료를 수집했다. 대상지가 산속 어딘가이기 때문에 가끔 전력이 끊겨 자료 수집을 전혀 하지 못한 날들도 있었고 자료는 수집했지만, 카메라 렌즈에 새 배설물이 묻어 자료를 날리는 일도 있었다. 한여름에는 자료가 비어도 나무가 잎을 어느 정도 다 펼친 기간이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이른 봄에 자료가 빈다는 것은 경우가 달랐다. 나무가 잎들을 급격히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봄이 오기 시작하면 저 멀리 있는 카메라에 자료가 수집되지 않을까 봐 늘 노심초사했었다. 이 모든 마음고생 몸 고생에도 불구하고 난 해당 자료로 논문을 작성하지 못했다. 노력이 배신하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연구가 싫어졌다.


  초기 설정이 중요하다. 자료를 분석할수록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감지했다. 지금까지 했던 고생을 허투루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자료를 살릴 방안이 혹시 있지 않을까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결국 같이 연구를 진행했던 다른 연구원이 내가 수집한 자료들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나의 연구는 실패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었다. 석사과정은 연구실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대부분 2년을 기대한다. 인턴 생활을 포함에 지금까지 1년 반이 흘렀다. 이제 나는 1년이 남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나무에 잎이 나는 시기와 양을 관측한다는 것은 관측 기간이 기본 1년이라는 것과 같다. 남은 1년 동안 관측만 하면 난 언제 논문을 작성할 수 있지? 졸업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사과정으로 진학한다는 내 초기 설정이 잘못된 것일까?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대상포진에 걸리고 어릴 때부터 달고 살던 아토피마저 심해졌다. 아, 망할. 나는 연구가 싫어졌다. 


  너무 뻔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관측을 잘 못 했다면 앞으로 다른 연구자들이 어떻게 관측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자! 라는 결론을 교수님과 내렸다. 헛웃음인지 안도의 웃음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허탈하게 허허 웃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저 멀리 산속이었던 나의 대상지는 학교 코앞에 있는 나무 아래로 변경되었다. 이걸로 논문을 작성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나를 의심하며 수목 밀도가 다른 세 장소에서 새벽 5시부터 저녁 6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사진기 설정값을 달리하며 몇 주 동안 사진을 찍어댔다. 수목 밀도, 태양 위치, 그리고 하늘 (구름) 상태에 따라서 사진기 설정값이 나무를 관측하는 데 영향을 어떻게 주는지 확인하고 어떤 설정값이 가장 합리적인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결과가 어느 정도 괜찮게 나왔을 때쯤에는 의심이라는 먹구름을 걷어치우고 논문 작성만이 남은 쨍한 앞날만이 기다릴 것 같아 기분이 붕 떴었다. 하지만 인생은 생각했던 것처럼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나무 아래에서 관측한 값의 신뢰성을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 뭐라......? 라고 느꼈던 것 같다. 하늘이 무너져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기는 하지만 그 구멍이 다시 반쯤 무너진 기분이 들었다. 연구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데 '아무나'인 내가 지금 한다고 고생하는구나 싶었다. 만사 귀찮은 나는 연구가 싫어졌다.


  노력이 배신하고, 망할 놈의 연구 같고, 만사 귀찮지만 결국 난 논문을 작성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박사를 진학했다. 바보 같지 않은가? 연구가 싫은 연구자인데. 사람은 역시 망각의 동물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무언가 더 전문가적일 것 같던 박사 과정은 석사 과정과 다를 게 없었다. 여전히 계속 실패하고, 계속 엎어지고, 계속 망치고 있다. 하지만 또 계속 다시 시도한다. 수 없이 실패해도 결코 실패에 무덤덤해지지는 않는다. 실패하고 엎어질 때마다 좌절하고 우울해한다. 옆에 같이 있는 남편에게 칭얼거리고 연구가 너무 싫다고 매번 울면서 박사를 그만둘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머리를 비운다. 최근에는 반려 식물들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며 머리를 비운다. 그렇게 머리를 비우다 보면 또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게 되어 실패할 수도 있는 길을 걷게 된다....... 또 실패하겠지? 그런데 또 시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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