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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summersea Nov 12. 2020

이 보고서는 누가 다 읽나요?

보고서 작성하는 대학원생.

  연말은 보고서의 시즌이다. 프로젝트 덕에 연구를 진행할 수 있어 더없이 기쁘지만, 보고서 작성은 너무 귀찮다. 미루고 미루다 어느 날 마음을 다잡고 책상에 앉아 1년 동안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폴더 속에서 찾아 복사/붙여넣기를 수십 번 하여 200장이 넘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1년 동안 육체와 정신 건강을 갉아먹으며 얻어낸 소중한 녀석(결과)들이지만 복사/붙여넣기를 하다 보면 매번 하나의 의문점이 스쳐 지나간다.   

 

 ‘이 많은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보고서는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다른 학교 혹은 회사와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경우는 그 피곤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재촉을 받는 와중에 나도 누군가에게 재촉해야 하는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같은 학생에게 재촉할 때는 미안한 마음이 들고 회사 사장님에게 재촉할 때는 불편한 마음이 든다. 가끔 기한 내 자료를 주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을 때는 속이 타들어 간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나에게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에 최대한 이해하고자 한다.     


 ‘무슨 일이 있을 거야....... 기다려 보자. 피곤하다, 피곤해.......’     


 환경을 생각하자는 제로 웨이스트 시대에 보고서 시스템은 역행하고 있다. 인쇄물을 요청할 경우 종이 아깝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어느 한 프로젝트는 최근 5년 동안 교수님이 작성한 모든 논문을 인쇄물로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아이러니하게 추가 요청으로는 USB에 해당 인쇄물 자료를 PDF 파일로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아, 종이 아까워. 종이 아까워. 모든 논문을 뽑던 그 날은 종이가 아깝다 못해 지구에게 미안한 날이었다.


  가까운 미래에 보고서 작성 시 쪽수 제한이 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10장 미만의 보고서? 그렇게 된다면 작성자는 정말 중요한 결과만을 보여 줄 것이고 담당자는 부담 없이 보고서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인쇄물을 요청하더라도 10장 미만의 보고서라면... 지구에게 덜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다.



  

  "이번 주까지 보고서 작성해야 해. 귀찮아......."

  "아이고, 얼마큼 해놨어?"

  "제로(0). 수요일에 작성 시작이다! 보고서 작성은 이틀 이상 소요하지 않겠어!!!"

  "화이팅하셔요-"


  협동 프로젝트가 아닌 그가 부러웠다. 하지만 그 많고 많은 보고서 양을 혼자 작성해야 하는 그가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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