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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summersea Feb 08. 2021

대학원생, 학부생과 다른 게 뭔가요?

자신감.

  나는 공부를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못 했다. 초등학교 때 받아쓰기 시험을 보면 0점을 받는 날도 있었다. 너무 낮은 성적을 받으니 선생님께서 짝지가 적은 글을 똑같이 적어보라고도 하셨었다. 도전하는 자격증 시험에서도 자주 떨어졌었다. 부모님은 안 좋은 성적을 받는 나를 바라보며 혹여나 상처받고 자신감이 떨어질까 걱정하셨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나중에 스스로 상처받지 않도록 이미 안 좋은 점수를 받을 것을 기본 전재로 깔고 시험을 쳤던 기억이 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몸이 좋지 못해 공부하라는 부모님 잔소리 없이 평범한 성적으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기억상으로 공부에 흥미를 붙인 건 대학생, 학부생일 때였다.


  주관식 시험이 좋았다. 다섯 가지 보기 중 하나의 답만 존재하는 것이 힘들었다. 이 선택지도 답 같고 저 선택지도 답 같을 때가 많았다. 심지어 다섯 가지 선택지 모두가 답이 아닐 경우도 있는데 하나를 찾아내야 할 때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두 개의 답을 선택해야 하면 하나만 틀려도 문제가 틀려버리니 썩 기분이 좋지 못했다. 물론 객관식에서 이렇게 허우적거리는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공부를 못하기 때문이다. 대학교 시험은 달랐다. 질문에 당연히 교수님이 의도하신 답변이 있겠지만 방향성을 따라가거나 keyword가 있다면 부분점수를 받았다. 새하얀 백지 답안지가 너무 반가워 논리적이지 못한 흐름으로 개발새발 답안지를 작성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걸 읽으시는 교수님들은 얼마나 속이 탔을까 죄송하다). 하지만, 그 주관식 시험 덕분에 자신감이 생겨났다.


  자신감은 무서운 무기였다. 자신감을 등에 업으니 학문이 즐거웠다. 시험 준비 기간을 남들보다 길게 잡아 공부했다. 좋아하는 분야의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재미있었다. 방학 때마다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외국어 자격증, 한문 자격증, 컴퓨터 자격증, 프로그램 자격증... 도전할 때마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4학년 2학기, 졸업을 앞두고 나는 한껏 상승한 자신감을 품고 비장하게 대학원에 입학했다. 어떤 것을 주어도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연구는 답이 없다. 똑같은 자료를 널리 사용되는 방법 A와 방법 B에 대입해 보면 답이 다르다. 어느 답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어느 답이 틀린 것일까? 아무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방법 C가 발명되지만, 방법 C가 맞을 것이라곤 장담하지 못한다. 그저 논리적으로 좀 더 정답에 가까워졌을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수업 시간에 기후 모델의 역사에 관해 배운 적이 있다. 초창기 기후 모델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대기와의 관계를 1차원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난 후 좀 더 구체적인 2차원 모델이 생겨났고 또다시 수만 가지의 복잡한 공식들을 사용하여 3차원 모델이 발명되었다. 하지만 1차원 모델의 값과 이렇다 할만한 차이 없이 결과가 비슷하게 나왔다고 한다. 허탈할 수도 있겠지만 연구가 이렇다. 그저 답을 찾아갈 뿐 답은 없다.


  파도가 치는 바닷가 앞에 모래성이 지금 대학원생 신분인 나의 자신감이 아닐까 싶다. 답이 없는 연구는  와중에 복잡하게도 객관적이지만 주관적이어야 한다. 객관적이면 뻔한 연구가 되어버리고, 주관적이면 소설 같은 연구가 되어버린다. 객관성과 주관성.  마리 토끼를 균형 있게  잡아야 한다. 여기서 나는 자신감을  잃는다. 지금 사고방식이 맞는 걸까 의심을 하게 된다. 의심한다고 많은 것이 달라지지는 않지만, 여하튼 의심한다. 자신의심하는 중에 교수님께서 '아닌  같은데-'라고  마디만 건네도 자신감이 와르르 무너져 연구에 의심이 아닌 '학문이 나의 길일까' 의심하게 된다.  생각이 맞다고 확신했던 4학년 2학기, 그때의 자신감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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