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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summersea Feb 11. 2020

대학원생은 하루 종일 뭐해?

나라고 뭐 다르겠니, 똑같아.

오전 8시 30분.

  연구실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 머신 청소다. 전날 마신 커피가루들을 휴지통에 버리고 물과 커피 빈을 가득 채워준다. 촤라락 떨어지는 커피 빈 소리가 좋다. 자갈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같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은은하게 나는 커피 향을 맡으면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내린다. 이제 정말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연구실에서 가장 넓은 책상에 앉아 연구실 구경을 잠깐 한다. 변하는 것 하나 없는 연구실이지만 그냥 구경을 한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구경했는지는 기억 조차 안 난다.  


오전 8시 45분.

  메일 확인하기. 나는 퇴근과 동시에 연구실과 관련된 모든 일을 차단한다. 메일 함을 열어보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당연히 교수님은 싫어하시지만 이렇게 해야 정신 건강에 좋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아냈기 때문에 나도 고집을 부린다. 다행히 그 고집은 어느 정도 교수님께서 이해해 주셨다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 책상에 앉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메일 확인이다. 답장이 필요한 메일은 바로 답장을 하고, 시간이 필요한 메일에는 주신 메일은 읽었고 언제까지 답변을 다시 하겠다고 답장을 보낸다. 메일이 없는 아침은 평화롭다.

  

오전 9시.

  읽기. 그냥 무언가를 읽는다. 뉴스를 읽는다든가 알람 신청을 한 학술지에 관심 있는 논문 제목이 있는지 읽어본다. 그러다가 전에 연구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내용을 담고 있거나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을 발견하면 링크를 공유한다. 엄청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공유를 하는 빈도보다 받는 빈도가 더 높다. 모든 정보를 정복하고 싶지만 하루 사이에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새삼 느끼며 정보의 늪에 허우적거리다 인터넷 창을 닫는다.  


  주변 사람들과 연락하기. 좋은 아침. 오늘도 일하기 싫다. 출근과 동시에 퇴근하고 싶다. 누구 여행 가는 사람 없니? 시시콜콜한 인사를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한다. 사람들이 대부분 아침 시간에만 활발하고 시간이 지나면 모두 맡은 바 업무를 하기 위해  바빠지기 때문에 아침에 빠른 인사를 나눈다.  


  연구하기. 대학원생의 본분을 이제야 시작한다. 어제 하다 남은 업무 진행. 논문 읽기. 읽던 논문에서 논문 찾아 또 논문 읽기. 논문 쓰기. 코딩하기. 난 왜 공부를 이렇게 못할까? 한탄하기. 어쩌라는 거지? 분노하기. 쉬운 방법 없을까? 꼼수 찾기. 그런 꼼수 없어 다시 연구하기. 무한 반복이다.


오전 11시 30분.

  점심시간. 선택권은 3개다. 첫 번째는 학교 식당 (학식) 홈페이지에서 메뉴를 보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서 그나마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학식에 찾아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집에서 싸온 고구마나 냉동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연구실에서 먹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다 귀찮다. 빵 사 먹기가 있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 활동성이 떨어지다 보니 간단한 끼니를 추구하는 편이다.  


오후 12시 30분.

  오전에 했던 것을 반복한다. 연구, 연구, 그리고 연구. 가끔 연구실 미팅이나 개인적으로 잡아 둔 미팅을 진행할 때도 있다. 집중력이 떨어질 때는 오후 커피 한 잔을 더 마시거나 사놓고 읽지 못하는 책 몇 장을 읽기도 한다. 그렇게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하며 다시 현실로 돌아오곤 한다. 혹은 미뤄둔 문서작업을 한다. 문서작업이 너무 재미없어서 연구를 하고 싶게끔 만드는 원리다.  


오후 5시 30분.

  정해진 퇴근시간이다. 그렇지만 이 시간에 퇴근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 저녁을 먹고 다시 연구실로 돌아온다. 나도 그 대부분의 사람에 속한다. 연구는 사실 '끝'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시간 개념 없이 있다 보면 9시, 10시를 넘기기 쉽다. 예전에는 종종 늦은 시간까지 있었지만 요즘은 논문 출판이 코앞에 있거나 보고서 작업이 급하지 않는 한 늦은 퇴근은 피하고 싶어 한다.  


오후 7시 30분.

  퇴근 그리고 운동. 운동을 생활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평일 중 2일은 필라테스 학원을 다니고 나머지 3일은 집에서 요가를 한다. 이렇게 운동을 해도 오히려 살은 찌고 있어 놀랍다. 그리고 이렇게 운동을 해도 아픈 곳이 생기는데 안 하면 난 정말 큰일 나겠구나 생각하며 다이어트는 안 되지만 열심히 운동을 하고자 한다.  


오후 9시

  자유시간. 옛날에 상상했던 서울 생활은 퇴근 후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카페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저녁 시간을 지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9시가 돼서야 나만의 시간이 생겼고 서울에는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들이 없었다. 한 명 대학교 친구가 있지만 1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어 나의 상상 서울 생활 현실성은 0%였다. 현실적인 나의 서울 생활은 집에서 넷플릭스를 시청하거나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그쳤다. 뭐, 나쁘지 않다. 빈둥빈둥하다 12시쯤 잠에 든다.  


  대학원생이라고 특별한 건 없다. 하루하루가 반복이다. 다만, 그 반복이 언젠가 결실을 주겠지 희망하며 반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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