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에게

할머니께 처음 드린 꽃, 시 한 편

by 선여름


나의 마음속엔 꽃밭이 있습니다

그 꽃밭 앞에서 기억이라는 표를 삽니다

나는 매일 그 꽃밭을 구경합니다


그리운 음식을 먹었을 때

창밖에 비가 내릴 때

눈이 올 때, 해가 들 때

잠들기 전에도

언제나 빠짐없이 구경 갑니다


슬픈 향기가 나는 꽃도

스치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꽃도

모두 다 내가 신중히 골라 심고

정성을 쏟아 가꾼 꽃밭입니다


나는 매일 그 꽃밭을 구경합니다

예쁜 향기도 아픈 향기도

이젠 다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눈물이 나면

한아름 꼭 끌어안고 잠듭니다


물을 아무리 주어도

기억이 나지 않는 향기는 너무 그립습니다

떠올리려 해도

떠올려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도 소중했는데

그렇게도 사랑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너무도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나 봅니다

간절히 꼭 끌어안으면 기억이 날까

더 소중히, 하루마다 꽃밭에 갑니다


어떤 날은 스무 살의 나

어떤 날은 이순의 나

어떤 날은 다섯 살 나의 모습입니다

다 같은 나인데

찾게 되는 향기가 다릅니다


나는 이제 쉽게 눈물이 나고

쉽게도 웃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다 세었습니다


어느 날엔가 다섯 살의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습니다


원래 슬플 일은 많아지고

잘 웃지 않게 되는 게 어른이야

라고 말했습니다


새로 알고 궁금해지는 사람들보다

그리운 사람이 늘어가는 게 인생이라고 합니다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했던 말들이 이제 이해가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하늘을 쳐다 볼일만 늡니다

하늘에 생각을 두고 오는 건

어른들 뿐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하늘이 아무리 예뻐도

위를 올려다보지 않습니다

그 예쁜 하늘 아래에서

잘도 뛰어놉니다


엄마, 나는 이제 어른이 되었나 봅니다


나의 세상이 언제 저물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나의 꽃밭은 언제나 활짝 피어있습니다

언젠가, 어떤 이가 나의 꽃밭을 찾아줄까요?

꽃들의 시선 끝에 나는

영원히 고운 하늘입니다


그때 선명한 목소리가 내게 들렸습니다

‘우리 할머니 마음속엔 얼마나 넓은 꽃밭이 있을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고’


아 나는 어른이 되었나 봅니다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생각하면 마음 아린 것들이 많아지고, 때문에 눈물이 많아진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되고 있습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또한

보고 싶은 것들이 점점 늘어간다는 것.

어른들은 어떻게 그것들을 다 묻어두고

티 나지 않게 아주 조용히

다음 삶으로 또 다음 삶으로 넘어가는 걸까

스물두세 해쯤부터 느껴지기 시작한

이 감정은 아직 나에겐 좀 버겁다.

아직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벌써 체감하게 되는 것을,

연즉 칠십해를 넘게 사신 할머니는

얼마나 그립고 보고픈 존재가 많을까 싶어져 쓰게 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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