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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룸어빌리티 Mar 01. 2021

착한 사람

"누구에게?"라는 질문이 든 어느 밤 시작한 글.

내가 가진 마음 중 가장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나를 해치기도 하는 마음.


억울하고 불합리한 상황에 놓였을 때, 상대방에 대한 분노보다 나를 자책하는 마음이 앞설때가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꽤나 자주 그런 것 같다. 남 생각하다가 내 마음을 돌보지 못하는 내 모습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전형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음의 반응은 내 생각보다도 빨라서 취사선택해서 가지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나는 마음이 가는대로 이끌려 가 자존감 나락이라는 vicious cycle의 미끄럼틀에 몸을 태울 때가 많다.


나를 고찰해본 결과,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우선되지 않는 마음의 기저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내 안에 자리잡은 착한 아이 컴플렉스도 아주 큰 이유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내가 선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착한 이유가 고결한 이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모두로부터 선한 사람이라 칭해지며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이었음을 깨닫던 순간 생각의 전환점을 맞았다. 충격이고 슬프기 보다, 나에 대한 객관화가 되면서 남의 눈치를 많이 살피는 사람이구나 - 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 놈의 착한 아이 컴플렉스는 나로 하여금 상대방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내 감정이 크게 흔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감정은 모난 바람에 흔들 흔들 하다가, 내가 한 번 수그리면 될 것을 - 하는 마음에 이내 곧 억눌려진다. 그 순간이 바로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외면하고 그 화살을 나에게 겨냥하는 순간이다.


겉으로 봤을 때 나라는 사람은 상대방의 감정을 잘 받아주고, 상대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너그러이 바꿀 줄 알며, 상대에게 잘 맞는 퍼즐로 나를 맞춰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으로 보여질 수 있다. 모나지 않고 순하다는 말을 적잖이 듣는 이유일거다.


그런데 이런 내 모습으로 인해 나는 안녕한가. 나만 아는 불편함들이 쌓인 내 내면은 당연히 무사하지 못하다.  요구한 적 없는 배려를 받고 편히 지내는 상대방에게 갑자기 너무 힘들다고 터트릴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우유부단하게도 관계를 이어나간다. 관계가 계속될수록 내가 감당해야 하는 감정의 무게는 더해질 뿐. 그러다가 인생의 역설에 휘말리고 만다. 상대방의 기분과 관계를 해치고 싶지 않아서 나 혼자 감당하고자 한 마음이 되려 관계를 빈약한 모래 위 지은 집이 되게끔 했다는 것을 깨달을 때다. 


아직까지도 나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왕도를 찾지 못했다. 다만 진실로 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의 욕망과 생각에 솔직해지는 것이 첫 걸음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나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내 불편한 감정을 말해도 잘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경험하고 있고, 궁극적으로는 나에게 착한 사람이 건강한 관계의 기반이 됨도 알아가고 있다. "나에게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독자 여러분들은 어떤 연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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