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잔인했던 2025년 4월을 기억하며
내가 정신없이 병과 싸우는 동안, 병원 의료진분들과 아빠도 나를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셨다. 심정지가 왔을 때는 물론이고, 심장이 제대로 뛰지 않아 폐에 물이 차서 기도삽관을 했을 때도, 에크모를 꽂아야 했을 때도 말이다.
심근염. 심장 근육에 염증 하나 났다고 이 정도라니.
원인도 모른다. 인과관계가 있을 만한 특이사항, 유전적 요인도 없다. 기존에 먹던 약과 영양제까지 싹 다 갖고와 조사했지만 나오는 것은 없었다.
나는 당시 심장내과 병동 전체에서 제일 어린 환자였다. 그래서인지 간호사님들은 나를 많이 챙겨주셨는데, 갑자기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여러 개를 물으시곤 다 프린트해오셔서 힘들 때마다 보라고 건네주셨을 정도였다. 막상 나는 어느정도 몸이 괜찮아지고서야 볼 수 있었지만, 그 종이들은 기도삽관을 한 나와 의료진분들의 대화 창구가 되기도 했었다.
심각한 병 치고는 생각보다 버틸 만(?)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오한과 고열이 제일 골칫덩어리였던 것 같다. 내가 계속 춥다고 하니 간호사님들께선 이동식 난로를 준비해주셨는데, 난로에 달려있는 호스를 이불 안에 넣는 것도 모자라 이불을 끝까지 덮고 있을 정도였다. 열이 오른다며 이불을 조금만 걷어주셔도 추워서 덜덜 떨 정도였다.
몸에서 제일 중요한 부위인 심장이 아프면 몸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정말인지 예정일이 지나도 시작되지 않던 생리가 중환자실에 입원하자마자 시작되었다. 소변줄이 있는데도 생리대를 또 착용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을 보내야 했지만, 이게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난 중환자실 문턱에도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아빠는 내 짐을 다 갖고 가셨는데, 거기엔 내 휴대폰도 포함이었다. 면회도 쉽사리 불가한 상황에 폰까지 없어서 부모님을 비롯한 누구와도 강제로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간호사님들께서 가지고 계신 내선전화기로 부모님과 간간히 통화를 했고, 연락을 하다가 갑자기 끊겨 걱정하고 있을 남자친구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면회날, 아빠께서 휴대폰을 가지고 오셨다. 예상대로 나의 안부를 걱정하는 연락이 잔뜩 와 있었다. 아빠가 폰을 가져가서 연락을 못 했다, 이러이러한 상황이고, 고비는 넘겼다. 언제 퇴원할지 모르겠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답장했다. 몇몇 지인들은 퇴원하면 먹으라며 음식 기프티콘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참, 분에 넘치게 고마운 사람들을 옆에 뒀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