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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별 Aug 12. 2022

본인 분석 일지 (1)

오글거림은 백신이 없나요?

 이 글은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첫 수업 첫 자기소개글을 올릴 때 썼던 글이다. 이걸 기반으로 내가 무슨 목표를 가진 사람인지 설명하려고 한다. 그런데,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라는 사람의 전체적인 줄기는 바뀌지 않았지만 세세한 부분에서 나를 바꾸어준 사람들과 사건들이 있다. 나를 분석할 때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고마움도 전하는 오글거리는 글이 될 듯하다. 오글거림에 취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벌써부터 한숨이 나오지만, 완주해보도록 하겠다.


 “자기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후에 저를 아는 그 누구라도 부담 없이 제게 의지할만한, 그런 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는 것이 많아 타인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고, 또 여유가 넘쳐 타인을 돕는 것을 즐기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는 타인의 문제는커녕 제 문제 앞에서 뻣뻣하게 굳어버리기나 하고, 타인이 잘될 때에는 괜스레 조바심이 나고는 합니다. 한참 어리고 어리석어 제가 바라는 삶과는 동떨어진 채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곳에서 뛰어난 학우들과 교류하며 성장할 것입니다. 대단한 사람들의 뒤에서 걸으며 배우다 보면 언젠가 제가 앞장서서 길을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업 내내 절 더 성장시켜줄 제 의견에 대한 다양한 비판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는 타인의 문제는커녕 제 문제 앞에서 뻣뻣하게 굳어버리기나 하고,’


 지금의 나는 여전히 내 문제 앞에서 머리가 하얘지고 무력감을 자주 느낀다. 상상력이 뛰어나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는 걸로는 국가대표다. 그런데 그 감정을 오래 가져가지 않는다. 그러기 위한 방법도 찾았다. 노래를 크게 들으면서 산책을 하다 보면, 바깥공기와 노랫소리, 그리고 지나가는 풍경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다시금 기분이 상쾌해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산책 시간대는, 햇빛이 아주 쨍쨍한 점심시간대나,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한밤중, 그리고 공기가 제일 맑은 새벽녘이다. 안 좋아하는 시간대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어야 했나? 각자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우울감은 30퍼센트 정도의 실제 위기와, 과도하게 위기상황을 머릿속으로 되뇌다 내가 키운 70퍼센트의 위기의식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한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고민이나 걱정을 타인에게 말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내가 고민을 말하거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어본다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다. 위로받고 싶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상대방의 능력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조금은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아 물론 내가 응원하는 팀 성적이 안 나오면 그 경우는 다르다. 산책을 백번 해도 울적하다.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 


‘여유가 넘쳐 타인을 돕는 것을 즐기며 살고 싶습니다.’

‘타인이 잘될 때에는 괜스레 조바심이 나고는 합니다.’


 22년의 나는 더 이상 남이 잘 되는 것에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20년도의 내가 바라던 여유가 넘치는 사람까지는 못 됐지만, 타인을 돕는 것을 어느 정도 즐기는 듯하다. 문제는 타인의 범위가, 내가 인간적 호감이 있는 사람들에 한한다는 점이다. 내가 기대하던 내 모습은 나랑 사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도움 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그건 아직 쉽지 않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멋진 법조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래도 내가 알고 있는 정보나, 혹은 내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가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즐겁게 나눌 수 있는 사람 정도는 된 듯하다. 이렇게 바뀔 수 있었던 이유는 먼저 주변인들이 내게 도움이 되어주려 하고, 내게 받은 도움이 대단한 것이 아닌데도 대단히 고마워해 주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29살이 한 명 있는데, 대단히 고마워하진 않지만 대단히 챙겨주기 때문에 포함시켜주기로 했다. 

 두 번째 이유는 내 고등학교 때의 경험이다. 나는 외국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수시 위주의 학교라 친구는 결국 경쟁자라는 인식이 전교에 퍼져있었다. 수행평가가 있는 줄 모르고 있는 친구들에게 숨기는 경우도 있었고, 상위권 친구의 노트필기는 사라졌다가 나타나고(엄청난 수의 복사본과 함께), 학원을 어디 다니는지, 과외는 누구에게 받는지를 밝히기 꺼려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다행히도(?) 우리 스페인어과는 4개 과 중에서 가장 공부를 못했고, 정시 도전율이 가장 높은 과였기 때문에 그런 일은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애들은 착해.”가 우리 과의 수식어였달까. 영어과 중어과는 정말 무서웠다, 기숙사에서 영어과 애들 얘기를 들으면 가끔 괴담을 듣는 것 같았다. 나중에 그것과 관련해서도 글을 써봐야지. 아무튼 그 학교에서 살았다 보니 그런 식으로 내 친구를 이겨먹어서 뭐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친구에게 수행평가 정보를 전해줘서, 내 등수가 한 칸 밀려서, 등급이 내려가는 도미노 같은 일이 생겼다 쳐도 난 그냥 정정당당하게 그 친구보다 성적이 덜 나온 사람일 뿐이다. 노력을 더 해서 2,3명만 더 이기면 그런 일이 없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치졸하게 살지 않기로 했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겨먹으려고 굴지 않기로 했다, 다 같이 잘 되면 좋잖아. 대신 나보다 잘되면 육회 사줘야 함. 힘내라 힘 다들 내게 육회를 바쳐라. 


‘이곳에서 뛰어난 학우들과 교류하며 성장할 것입니다. 대단한 사람들의 뒤에서 걸으며 배우다 보면 언젠가 제가 앞장서서 길을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요새 내가 나에게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타인의 장점이 잘 보인다는 점이다. 이게 옛날에는 내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장점이 너무 부러워서 질투도 많이 했으니까. 그러나 요새는 질투하면서 시간 낭비할 바에 그 사람을 닮으려고 노력한다. 의지가 강한 사람, 상냥한 사람, 공부가 재밌다는 사람, 한다면 하는 사람, 쓸데없는 말을 아끼는 사람,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타고난 잔머리가 좋은 사람 그리고 나이가 많은 사람까지. 모두를 보고 배우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요새 나는 타인을 칭찬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거 빈말 아니고 진심입니다 모두들 알아줬으면 좋겠네. 아무튼 20년도의 목표였던 ‘뛰어난 학우들의 뒤에서 걷기’를 해보고 있다. 실제로 배우는 것도 많고, ‘나 이 대학교 왜 왔지’ 싶은 느낌이 들 때 ‘아 이래서 왔지’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마무리하자면, 아직 한참 부족한 사람이지만 성장하고 있다는 얘기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여러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다.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이니까, 주식 사뒀다 치고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떡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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