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되고 싶은 가장(家長)

다재다능하고 싶은 이 시대의 가장(家長)

by 여름별아빠

며칠 전, KBS 다큐인사이트 “해장” 편을 다시 보았다. 방송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양각색 저마다의 방법으로 속을 푸는 장면들이 나왔다.

출처 : KBS 다큐인사이트


추운 겨울, 늦은 밤 회식을 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부터 동이 트기 전 새벽의 가락시장에서 경매를 마치고 동료들과 속을 푸는 사람들, 그리고 공사현장 인근에서 바쁜 시간을 쪼개며 국밥을 먹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늦은 밤과 새벽까지 바쁘게 하루를 보내며, 지친 속을 달래고 있었다.

그리고 방송에 나온 분들 중 대다수가 한 가정을 지키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家長)들이었다.

그들에게 “해장”이란 의미는 평소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깊은 속마음을 뜨거운 음식과 차가운 술 한잔에 풀어내는 것 같았다.

방송한 지 벌써 1년 여가 다 된, 여러 번 시청했던 “해장” 다큐였지만, 볼 때마다 늘 다시 생각나는 단어는 “해장”이 아닌 “가장(家長)”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 가장(家長)에 대해서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 보았다.



가장 힘들고 바쁜 시간을 보내는 사람


방송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장(家長)들은 모두가 가장 힘들어하는 시간대에 가정(家庭)을 지키기 위해 바쁘게 살아간다.

가끔 새벽 첫 차를 타고 출근할 때가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첫 차를 기다리시는 분들은 대부분 5,60대 이상 어머님들과 아버님들이었다. 그리고 첫 버스가 도착하면 익숙한 듯 우르르 버스에 타시는 모습들은 오랜 기간 반복된 일상으로 습관화되신 것 같았다.

추운 겨울이나, 장대비가 쏟아지는 무더운 여름에도 가족을 위해 새벽길을 나서는 가장들의 모습을 보며, 짠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열심히 살아가시는 모습에 기운과 힘을 얻을 때도 많다.

“그렇게 가장(家長)은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이나 한밤중에도 가장 바쁜 사람이다.”



가장 자상한 아빠


“아빠가 오늘 학교 마치면 학교 앞으로 마중 나갈게”


가끔 휴가이거나 출근을 하지 않는 평일엔 초등학교 2학년 둘째 딸의 학교 앞으로 하교하는 딸을 마중 나갈 때가 있다.

두세 명 무리를 지어 친구들과 하교를 하는 딸아이는 아빠가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어깨가 한층 더 올라가서 씩씩하게 걸어오곤 한다.

그런 딸의 마음을 눈치채고 센스를 발휘하는 것은 아빠의 몫이다.


"아빠가 후라이드 꼬지 사줄까? 과자 사줄까? 아님 붕어빵 먹을래? 먹고 싶은 거 골라봐 “


“우리 아빠가 사준대”


학교 옆 편의점에 들러 후라이드 꼬지를 하나씩 손에 들고 딸아이와 친구들은 “고맙습니다!”하고 씩씩하게 외친다.

작은 것 하나였지만 그 모습 하나에 행복함을 느꼈다. 그리고 친구들 앞에서도 아빠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딸아이가 감사한 순간이다.


요즘 대부분의 가장들은 자상한 아빠들이다.

친구들과 첫 해외여행을 가는 대학생 아들을 위해 새벽잠 설쳐가며, 공항에 데려다주는 아빠, 회사에서 밤늦게까지 일하면서도 고등학생 딸아이의 학원이 끝나는 픽업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시간을 챙기는 아빠, 일하고 있는 와중에 친구들과 편의점에서 맛있는 거 먹고 싶다는 중학생 딸아이의 전화에 슬쩍 편의점 쿠폰을 날려주는 아빠, 주변에는 이렇게 자식들에게 열심히인 아빠들이 참 많은 것 같다.

“그렇게 가장(家長)은 세상 가장 자상함을 보여주는 아빠이고 싶다. “



가장 내편이 되어주는, 남의 편이 아닌 남편


아내는 한 번씩 회사에서나 모임 등에서 화가 났던 상황들을 나에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대화를 할 때마다 난 항상 눈치 없게 “대문자 T”처럼 말을 하곤 했다.


“아니 그런 말 말고, 좀 거짓말이더라도 내편에서 이야기 좀 하라고!”


아내의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차, 또 실수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내 말을 잘 들어주는데

반해 난 전혀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 요즘에는 아내가 그런 말을 하면 한번 더 생각하면서 말하지만, 아직도 난 그런 부분에서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 소질이 없어서인지 생일, 결혼기념일, 크리스마스 등 기념일만큼은 꼭 챙기려고 노력한다. 남들만큼 값비싼 가방이나 옷은 못 사주더라도 소소하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래서 용돈을 모아 선물을 하거나 소소한 이벤트를 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

매년 빼빼로데이에 소소한 현금 빼빼로 선물이벤트를 진행한다.

왜냐면, 아내는 언제나 내편이니까.

“그렇게 나도 아내에게 가장 내편이 되어주는, 남의 편이 아닌 남편이고 싶다.”



가장 다정한 아들


언제나 아이들의 방학이 되면,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돌봄을 해야 하는 부담감과 함께 어쩔 수 없이 방학 동안만큼은 엄마에게 죄송스럽게 손을 벌리게 된다.

새해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며칠 전에도 출근길에 아이들을 부모님 댁에 맡기고, 출근을 했다. 아내는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아이들을 부모님 댁에 맡기는 일은 가까운 곳으로 출퇴근하는 나의 몫이다.

그날은 새해부터 아내가 첫 야근을 하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집에서 엄마가 차려주신 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평소보다 늘어난 가족들로 인해 설거지 또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엄마가 설거지를 하시기 전에 먼저 후다닥 팔소매를 걷어 부쳤다.


“놔둬라, 나는 네가 우리 집에서만큼은 설거지 안 했으면 좋겠다. “라며, 엄마가 말씀하셨다.


“ 집에서는 제가 안 해요. 이럴 때라도 해야죠! “


라며, 웃으면서 아주 살짝(?) 거짓말로 엄마를 안심시켜 드리곤 설거지를 시작했다. 첨에는 작아 보였던 설거지였지만 하다 보니 양이 어마어마했다. 등이 살짝 쑤시긴 했지만 하고 나니 마음은 너무 뿌듯했다.


그리고 나오면서 엄마에게 이번에 회사에서 받은 2026년 새 다이어리를 선물해 드렸다. 사실 나는 평소 다이어리를 잘 쓰지 않기에 해마다 다이어리가 나오면 엄마에게 드리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는 내가 회사에서 받아 온 다이어리를 드릴 때마다 좋아하신다. 아마 내가 회사를 다니며, 밥벌이를 잘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러우신가 보다.


그날 저녁 부모님 집을 나서는 길,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가볍고 편안해졌다.


“그렇게 가장(家長)도 세상 가장 다정한 아들이고 싶다.




부모님 댁에서 돌아오는 길, 아이들의 따뜻한 두 손이 내 양손을 꼭 잡고 있었다. 올 겨울 가장 추운 저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두 손은 너무 따뜻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런 소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바로 이 시대의 가장(家長)들 인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