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장어와 소주, 그리고 아빠

옛 추억이 떠오르던 그런 날

by 여름별아빠

얼마 전, 금요일 일찍 퇴근을 하고, 부모님 댁으로 향하기 전 전화 한 통을 했다.


“사장님, 포장주문하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아나고(붕장어)회 2킬로만 포장해 주세요.

조금 있다가 찾으러 가면 되겠죠? ”


구포시장에 자주 들르는 횟집에 포장주문을 마치고,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엄마, 오늘은 아나고(붕장어)하고, 아귀불고기하고 몇 개 사갈 테니까 저녁은 따로 준비하지 마세요.”


엄마는 내가 음식을 준비해 간다고 하면 늘 그냥 집에서 해 드시면 된다고, 한사코 손사래를 치시며 거절하신다. 그래서 한번씩 부모님 댁에서 모여 식사를 할 때마다 늘 서로 눈치게임을 하며, 미리 선수 치지 않으면, 엄마에게 저녁식사 준비를 당하고(?) 만다. 하지만 방학 때마다 아이들을 맡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엄마아빠의 도움을 받는 나로서는 이런 작은 거조차 하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 무거워진다.

그리고 마트에 들러 어른들의 소중한 음료인 소주 두 병을 사서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걸어가는 길에 문득 옛 추억이 떠올랐다.

어릴 적 엄마가 동네 시장을 갈 때면 누나와 난 미행작전을 펼치곤 했다.


“엄마 금방 시장 갔다 올게. ”

“네, 다녀오세요.”


그렇게 시장에 가시는 모습을 빼꼼히 지켜보다가 엄마가 멀찌감치 떨어져 보이면, 누나와 나는 몰래 뒤에서 숨어 엄마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따라가다가 시장 한복판에 다다를 때쯤,


“엄마!!”

“아이고, 깜짝이야, 너거 집에 안 있고 뭐할라고 나왔노.”

“엄마 보고 싶어서 따라왔지.”


우리는 엄마가 놀라면서도 반가워하는 그 표정이 너무 좋았고, 그 덕에 군것질거리라도 하나 얻어먹게 되면 기분이 더 좋아졌다. 그리고 엄마 손을 잡고 이런저런 시장구경을 했다. 그 시절 시장구경은 지금의 백화점이나 쇼핑몰보다 더 신나는 구경거리였다.


시장구경의 끝은 한 횟집 앞에 다다랐을 때 끝이 났다.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시는 아나고(붕장어의 일본어 표현으로 부산에선 흔히 붕장어를 아나고로 부름)회를 자주 사셨다. 당시 80년대,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겐 아나고(붕장어)가 도통 어떤 생선을 말하는지 몰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생선은 구워만 먹을 수 있고, 생으로 먹을 수 있는 건지조차 몰랐다.

그런데 횟집 아저씨는 뱀같이 생긴 어떤 생선(붕장어)을 잡고 칼로 날쌔게 손질을 하셨다. 나중에는 잘게 썰린 회들이 잔뜩 나왔는데 더 신기한 건 그다음이었다. 아저씨가 잘게 썰린 회들을 양파망 같은 곳에 집어넣고, 빨래 짤순이에 넣어 돌리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처음 본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몇 분 뒤, 빨래 짤순이에서 나온 회들은 꼭 밥알같이 생겼었는데, 나무종이 같은 곳에 포장해서 엄마에게 건네주셨다. 그게 바로 아나고(붕장어)란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아빠가 퇴근을 하시면 그 붕장어회에 술을 한잔 곁들이시기 위해 나에게 ‘소주 한 병’ 심부름을 시키곤 하셨다. 그런데 난 그 ‘소주 한 병’ 심부름이 그렇게 하기가 싫었다. 그냥 손에 술을 들고 다니는 게 창피하고 부끄러웠던 것 같다.


지금이었다면 집에서 검은 봉지라도 챙겨서 아무도 안 보이게 술을 담아서 들고 왔을 텐데, 그때는 그런 생각조차 미처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야속하게도 집 앞 슈퍼(정확하게 말하자면 점빵정도) 아주머니께선 소주 한 병을 사면 봉지를 주지 않으셨다. 그리고 난 집에 돌아오다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이라도 마주칠까 싶어 소주를 옷에 숨겨 전속력으로 달렸다. 뭐 하나 잘못한 것도 없는데도 말이다.


이제 내가 40대 후반에 접어들고 나니, 그때의 아빠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 후, 돌아온 집에서 맛있는 음식들과 함께 편안하게 술 한잔하고 싶은 마음을.

퇴근할 때쯤 되면 그런 날이 있다.

‘그냥 이유 없이 술 한잔이 땡기는 그런 날’

그런 날이면 늘 아내와 나는 주종관계없이 편하게 집에서 술 한잔씩 하곤 한다.


‘아빠도 퇴근 후에 그저 편하게 술 한잔 하고 싶으셨던 것뿐일 텐데.‘


그럴 때면 그때 심부름을 하던 나 자신을 괜스레 자책하기 시작한다.

‘그때 난 왜 그랬을까’

아빠는 그 당시 다른 아빠들과 비교해 봐도 굉장히 가정적인 분이셨다. 일주일에 일요일 하루만 쉬는데도 불구하고, 누워계시는 아빠를 향해 놀아달라고, 밖에 나가자고, 시끄럽게 호루라기를 불며, 아빠를 깨우던 나에게 아빠는 짜증 내고 싫은 내색 전혀 없이 어린이대공원, 금강공원, 자유랜드, 해운대해수욕장까지 갈 수 있는 모든 곳에 우리를 데리고 놀러 다니셨다. 그때 우리 집은 자가용도 없었는데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깟 술 심부름 하나가 뭐라고 부끄럽게 생각했던 나 자신이 아빠에게 너무 죄송스럽다.


그래서 지금은 부모님 댁에 갈 때마다 소주든, 다른 술이든 묻지 않으셔도 꼭 안주와 함께 할 수 있는 술을 챙겨 간다. 어떨 때는 집 앞 편의점에서 소주 두 병을 사서 봉지도 없이 양손에 들고 갈 때도 있다. 지금은 아마 내가 더 아빠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싶어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요즘, 평일에는 거의 술을 안 드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집에서 아빠와 술을 마시면 내가 더 소주를 많이 마신다.

‘참 신기한 일이다.’




어디든 함께 다니시는 엄마, 아빠









매거진의 이전글우리 똥강아지가 오늘 졸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