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이 많아요
라텍스매장이었다.
세련된 차림의 중년 직원이 마음 편히 구경하라며 간단한 설명을 하고 매장으로 안내했다. 라텍스를 베고 누워 보라고 하고 이불도 덮어보라고 한다. 패키지여행에서 흔한 장면인데 요즘은 강아지 용, 아기용까지 물건이 다양해졌다. 가격은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관심 없는 물건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갈 때면 남편은 누워보고 좋다며 못 사는 걸 아쉬워한다. 아이들은 까탈스러워서 엉덩이만 슬쩍 걸터앉는다. 영업하는 아줌마들이 아무리 누워 보라고 해도 끄떡하지 않는다. 나도 아이들과 같이 엉덩이만 걸터앉아 시간을 보낸다. 어쩐 일인지 이번엔 남편이 눕지 않고 나처럼 앉아만 있었다. 삼십여분의 시간이 있어 한숨 자라고 해도 끄덕 않고 앉아있었다.
맞은편에는 아저씨가 누워서 만족한 표정으로 직원이 권하는 대로 정성껏 체험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누워있었다. 반면 아줌마는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슬슬 물건을 권하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구입하는 모습도 보였다. 물건을 사라는 권유가 시작되자 아저씨는 일어나 앉아 슬그머니 아줌마의 눈치를 살폈다. 아줌마 표정은 미동도 없었다.
아저씨가 한마디 했다.
"사람이 둘뿐인데 집에 베개만 많으면 뭐 하겠어요."
아, 그런 나이다. 60 후반에서 70 초반으로 보이는 커플이니 아마 필요한 게 집에 다 있을 것이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여행 다닌다면 이런 물건쯤은 진작에 장만했을 터였다. 아줌마 직원이 샐쭉한 표정으로 비뚠 말을 했다. 앉아만 있는 우리에게는 체험 안 하면 500원을 받겠다며 농담처럼 말하더니 아저씨에게는 누워서 쉰 값을 내놓으란다. 맘대로 "누워라, 앉아라" 해놓고는 말이다. 내 일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화가 나며 인상이 굳어지고 있었는데 아저씨가 웃으며 부드럽게 대답했다.
"아유, 고생이 많으십니다."
순간 화나려던 감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음이 순해졌다.
'난 아직 멀었구나.' 나도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이지만 아직 그런 여유는 없는 모양이다. 아저씨는 판매원이 억지스러운 말을 해도 따뜻한 말로 다 받아 주었다. 말이 길어지자 옆에 있던 아줌마가 불편한 듯 "아유, 가만히 좀 있어." 하며 내지르듯 말했다. 그 말에 또 아저씨는 대거리 한마디 없이 입을 다물고 웃었다. '그들이 그 나이에도 손잡고 함께 여행 다닐 수 있는 비결은 그것이구나.' 기쁜 일을 겪으며 웃기도 하고 거친 삶의 고비들도 함께 넘기며 서로의 모난 구석을 깎아내고 둥글게 만들었을 세월이 그려졌다.
나중에 헤어질 때, 아저씨는 내게 "70살인데 일 년에 두 번은 꼭 아내와 여행 다니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12월이었으니 그 해의 두 번째 약속을 지키는 중이었을 것이다.
판매원 아주머니들도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물건을 파는 게 그녀들의 일이다.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30분을 보낸 것뿐. 모두 아름다운 삶이다.
이 여행은 우리 부부의 미래를 미리 들여다본 것 같아 작은 울림을 남겨주었다. 우리도 저들처럼, 서로의 투박한 말을 웃음으로 받아내며 함께 세상을 계속 여행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