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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햇살 May 31. 2024

둘째의 홀로서기

50대 중년부부의 빈둥지 시작

  제주에 사는 우리는 다른 지방을 가려면 꼭 비행기나 배를 타고 가야 한다. 일이 있어서 가더라도 비행기를 타면 여행가는 기분이 든다. 기왕 비행기 타는 김에 일정을 좀 넉넉히 잡고 하루 이틀 놀다 온다. 둘째가 대전으로 대학을 가게 되어서 한동안 열심히 대전을 다녔다. 면접 보러 한번, 방 얻으러 한번, 이사하러 한번. 몇 번 가니 대전이 아주 익숙해졌다. 마지막에 이사할 때는 큰딸도 함께 갔다. 아이 혼자 놓고 오기 영 마음이 쓰였는데 언니가 며칠 살다가 서울 간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이삿날이니 짜장면 먹고, 다시 청소하고, 생필품은 사고 또 사도 빠뜨린 게 꼭 있다. 앞으로 아이 혼자 살 거라 생각하니 하나라도 더 준비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2박3일 중 첫날은 부지런히 정리하고 둘째 날은 짬짬이 맛집도 가고 카페도 가며 즐겼다. 혼자 살 둘째를 생각하니 맛있는 거 많이 먹이고 싶었다. 돌아오는 날은 비행기 시간을 생각하면 뭘 하기가 좀 애매하다. 함께 점심을 먹었다. 같이 먹는 마지막 식사이다. 필요한 거 확인하고 그래도 언니가 있어서 안심이라며 진하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남편과 공항으로 가며 "괜찮겠지? 잘 지내겠지?" 집에 가면 우리 둘만 있겠네"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람이 세서 비행기가 두 시간씩 지연되고 있었고 결항도 많았다. 우리는 다행히 20분 정도 지연 후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안심했는데, 갑자기 결항이란다. 처음 겪는 일이라 황당했다. 반납했던 렌트카를 다시 빌리고 저녁이라도 한 끼 더 같이 먹으려고 아이들에게 전화해서 조개구이집에 갔다. 가게는 작았지만 동네 맛집인지 사람들이 많았다. 비도 보슬보슬 오고 다른데 가기도 번거로워서 아주 불편한 자리를 배정받고 그냥 앉았다. 맛있는 걸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식사를 하고 둘째의 공간으로 갔다. 아직도 정리가 다 안된 공간, 까다로운 아이라 자기식대로 하게 놔둬야 한다. 내일은 들르지 않고 바로 간다고 말하고 또 한 번 진한 인사를 했다.


대전에 갈 때마다 아울렛 앞에 있는 호텔을 이용한다. 물욕 많은 남편과 둘째가 수시로 아울렛을 둘러 볼 수 있어 아주 좋아한다. 늦잠 자고 한가롭게 아울렛을 둘러봤다. 뭘 사달라고 앵앵거리는 둘째가 없어서 이상했다. 둘째랑 아빠랑 같이 있으면 욕망에 불이 붙는데, 나는 뭐든 필요해야 사는 사람이라 재미없는 모양이었다. 하루 종일 아울렛에서 시간 보내려다 빨리 나왔다. 전에 둘째랑 맛있게 먹었던 식당에 갔다. 가자미구이에 제육에 비빔밥까지 나오는 정식집이었는데, 둘째가 가자미구이를 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서 가슴이 싸했다. 같이 무료로 주는 동동주를 맛보며 즐거워하던 기억도 났다. 


날은 궂고 딱히 할 일도 없었다. 비 오는 날은 아무래도 제약이 많다. 밥집 근처의 초대형 카페에 갔다. 편안히 노트북을 쓰거나 책 읽을 수 있는 카페를 선호하는 큰아이와 달리 둘째는 근사한 카페를 좋아한다. 거꾸로 분수도 있고 너무 귀여운 판다 인형들이 있는 멋진 카페를 보니 또 둘째가 생각났다. 같이 있을 땐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하는 게 영 성가신데, 그런 아이가 정말 더 생각나나 보다. 눈을 홀리는 디저트들을 보니 또 아이들 생각이 났다. 남편이랑 비 오는 풍경을 보며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비행기 결항으로 못 돌아갈 때는 황당했는데, '이렇게 하루를 얻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 제주까지 갔다가 돌아온 비행기도 있었고 두 시간씩 지연되다가 결항한 비행기도 있는 걸 생각하면 우리는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돌아왔으니 오히려 행운이었다. 공짜로 얻은 대전에서의 하루는 '강제로 받은 휴식 같은 날'이라는 선물이었다.


카페를 나오는데 예쁜 디저트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와 결국 사진 찍어서 아이들에게 보내고 말았다. 아이들이 고른 예쁜 케익을 사고 또 둘째의 새 공간으로 갔다. 어제랑 별로 다르지 않았는데 어색했다. 어정쩡 앉아 있었다. 아이들이 디저트를 맛있게 먹어줘서 좋았는데 그다음은 할 일이 없었다. 작은 공간에 넷이 있으니 불편한 것 같기도 하고 왠지 둘은 빠져줘야 할 것 같았다. 집에서는 늘 거실에서 넷이 같이 앉아서 생활하는데도 말이다. 비행기 시간은 한참 남았지만 일어났다. "우린 이제 갈게" 세 번째 작별 인사를 하려니 웃음이 났다. '오늘은 돌아오지 않겠지.' 큰아이가 같이 있어 줘서 다행이라며, 한 일주일 살다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막내라 그런가? 큰아이가 처음 자취할 때랑은 좀 다른 마음이었다. 


무사히 비행기를 탔고 집으로 돌아왔다. "윤이 없으니까 이상하다." 남편이 말했다. "그러게 좀 이상한가?" 아직은 익숙지 않은 시간이었다. 넷이 자리 경쟁하던 삼 인용 쇼파에 둘만 앉으니 편했다. 욕실도 혼자 쓸 수 있어서 편하다고 애써 생각했다. "잘 지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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