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가 좋아
이번 여행을 여수로 정한 데는 작은 이유가 있었다. 여수에 몇 번 갔지만 이상하게도 제대로 즐겨보질 못했다. 몇 년 전 여수 밤바다를 부르며 간 여수여행에서 낭만포차를 가기로 했는데 비가 많이 와서 구경만 했다. 비 오는 중에도 사람들이 많았는데 우리는 언니의 반대로 못 갔다. 아마 그때 우리 가족만 갔으면 내 뜻대로 갔을 것이다. 그곳에서 맛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좋은 기억으로, 반대라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끝났을 것이다. 유난히 야장을 좋아하는 나는 그때 낭만포차를 못 가본 게 못내 아쉬웠다. 여수에 몇 번 갔지만 안 간 것 같은 이유는 낭만포차 때문인 것 같다. 이번엔 꼭 가야지. 남편에게 말은 안 하고 속으로만 목적지로 저장해 놓았다. 남편이 알면 입을 삐쭉거리며 싫다고 할 게 뻔하다.
예약해 둔 호텔에 도착하니 5시. 운전하느라 고생한 남편을 배려해 호텔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피곤했는지 짧은 시간에 코가지 골아가며 자는 남편. 참 고맙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하다. 집에서는 못마땅해 투덜거리다가도 여행 가면 새삼 남편의 역할이 커지면서 갑자기 멋있게 보이기까지 한다. 한 시간쯤 방해하지 않고 쉬다가 드디어 낭만포차로 향했다. 남편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면 어떻게든 가지만 관심 없는 곳은 주차가 어렵다느니, 복잡하다느니 핑곗거리를 늘어놓는다. 어차피 갈 거면서 말이다. 예전에 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순신 광장 주변에 주차를 하고 가볍게 산책하며 둘러보았다.
낭만포차거리에 예전엔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불빛반짝이는 식당가에 번호를 달고 앞에서 호객을 하고 있었다. 소심한 데다 거절도 못하는 우리 부부는 제일 처음 본 가게로 들어갔다. '뭐야? 옮겼다더니 식당가가 된 거야?' 예전 포장마차의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기분이라도 내겠다며 가게의 테라스 쪽 창가에 앉았다. 단순한 메뉴를 시켰다. 경기가 어려워서인지 소주, 맥주를 할인해서 파는 가게들이 종종 보인다. 할인은 좋은데 경기를 실감하게 되어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그 식당에서도 주류를 할인하고 있었고 기본으로 나오는 서비스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제법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나와 광장을 걸었다.
이런, 우리가 간 곳은 이름만 낭만포차인 식당가였고 예전의 포장마차, 내가 원했던 진짜 낭만포차는 따로 있었다. 낮은 천정의 빨간 포장마차들이 옹기종기 정겹게 모여있었고 북적이는 그 안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이들이 보였다. 아휴, 늘 그렇지. 뭔가 모자라 우리의 여행은. 진짜 낭만포차의 메뉴들을 스캔하면서 다음 날 또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위장만 허락한다면 다섯 끼씩 먹고 싶은 여행에서 한 끼가 얼마나 중요한데, 이박삼일 일정에서 소중한 한 끼를 잃어버려 속상했다. 광장에는 지역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고 있었고 구경꾼들도 흥이 많은 사람들인지 무대로 나가 신나게 춤을 추며 호응하고 있었다. 제주에는 그런 무대도 흔하지 않지만 보통은 조용히 구경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역성일까? 제주 사람들은 연예인을 봐도 아는 척을 안 해 당황한다고 하니. 예전에 우리도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연예인과 동선이 겹쳐 세 번이나 마주쳐 깜짝 놀랐지만 우리끼리 눈빛만 주고받고 나중에 웃으며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다음날 일정도 낭만포차에 갈 수 있도록 잘 맞춰서 5시에 다시 낭만포차로 향했다. 전날은 토요일이라 복작거리더니 비수기의 일요일 낭만포차 주변은 한산했다. 전 날 여수 낭만포차거리의 유명한 음식인 삼합을 먹었고 이 날 점심을 게장으로 배부르게 먹은 터라 간단히 먹기로 했다. 포차마다 메뉴가 조금씩 달랐다. 라면 좋아하는 남편은 라면을 골랐고 나는 해물파전을 골랐다. 낭만포차의 음식은 전날 갔던 식당가 보다 조금 저렴했지만 소주, 맥주 할인은 없었다. 포차라고 하지만 에어컨까지 있는 실내는 쾌적했고 더운 날씨에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는 순간 실망하고 말았다. 홍게가 들어간 라면은 비쌌고 홍게는 장식역할만 했다. 해물파전도 웬만한 식당보다 비쌌는데 나온 모양새가 식전에 나오는 서비스 전 같았다. 실망이었지만 말없이 맥주를 곁들여 먹고 조용히 나왔다. 우리가 먹고 나올 때쯤 한 사람 두 사람 들어오며 포차거리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결론은 전날 잘 못 들어간 식당포차가 훨씬 좋았다. 진짜 낭만포차에 갔지만, 음식맛 때문에 서운함이 남았다. 경기 어려울 때 이런 생각이 조심스럽긴 하다. 축제 바가지요금, 특정 지역의 바가지요금. 나는 그런 기사들이 불편하다. 그 밑에 달린 욕설 섞인 댓글들도 그렇다. 바가지요금이 괜찮은 게 아니라 기사가 불러오는 파장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에 비난을 위한 비난 기사들이 생계가 달린 지역 상인들에게 얼마나 타격이 될지 신경이 쓰인다. 아마 난 다음에 여수에 가면 또 낭만포차거리를 찾을 것이다. 내가 가 보고 싶어 했던 낭만포차의 기억은 즐겁기를 바라니까. 포장마차에서 진짜로 맛있게 먹고 좋은 기억을 남기고 싶다. 그게 뭐라고. 남편은 안 가려고 하겠지만, 그래도 마지못해 갈 거라는 것도 안다. 남편과 둘이 여유롭게 보낸 이번 여행에서 난 여수가 더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