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햇살 Jul 05. 2024

홍콩 소호거리

온전한 둘만의 시간

       

소호거리는 홍콩에서 가장 핫한 거리답게 사람도 많았다. 가이드가 줄 서는 유명한 완탕집을 알려주었다. 친절하게 그 앞에 줄 안 서는 완탕집도 맛이 비슷하니 앞집에 가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가이드 말로는 맛이 다 비슷한데, 유명한 집은 그냥 티비에 나와서 그런 거라 했다. 배가 고팠던 우리는 줄 안 서는 완탕집을 선택했다. 나름 전통 있는 집인 듯했다.    

  


모르는 글만 잔뜩 있는 메뉴판을 남편이 장난스럽게 구글 앱으로 확인했다. 나는 폰 사용법도 바꿀 때나 되야 제대로 아는데, 남편은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걸 사용해 보는 것도 좋아한다. 대단한게 나올 줄 알고 봤더니 한국말로 된 잘 모르는 메뉴였다. 그냥 새우완탕을 둘 시켰다. 이것저것 시켜 먹고 있는 다른 팀들이 부러웠다. 완탕은 처음 먹는 음식이라 맛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다. 내 입에는 맞지 않아서 줄 서는 집을 선택하는 게 후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 섰으면 더 맛있는 완탕을 먹을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배도 채웠고 백종원 님이 극찬해서 유명해졌다는 밀크티도 줄 서서 마셨다. 원래 밀크티도 다른 음료도 좋아하지는 않지만, 여행지에서는 모든 게 궁금해서 경험해 보는 편이다. 유명한 밀크티는 우리나라에서 먹던 달달한 밀크티와는 아주 달랐다. 맹맹한 게 그저 그런 맛이었다. 남편도 맹맹한 표정으로 살짝 인상을 썼다. 패키지여행의 자유시간은 늘 시간이 남거나 모자라거나 애매하다. 남편은 그 와중에 쇼핑할 곳을 찾았다. 바지를 덜 챙겨왔다나 뭐라나. 20년 넘는 시간을 함께하니 이제는 다 보인다.

“어떻게 한결같이 뭐가 없냐? 지난번엔 티셔츠라더니”

물욕이 많은 사람이라 본능에 충실하게 일부러 덜 챙기는 것 같다. 필요하거나 좋아해야 물건을 사는 나는 이해가 안 된다. '굳이? 이 홍콩의 거리에서?' 한심하지만 그냥 따라다녔다. 구경하는 건 좋아하니까.     



처음 간 거리라 특징도 잘 몰랐고 쇼핑할 만한 곳은 안 보였다. 남편이 급격히 흥미를 잃고 지친 듯했다. 참 감정도 기운도 들쑥날쑥 빨리도 바뀐다. 흥미로운 게 보일까 싶어 그냥 걸었다. 골목골목 재래시장이 있었다. 잡화시장도 꽃시장도 과일시장도 보였다. 남편과 같이 걷는 걸 좋아한다. 걷다가 재밌는 걸 볼 때 마주 보며 같이 웃을 수 있어서 좋다. 신기한 걸 볼 때 '우와'하며 같이 놀라는 것도 좋다. 과일가게에서 한글로 '신고배' 스티커가 붙은 한국 배를 가리키며 같이 반가워할 수 있어서 좋았다.


덥고 습하니 빨리 지쳤다. 소호거리에는 테라스 펍이 많았다. 핫한 거리의 멋진 테라스 펍에 앉아서 맥주 한잔하는 호사를 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배가 불러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고 남편은 술도 못 마신다. 대화도 안 통하는 동네에서 맥주 한 잔만 시킬 수 없어서 포기했다. 평소에는 술을 안 마시니 운전을 맡아줘서 편한데 이럴 땐 여행지의 낭만을 못 챙기는 것이 참 아쉽다. 카페인이라도 채우려고 거리를 헤맸다.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소호거리에는 앉아서 쉴만한 카페가 거의 없었다. 약속 장소 근처에서 테이블이 두 개쯤 있는 아주 작은 카페를 하나 발견했다. 그것도 감사하며 커피를 시키고 지친 다리를 쉬었지만, 내 눈엔 맞은편 노천카페에서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는 사람들만 보였다. 나도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낮에도 펍마다 제법 많은 사람이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 게 신기했다. 밤에 그 거리를 다시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약속 장소로 가다 보니 줄 서있는 유명한 빵 가게도 있고 아이스크림 가게도 있었다. 그 근처에 뭐가 많았는데 멀리서 헤매며 시간을 보냈나 보다. 약속 장소 앞 식료품 가게 안에도 카페가 있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났다. 한심했지만 우리의 여행은 종종 그렇다. 약간 모자라고 엉뚱하게 헤매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고 이야깃거리가 되고 웃음 짓게 된다. 부부 둘만 무슨 재미로 여행가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남편과 둘이 있을 때 가장 편하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한 것 없이 뱅뱅 돌았다. 덥고 다리 아프고 지쳤다. 가족여행은 그것대로 신나고 재미있지만, 챙김 없이 홍콩에서 처음 보낸 별로 한 것도 없는 온전한 우리 둘만의 시간이 그냥 좋았다.                                             

작가의 이전글 가파도에서 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