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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

천천히 걷는 여행

by 여름햇살

오동도에 가려고 일찍 나섰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사람들이 몰려가는 길을 따라가면 동백열차 매표소가 나온다. 주차장 앞에는 안내하는 어르신도 있다. 길가에는 장난감과 오징어, 식혜, 옛날과자들을 파는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었다. 출출할 때 발걸음을 멈출 법하지만, 맛있는 게 넘쳐나는 세상이라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듯했다. 매표소 앞으로 동백열차가 다가왔다. 열차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사람이 많아 타려면 많이 기다려야 했다. 더위가 한풀 꺾여도 여전히 더운 날씨였다. 기다리기 싫어 걷기로 했다. 방파제를 따라 걸었다. 가는 길에 수상액티비티를 타라고 호객하는 이들이 있었다. 재미있을 것 같아 혹했지만 남편이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남편이 이제는 뭘 하려고 하지 않는다.


십여분 걸어 오동도에 도착했다. 짙은 나무숲이 주는 서늘한 공기에 땀이 씻기듯 사라졌다. 여수에 몇 번 갔지만 오동도에는 가 보지 않았다는 게 참 이상하다. 걷기 싫은 남편은 최단 거리로만 가려고 하고 나는 이것저것 다 보고 싶어 한다. 숲에서 느낀 시원함도 잠시, 걷다 보니 땀이 흘렀다. 용굴로 가는 길이 보였다. 나는 가고 싶어 하고 남편은 슬쩍 지나치고 싶어 했다. 이럴 땐 살짝 고집을 부린다.

원하는 걸 얻어내는 방법.

"할 거야."

하면 한다.

"할까?"

"아니!"

그거였다.

어떻게 말하는지에 따라 대답이 달라진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허락받는 아이처럼 "할까?"라고 묻고 있었다. 이젠 "할 거야"라고 말한다. 간혹 "할까?" "아니!"란 대답뒤에 "한다고!"를 외치기도 한다. 남편은 어이없어하며 웃고 따른다.


용굴 내려가는 길이 그리 긴 건 아닌데 "내려간 만큼 올라와야 해"라는 남편의 말에 길게 느껴졌다. 나는 가고 싶은 것만 생각했지 올라오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절벽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굴이 보였다. 여행객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멀찌감치 서서 주변 경치만 찍고 왔다. 안 보면 그게 뭐든 궁금하고 대단한 걸 놓친 것 같아 아쉬워지니 웬만하면 보는 게 좋다.


바람골을 지날 때는 정말 시원함이 느껴졌다. 쉬어갈 수 있는 의자가 있고 그곳에서 가만히 즐기는 여행객들도 있었다. 우리는 바쁜 일도 없으면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해돋이 전망지 쪽으로 가니 등대가 나왔다. 후덥지근한 내부를 상상하며 갈까 말까 망설이다 올라갔다. 등대 안이 시원했다. 세계 각국의 등대들이 사진으로 걸려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있어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었고 더위도 한 김 식힐 수 있어 좋았다. 내려오니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들어가네, 마네' 하고 있었다. "안에 시원해요?" "아주 시원해요." 그 말에 좋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알려줄 수 있어서 좋았다. 먼저 본 걸 알려 주는 것, 왠지 뿌듯하다. 예전에 강원도에서 케이블카 타러 갔다가 에어컨이 없어 덥다는 말을 듣고 그냥 돌아올 뻔한 걸 먼저 탔던 어르신들이 탈만 하다고 해서 탄 적이 있다. 결론은 타길 잘했다는 것이다. 케이블카타러 가서 그냥 돌아왔으면 억울했을 것이다.

조금 더 가니 카페도 있었다. 때아닌 동백꽃 조화와 아기자기한 장식들로 야외에 테이블을 놓고 포토존도 마련해 놓고 있었다. 아줌마 일행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폰을 내밀었다. 정성껏 찍어 주었다. 예전의 나라면 자신이 없어 남편을 바라보며 미루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냥 찍는다. 어쩌다 얻어걸린 사진이지만 가끔 잘 찍는다는 소리도 듣는다. 아침에 커피를 한잔 나눠마시고 온 터라 동백꽃차를 시켰다. 예전 같으면 빈속에도 속을 긁어 내리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고집했을 텐데. 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오십 살이 되어버렸다. 달콤한 동백꽃차가 속을 산뜻하게 해 주었다.


섬곳곳에 볼거리들이 더 있었지만 우리는 바로 동백열차 탑승장으로 향했다. 무인기기에서 열차표를 발권하고 30여분을 기다렸다. 바다를 보며 벤치에 앉아 있는데 홍보관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관람목적은 아니었지만 시원해서 어느 순간 모두 그곳의 여기저기에 앉아 있었다. 우리도 조용히 관람했다. 어르신들이 돌아가며 관리하고 있었는데 여수는 어르신들의 일자리를 적당한 곳에 잘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시간에 맞춰 나오니 동백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줄을 따라 동백열차를 탔다. 빽빽하게 넷씩 나란히, 마주 보는 곳에도 넷씩 앉아서 갔다. 다리가 앞사람과 부딪칠 정도로 좁았지만 잠깐이니 괜찮았다. 바다 쪽으로 탔다며 좋아하고 나중에 보면 똑같은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바다는 도대체 뭐길래.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인데도 볼 때마다 좋다. 거창한 무언가를 보지 않아도 사소한 순간들이 쌓여서 좋아지는 게 여행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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