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목요일의 그녀들과의 만남. 매주 목요일마다 모여서 각자의 글을 쓴다. 강제성도 없고 과제도 없고 그냥 만나서 차 마시고 글만 쓴다는 그 모임이 너무 멋있어 보여 참여했다. 문제는 달리기다. 모두 글을 쓰고 새벽 달리기까지 하는 이들이다. 난 달리기 싫다. 더구나 새벽엔 더. 나는 눈치도 없고 나만의 생각에 종종 빠져 있어 대화에도 잘 끼지 못한다. 그 와중에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 그녀들 속에 있는 다른 나. 오래가지 못할 것 같았다. 달리기를 하면 되지 않냐고? 싫다. 달리기는 힘드니까. 난 인생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다. 거저먹을 수 있으면 거저먹고 싶은 사람이고 불로소득도 가능하면 땡큐다.
누구도 달리기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강요하지 않는데 만나면 반갑다고 달리기 이야기를 한다. 새벽 모임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다. 헤어질 땐 또 만나요 달리기 이야기를 한다. 한 번씩 같이하자고 꼬시기도 한다. 넘어가지 않으리. 나도 모르게 '나도 할래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조심한다. 위험한 모임이다.
그녀들과 등산을 하기로 했다. 글쓰기 대신이란다. 가벼운 오름은 좋하하는 데 윗세오름이라니 걱정이 앞섰다. 나는 옷도 청바지, 정장바지 밖에 없다. 집에서도 롱스커트를 입는다. 등산복은 이상하게 생겨서 싫다. 서울 갔을 때 등산바지를 하나 구입했다. 늘 소비남편 따라만 다녔지 살면서 아웃렛을 그렇게 열심히 목적의식을 가지고 다녀 본 적이 없다. 날이 갑자기 추워지고 한라산에 눈이 왔다. 안 갈 핑계가 생겼다. 등산을 위해 산 바지는 좀 아깝지만 추운 건 싫다. 겨울산은 절대 안 된다. 가지 말자고는 못하고 '나는 못 간다'는 의사를 확실히 밝혔다. '안 한다, 못한다' 소리도 못하는 소심쟁이가 말이다. 모두들 산에 못 가 아쉬운 듯했다. 나 때문에 못 간 것 같은 분위기라 미안한 마음도 조금 들었다. 또 달리기 이야기를 했다. 안 넘어간다.
나를 글쓰기의 세계로 들여준 작가님과 목요일의 그녀 중 한 명과 함께 서귀포에 갈 일이 있었다. 작가님이 달리기 이야기를 했다. 부부가 함께 달리는데 너무 좋다며 나 보고도 달리기를 해보란다. 피부도 좋아지고 혈색이 좋아지고 활력이 생기고.... 세상에 온통 달리라는 사람만 있다. "안 돼요. 힘들어요."
다음날, 남편이랑 오랜만에 고기를 먹었다. 우리는 한 끼만 같이 안 먹어도 오랜만인 느낌이다. 남편이 너무 잘 먹었다. 초등학생 입맛에 맞는 라면수프맛 술국에 평소 좋아하는 제주식 된장베이스의 한치물회까지 서비스로 나오니 고기를 더 잘 먹었다. "남편, 많이 먹었으니 좀 걷자." 서울 다녀오고 갑자기 추워지는 바람에 한동안 못 걸었다. 오는 길에 이호해수욕장으로 갔다. 가랑비에 옷 젖듯 사이비 종교에 빠지듯 조금씩 물들고 있었을까.
"남편, 우리 달리기 해볼까?"
물으며 런데이 앱을 깔았다.
"이거 정말 쉽대."
남편이 싫다고 버텼다.
일단 30분 코스 선택. 먼저 5분 워밍업 걷기. 2분 걷기. 여기까지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1분 뛰기.
"남편, 뛰어"
남편이 뛰었다. 나도 뛰었다. 남편이 버텼으면 나도 시들해져서 안 뛰었을지 모른다.
"헉헉"
1분.
앱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잘했다고 칭찬했다. 그게 뭐라고 기분이 좋았다. 2분 걷기. 숨 고르며 2분 걸었다. 다시 1분 뛰기. "나 이제 그만할래" 하던 남편이 또 따라 뛰었다. 그렇게 마지막 쿨다운 5분까지 총 30분을 했다. 뭐지 이 성취감은. 남편은 내 자세를 보며 잘난 척 달리는 자세까지 알려줬다. 같잖았지만 같이 뛰며 노력하는 마음을 생각해서 따라 했더니 정말 좀 쉬웠다. 상쾌했다. "남편, 내일 또 뛰자." "48시간 쉬라잖아. 내일은 푹 쉬어야 해." "엥? 난 못 들었는데." 앱을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나 달리기를 하고 말았다. 당분간 그녀들에는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