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준희 Mar 04. 2020

조직문화와 실용적 지혜

조직의 민첩성은 사람들이 자신의 지혜를 발휘하는 조직문화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로부터 “당신은 왜 일을 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일 자체가 너무 즐겁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일한다.” 등의 멋진 답변을 할 수도 있겠지만, 머릿속 한구석에서 떠오르는 “돈 벌기 위해 일하는 거지”라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일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 시대에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은 당연한 사실이다. 아니, 최소한 사실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회사에서 보여주는 모든 행동들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에 따른 매우 적합하고 정당한 행동들인 것이다. 다소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이러한 전제하에서는 회사의 미션이니 핵심가치니 하는 것들은 구성원들의 관점에서 자신과는 관계없는 공허한 것에 불과하며, 동시에 그것을 통해 어떠한 행동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는 더욱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일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언제부터 우리에게 당연한 믿음이 된 것일까?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에 살았던 한 남자의 취미생활에서 시작되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얻게 된 생각들을 기록하여, 1776년에 그 유명한 국부론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국부론은 인류에게 경제학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갖게 하였고, 그 후 현재까지 모든 경제와 경영분야에 있어서 구조적 사고의 기틀이 되어왔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인간은 그 본성이 원래부터 게으르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오직 개인적 이익만을 추구한다. 어떠한 공익도 증진하려고 의도하지도 않으며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할 뿐이다.”라고 정의했다. 사실 그 당시에 애덤 스미스의 이러한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난 200여년간의 인류 역사를 통해 경제적 측면의 모든 사회 시스템들이 이러한 관점을 기초로 구축되어 왔고, 기업과 조직의 모든 경영의 방식들이 이러한 믿음을 전제로 디자인되고 운영되어왔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러한 전제를 기반으로 형성된 사회와 조직의 시스템 속에서 지난 세월을 살아온 우리 인류는 애덤 스미스가 정의한 그대로의 모습이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어째면 200여년전 애덤 스미스가 정의한 사람에 대한 생각은 처음부터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을 수도 있고 그냥 틀린 이론이나 오류 그 자체였다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어떤 어떤 이론에 오류가 있다면 과학적 증명의 과정을 통해 체계적으로 폐기되거나 다른 이론으로 대치되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의 생각은 설사 그 당시에는 오류였다고 하더라도 지난 시간들 속에서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애덤 스미스도 이미 이것을 예언하였다는 사실이다. 애덤 스미스는 “이러한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인간이 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멍청이가 되어간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바꾸어 정리하면 “이러한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가능한 사고 능력을 점차적으로 잃어가게 된다.”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주변에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얼마전 예비군 훈련을 다녀온 신입 컨설턴트와 저녁식사를 하면 군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친구의 아버님이 군대에 가는 아들에게 해준 조언이 “중간만 하라”였다고 한다. 필자보다 20년 먼저 군생활을 하셨던 그 친구의 아버님도 군에서는 중간만 하셨고, 필자도 군에서는 중간만 했으며, 필자보다 20년 후에 군생활을 한 그 친구 또한 중간만 했을 것이다. 아무리 역량이 뛰어난 사람도, 아무리 열정적인 사람도, 아무리 창의적인 사람이라도 군에서는 시대를 막론하고 그 누구나 모두 중간만 한다. 모두가 중간만 하는 그야말로 미디어 커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직장에서도 이러한 유사한 경험들을 하곤 한다. 열정적이고 도전적이었던 신입사원이 불과 몇 년 만에 세상에 달관한 듯한 대리의 모습이 되어버리는 것이나 전문역량을 갖춘 탁월한 연구원이 출퇴근 시간에 연연하는 단순 직장인이 되어가는 것, 또는 빛나는 비전을 가슴에 품고 있던 선배가 자신의 실익이나 챙기려는 상투적인 리더의 모습이 되어가는 것 등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200여년 전 한 학자가 가졌던 어쩌면 완벽한 오류 그 자체일 수도 있었던 하나의 이론에 의해 사회와 조직의 시스템들이 점점 더 정교하게 구축되어 왔고, 오랜 시간 그러한 시스템 속에서 생존해온 조직 구성원들은 그 학자의 예언과 같이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탁월한 사고능력은 점점 잃어가고 점점 더 멍청이 같은 행동들만을 하게 되는 것이지도 모른다. 


90년대식의 성공을 일구어온 기업들은 경영의 시스템을 더 정교하고 더 효율적으로 구축해 감으로서 구성원들이 점점 더 멍청이 되어가던 말던 관계없이 조직의 경쟁력을 유지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에릭 슈미트의 표현처럼 ‘우리의 인식과 감각을 마비시키는 속도로 일어나는 혁신의 폭발’과 같은 우리 시대에, 그리고 70년대에 갤 브레이스가 주장한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개념보다 한 1000배쯤 더 강력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우리 시대에, 이렇게 경영의 시스템을 더 정교하고 더 효율적인 구축해 가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조직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그동안 오랜 세월 조금씩 잃어왔던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탁월한 사고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일할수 있는 조직적인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조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사람들이 직장에서 또는 일 속에서 발현하는 이러한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탁월한 사고능력을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을 빌리면 실용적 지혜 또는 실천적 지혜(Practical Wisdom)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용적 지혜는 인간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이미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특정 상황 속에 존재하는 미묘한 차이들을 감지할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 상황에 있어서 가장 올바르고 가장 유익한 최선의 의사결정과 행동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선택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실용적 지혜는 조직 내의 구성원들의 행동들이 규범화되어질수록 점점 더 약화되는 반면 구성원들의 자기 결정력이 강조될수록 점점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든 주변의 자원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그리고 가장 올바르게 활용하여 최적의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탁월한 역량을 이미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수많은 기업들이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하여 오랜 기간 정착되어온 조직의 시스템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탁월한 역량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용적 지혜는 이론적인 관점에서 특정 상황 속에서 가장 올바르고 유익한 최선의 행동을 찾아낼 수 있는 기술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실용적 지혜의 스킬(Moral Skill)’과 이러한 가장 올바르고 유익한 최선의 행동을 선택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하도록 하는 동기라고 할 수 있는 ‘실용적 지혜의 의지(Moral Will)’로 구분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 


다소 클리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병원 청소부 이야기를 잠시 예로 들어보자. 기존의 시스템적인 관점에서 병원 청소부가 자신의 일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병원 청소부가 해야 하는 일을 정교하고 세부적인 직무 리스트와 청소 매뉴얼을 구축하고, 최신 기술의 최첨단 청소기구를 제공하고 청소 기술에 대한 전문적인 훈련을 하면 된다. 


그런데 베리 슈와츠의 저서에 등장하는 병원 청소부들을 잠시 살펴보자. 힘든 수술 후에 회복하기 위해서 복도에서 느리게 혼자 열심히 걷기 운동하는 한 환자를 생각하여 하루 동안 복도에 걸레질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마이크라는 청소부, 위독한 상태한 빠진 환자 곁을 지키느라 며칠을 뜬눈으로 보내다가 마침내 잠시 낮잠을 자고 있는 가족들을 위하여 대기실을 청소하라는 매니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셜린이라는 청소부, 코마 상태에 빠진 아들을 지켜보던 보호자 아버지가 청소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었을 때 모른 척 똑같은 방을 두 번 청소하였던 루크라는 청소부 등의 이야기들은 특별하거나 탁월한 행동들이라고 할 수 없는 평범한 행동들, 누구나 그렇게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의 행동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행동들을 의사나 간호사들의 직접적인 의료행위들 만큼 병원이라는 비즈니스에서 비중이 있거나 매우 중요한 행동들은 아닐지 몰라도, 병원의 다양한 조직활동과 조직성과에  상당한 수준의 영향력 미치는 매우 필수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들은 기존의 시스템적인 관점에서 절대로 유도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아무리 세심하게 업무 매뉴얼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서로 다른 상황에 가장 올바른 행동들을 규정할 수는 없다. 단순히 보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보상하거나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감정노동으로 인식하지 않고 흔쾌히 수용하는 것 등을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병원 청소부라는 비교적 단순한 일임에도 그러할진대, 기업에서 일반적으로 구성원들 개개인이 수행하고 있는 복잡하고 다양한 사고와 판단을 필요로 하는 복합적인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인 것은 특정 상황 속에서 가장 올바르고 유익한 최선의 행동을 찾아내는 기술인 이러한 ‘실용적 지혜의 스킬(Moral Skill)’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장 인간적인 능력이라는 점이다. 단 구성원들이 올바르고 유익한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와 주변의 사람들의 공감, 그리고 거기에 일정 수준의 업무적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이러한 구성원들의 비 규정화되고 비 정형화된 행동들이 허용될 수 있고, 그러한 행동의 목적이 강조되는 조직문화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에 등장하는 울프치슨이라는 마을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우리나라만큼이나 원자력발전에 의존도가 높은 나라인 스위스에서 핵 폐기물 시설 유치 예정지로 울픈치슨이라는 작은 마을 선정한 적이 있었다. 선정 이전에 몇몇의 경제학자들이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시설 유치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핵폐기물 시설을 마을 유치한다는 것은 전 세계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방사선 유출이나 폭발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는 우려뿐만 아니라 가끼이 보면 당장의 집값도 떨어질 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론조사 결과 51% 찬성으로 핵폐기물 시설 유치에 마을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스위스 어딘가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시설이라면 위험하고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스위스 국민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마음에서 수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같은 시기에 다른 여론조사가 진행되었다. 이번에는 핵폐기물 시설이 마을에 들어오면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매년 6주간의 임금을 보상금으로 지불하겠다는 추가적인 조건을 제시하였다. 그 결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정대로 단 25%의 응답자들만이 핵폐기물 시설 유치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상금이 있고 없고는 핵심 폐기물 시설을 유치하는 것에서 오는 위험서 자체를 줄여 주지는 않는다. 단지 시설 유치로 발생될 수 있는 개인적인 손실을 줄여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손실을 줄여주는 조건이기에 찬성률이 높아져야 하는 것이 논리적이 추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마을의 사람들에게는 보상금이라는 트리거는 '무엇이 가장 올바르고 모두에게 유익한 행동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을 '무엇이 나 개인에게 이익이 될까'라는 관점으로 전환시켰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추가적인 행동을 유발하게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보상이다. 그러나 보상은 올바른 행동이나 추가적이고 창의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 있어서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어도 궁극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수많은 실증적인 연구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인 것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가장 올바르고 유익한 최선의 행동을 선택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하도록 하는 동기인 ‘실용적 지혜의 의지(Moral Will)’ 또한 모든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장 인간적인 능력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인식과 감각이 마비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우리 시대에 조직의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잘 짜인 전략과 정교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외부적인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적응력을 갖추고, 때로는 조직 내부에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춘 조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이 인간으로서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실용적 지혜를 일상의 일하는 방식으로 활용하고, 이를 통해 성과를 만들어가는 조직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금은 200여년 전 한 사람이 정의한 편협한 믿음에서 비롯된 잘못된 집단의 가정에서 과감히 벗어나서 사람에 대한 그리고 우리의 일에 대한 새롭고 올바른 가정들이 우리 조직 안에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조직문화적인 노력과 이것을 강화하는 경영의 방식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다. 


심리학의 전설적인 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사랑과 일은 우리의 인간다움을 근본이다.(Love and Work are the cornerstones of our humanness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되새겨 보자. 우리가 날마다 일을 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이익 추구의 관점에서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고, 우리가 날마다 일을 하는 이유는 더 인간다움을 느끼기 위함이고, 독립된 인간으로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자부심과 행복을 위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치 사랑이 단순히 인류의 종속 번식과 유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자기경영의 조직문화 패러다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