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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set엄마 Aug 28. 2021

“다녀올께”의 무게

몇번이나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수없이 발행취소를 눌렀던 이 글

아직도 마음은 완전히 아물지 않았었나 싶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아침마다 바쁘게 집을 나서며 아이들에게 하는 인사, “얘들아 엄마 다녀올께”

습관처럼 매일 아침 하는 이 말이 지키기 어려운 말인지 몰랐었다.  작년 꼭 이맘때 난 집을 나서며 다녀올께라고 아이들과 인사했지만 그 날 난 끝내 집으로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지 못했었다.


시어머니께서 본가로 가시고, 아버님의 간호를 도맡아 하시고, 도무지 정리 될 거 같지 않았던 우리의 일상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였다.

미뤄둔 여러가지 회사 일들과 개인적인 일들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몸에 있는 수분이 다 말라버린 기분, 나 혼자 진공관 안에 있는 기분, 피곤하면 종종 느꼈었던 터라 이번 주말에는 좀 쉬어야겠다라고 생각하면서 동도 트지않은 새벽에 일어나 건강검진을 받으러 갈 채비를 하였다.  옷을 갈아입는데 눈 앞에 까만 점 하나가 둥둥 떠다니는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날파리가 날아다니네” 

그날따라 건강검진은 더욱 더 형식적으로 느껴졌고, 그냥 빨리 끝났으면 했다.  특별한 이상 소견없이 건강검진은 끝났고 그날 오후에 중요한 계약 약속이 있었기에 검진장을 빨리 나오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나왔다.  긴장하며 준비했던 계약은 잘 마무리 되어서 집에 돌아가 낮잠이라도 자고 싶었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서 아이들과 간식도 나눠먹고 밀린 이야기도 하다가 그날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다음 날 출근했는데 머리가 많이 아픈 것도 아니지만 굉장히 기분 나쁘게 머리가 지끈거린다.  

회의를 하는데 시야에 어제 보았던 그 날파리가 오늘은 굉장히 여러 마리가 뭉게뭉게 올라오는 데 어지러워서 회의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이러다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또 바쁜 하루가 지나갔다.  집에 가는 길에 여전히 머리가 아프고, 늦은 저녁을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오른쪽 구석으로 마치 내 콧대가 한 부분이 보이는 듯 하다. 오른쪽 아래 쪽에 진회색 삼각형이 보인다.  뭐지? 그냥 눕고 싶다.


오른쪽 눈 아래쪽에 보이는 삼각형은 자고 일어나도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커지는 것 같고 이 기분 나쁜 두통은 도무지 없어질 기색이 없다. 마치 눈 아랫쪽 한구석이 짙은 커튼이 쳐져있는 것 같다.  


안되겠다, 오늘은 안과에 가봐야겠다.

안과 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렸는데, 파우치 속의 손거울이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갑자기 뒷머리가 뜨거워지는 느낌이 나를 더 불안하게 한다.

안과에서 사진을 여러 번 찍더니 의사선생님과 간호사가 본인들끼리 작은 소리로 말하며 자꾸 다른 사진을 한번만 더 찍자고 한다.  드디어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말한다.

“응급 상황입니다.  한시도 지체하지 마시고 큰 병원으로 가셔서 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  사실 이미 늦은 감이 있습니다. 망막박리입니다.  지체되면 실명할 수 있습니다”

도데체 나한테 무슨 말을 하시는 거지.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장 보호자에게 연락하라고 하는데, 남편에게 뭐라고 설명을 해야할지, 사실은 내가 이 상황이,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이해를 못했기 때문에.

“선생님 죄송하지만 제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 테니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의사 선생님과 남편은 통화를 마치고, 집 근처 대형병원 응급실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서 부들거리는 마음과 손을 다잡으며 짐을 쌌다.


응급실에서 여러가지 검사를 마치고 퇴근 후에 다시 병원으로 오셔서 응급환자인 나를 진료해주시고 다음 날 수술을 집도해 주시겠다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다음 날 오전 수술 일정을 잡고 응급실에 바로 입원 절차로 마치고 입원하였다.  그렇게 난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였고, 수술 후 예후가 좋지 않아서 열흘이나 더 있다가 퇴원을 하였다.  통상적으로 2박3일이면 퇴원하는 망막박리 수술 환자들에 비해 상당히 오래 입원했었다.  퇴원 후에도 예기치 못한 안내 출혈과 출렁이는 안압으로 거의 매일 외래진료를 받으러 다녔었고, 지속되는 두통과 시력이 돌아올 것 같지 않은 불안감으로 내 마음은 가시밭길이였다.  한달 후에 돌아갈 수 있었던 회사는 결국 세 달이 지나고서야 돌아갈 수 있었다.  


이제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지만 막상 글로 쓰려니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수술실로 들어가기까지 너무나 두려웠었다.  내가 처해진 이 모든 상황들이, 아이들 생각에,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하시는 부모님 생각에, 내 옆에서 태연한 척 하는 남편 손을 붙잡고 수술장 앞에서 한없이 울었다.


글은 쓰는 이 순간에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회복기간에는 다시 일어서야 된다는 일념으로 몸과 마음의 고통스러움을 견디고 또 견뎠다.  그동안 너무나 당연히 나에게 주어진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것들 이였는지 잃을 뻔 하고서야 그 소중함을 뼈져리게 느꼈다.   힘든 상황 속에도 감사하는 법을 깨달았다.

 

망막박리 주요 증상 – 이런 증상이 보이면 꼭 병원에 가세요

“날파리가 날아다니네” – 비문증이라고 하는데, 비문증과 두통이 동반된다면 반드시 신속하게 병원을 방문하세요  두통이 동반되지 않더라고 비문증을 경험하였다면 병원을 꼭 방문하세요.

“오른쪽 눈 구석에 진회색 삼각형이 보인다” – 커튼처럼 시야의 한 부분이 가려져 보인다면 지체없이 응급실로 향하세요.


시력이 좋지 않아서 고도 근시가 있다면 정기적으로 안과 검진을 받으세요.

최선의 치료는 예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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