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 어린 여동생은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남자친구와 그렇게 쭉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약속하였다. 내가 보기엔 너무 재미없는 그녀의 연애사였고, 제대로 만나는 남자친구 없이 여자들과 어울려 해외여행 다닐 궁리만 하는 내가 부모님 보기에는 참 한심스러웠다. 어떻게든 역혼은 안하고 싶어하시던 부모님은 나몰래 결혼정보회사에 가입도 하시고, 모든 지연, 학연등을 동원해 쉴새없이 선자리를 조달하셨다. 군말없이 선자리를 나가긴 했지만, 결과는 좋지않았다.
결국 현 제부 (구 동생 남친)은 번듯한 직장에 취업을 하고 프로포즈를 하였고, 결혼은 급물살을 타며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어떻게든 나를 먼저 결혼시키겠다는 희망을 놓지 않으시고 더더 나를 압박해왔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결혼이라면, 100번도 넘게 했겠지... 물리적으로 내 결혼이 동생 결혼보다 먼저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지면서 나는 좀 비참해졌었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맨날 저렇게 여자애들이랑 몰려 다니니..."
"이젠 눈을 좀 낮출때도 되었지않니?"
"아이구... 우리 집 신발장은 다 네 신발이야. 정리 좀 해, 시집을 가던지"
급기야 나는 하루 엉엉 울면서 출근을 했다.
퇴근하고 돌아와서 부모님께 선언했다.
"두 분이 이러신다고 바뀌는 건 없어요. 내 결혼에 대해 가장 걱정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저에요. 제 미래에 가장 걱정하는 사람은 저라구요, 제 인생이라구요!"
인생은 결국 혼자다. 내가 고등학교 아들 대신 시험을 봐줄수도 없고, 마음이 아픈 남편 대신 아파줄 수도 없다. 그 어떤 아픔도 대신해 줄수 없다. 그럼에도 함께 기뻐해주고, 위로해주고, 보듬어주는 가족과 배우자가 있음에 크게 감사하다. 대신 해줄수는 없지만, 함께 해준다는 것은 개인전에 출전한 선수에게 목이 터져라 응원해주는 천군만마 같다.
이 글은 사춘기 아이들의 엄마들에게 바칩니다. 엄마가 안달복달 해도 결국은 인생은 아이의 것이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더라구요.
헤르만 헤세 시 <혼자>를 읽고 영감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