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주 +6
출산 전 마지막 내진을 했지만, 이 녀석은 나올 기미가 전혀 없단다. 모든 상황은 자연 분만을 할수 있는 긍정적이지만, 40주를 넘겨서 뱃속에 있는 것 보다는 세상에 나오는 것이 이득이니 40주 3일쯤 유도분만 날짜는 미리 잡아놓자고 하셨다. 물론, 그 전에 아이가 낳올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진 말라고 하셨다.
40주 +3
이 녀석은 결국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금식을 하고, 입원준비와 출산 가방을 챙겨 유도분만을 위해 새벽에 병원 도착했다. 내 마음은 참으로 비장했다. 출산의 고통이 어떤건지 두려웠고, 엄마가 된다는 생각과 아이를 만나면 어떨까 등등 만감이 교차하였다. 병원에 도착하여 출산을 위한 여러가지 준비를 하고, 촉진제를 맞았다. 촉진제를 맞고 이후 싸르르한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아... 이 정도의 진통인가?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병원에 있었지만, 선생님과 나는 포기했다. 이 녀석은 아직 준비가 안되었나부다. 진진통이 걸리지 않았고, 40주를 갓 넘긴 시점이기에 여기서 더 무리하게 시도하지말고, 일주일 더 지켜보며 아이가 나오길 기다려보자 하셨다. 왠지 패배한 심정으로 병원에서 가까운 친정으로 가서 엄마가 해주신 밥을 먹고, 잠을 청했다. 오늘 하루 휴가를 냈던 남편은 우리집으로 가서 내일은 회사에 출근했다가 퇴근 후에 데리러 올테니 친정에서 쉬고 있으라 했다.
40주 +4
남편이 우리집으로 가고, 나는 잠을 잘수 없었다.
굉장히 묵직하고 큰 통증이 나를 강타했다. 그러더니 주기적으로 통증이 왔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오늘 이 녀석을 만나는 날이구나. 밤새도록 통증의 주기를 확인하며 견뎠다. 새벽에 엄마가 일어나시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갔다.
"엄마, 나 배아파. 병원 가야할 거 같아"
엄마는 깜짝 놀라시며 아빠에게 서둘러 병원갈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내 정신이 아니였다. 어제 느꼈던 건 감히 통증이라 부를수도 없는 것이였다. 당직 원장님께서 내진을 하시는데, 남자 선생님이셨다. 평상시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였지만, 남자고 여자고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나 좀, 누가 이 통증 좀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 생각뿐이였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호흡을 알려주시는데, 다 필요없으니 나 좀 살려주시라 했다. 그 땐 몰랐다, 내가 덜 아파서 그랬다는 걸.
남편이 분만실로 들어오고, 침대가 올라가고, 수술등이 내려오더니, 초록색 수술복을 입으신 주치의 원장님과 간호사님들이 등장하셨다. 아... 올 것이 왔구나. 힘 주세요 하면 힘을 주라고 하신다. 잘하고 있다고,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아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힘을 주라는 신호에 힘을 주는데 앞이 희미해졌다. 앞이 노래진다는 말이 이런 말이구나, 여기서 정신을 잡지 않으면 영영 아기를 못 만날것 같았다. 희미해지는 정신을 잡고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마지막 한번 더 힘을 줬다.
20xxs년 3월 2x일 오후 12시 28분 출생
그렇게 나는 첫 아이를 만났다. 초산이지만, 병원 도착한 지 3시간 반만에 출산하는 경이로운 기록도 함께. 내 인생에서 가장 설레였던 순간은 아이를 처음 만났던 순간이였다.
출산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었다. 마치 폭풍우가 치는 바다 한가운데 작은 돛단배를 타고 쉴새없이 밀려드는 파도, 폭우와 바람을 온 몸으로 맞는 기분이였다. 지금도 앞이 희미해졌던 그 순간이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난다. 내가 그 순간에 정신을 잃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간혹 하기도 한다. 그 상황이 출산이 아니였다면 나 역시 포기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때로는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고, 험난한 길을 택하더라도 싸우고 또 싸우며 않고 견뎌낼 수도 있다. 어떤 길을 가더라도 그 길에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얀마텔 소설 <파이 이야기> 를 읽고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놓아버리지 않은 아둔함에 영감을 얻어서 창작했습니다.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자식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