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은 두 번, 세 번 확인하자
여행 전 악몽에 시달리다가 일어났다. 꿈은 인천공항에 도착했는데, 아이들의 여권이 모조리 유효기간이 다 끝나버린 것이다. 항공사 카운터 앞에서 나는 거의 쓰러지다시피 했다.
일어나자마자 아이들의 여권을 꺼내서 몇 번이나 확인했다. 막내의 여권만 유효기간이 끝나 있었다. 역산을 해보니, 빨리 신청하면 여행 가기 전 주에 받을 수 있겠다 싶어서 막내를 이끌고 사진관으로 갔다.
"아이...꼭 오늘 가야 돼? 귀찮은데"
"오늘 사진 안 찍으면 여행 못 가. 얼른 가자, 엄마 주중에 시간이 없어"
부랴부랴 준비해서 남편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월요일 아침에 구청 여권과에 가서 꼭꼭 접수하시라.
남편은 여권 신청 서류를 접수했고, 발급 예정일은 다행히 여유가 있었다.
이 모든 얘기를 전해 들은 딸은
"엄마, 그거 예지몽이야? 엄마 복권 사" 순간, 정말 복권사서 여행경비라도 뽑아야 하나 했었다.
막내의 여권은 발급예정일보다 하루 더 빨리 나와서 여행 준비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정확히 여행을 떠나기 4일 전 (영업일 기준 아니고, 달력 일수 기준), 나는 Visit Japan웹을 통하여 가족의 입국을 등록하고 있었다. 그날을 금요일이었다.
여기서 Visit Japan의 깨알정보
Visit Japan은 일본 입국 시 꼭 필요한 정보를 웹으로 사전 등록하는 서비스이다.
예전에 비행기에서 작성하던 입국카드를 온라인상으로 사전 등록한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물론 지금도 종이 입국카드가 존재하여 사전에 등록하지 못했거나 또는 종이가 편하신 분들은 입국카드를 작성하여도 아무 문제없다.
Visit Japan을 시작하려면 이메일 인증을 한 후 입국 정보 (항공편명, 호텔주소, 이용자 등록, 세관 신고물품 유무를 등록하면 된다)
편리한 점은 가족 대표 한 명 계정을 만든 뒤, 동반 가족을 함께 등록할 수 있다.
모든 절차가 끝나면 가족 개인별로 입국 QR과 세관 QR이 발급된다.
입국 시 입국 QR로 입국심사를 간소화하고, 세관 QR로 세관신고를 대체할 수 있다.
다녀와보니 뭐 크게 간소화하거나 시간을 줄여주진 않았다. 항공기 여러 대가 거의 시차가 없이 도착하고, 승객들이 쏟아져 나오는 데 QR이 있어서도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QR이 있어도 입국 심사를 어찌나 꼼꼼히 하는지 여권을 앞으로 보고 뒤로 보고, 본인 확인하고, 손가락 스캔 뜨고 얼굴 사진 찍고. 귀국할 때 느꼈지만 역시 인천공항이 최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가족 등록을 시작했다. 기본적인 개인정보인 여권번호, 여권 만기를 입력하는데 기절할뻔했다. 남편의 여권 만기는 무려 5년 전이였다. 나는 내 여권과 아이들의 여권 만기만 확인했지, 남편 여권은 열어볼 생각도 안 했다. 많이 뜨끔했다. 내 새끼가 아니라도 그렇지, 음... 너무 했군.
숨을 고르고 남편에게 말했다. "일어나셔, 나랑 구청에 가야겠어"
남편은 지금 뭐라는 거야 라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당신 여권 만기 5년 전에 끝났어. 긴급여권 발급받으러 가야 돼. 지금"
친한 회사 선배가, 대학생 된 딸이 일본 여행을 가려는데 여권 만기 확인 안 해서 못 가는 줄 알았는데, 당일 긴급여권을 발급받아서 갔다는 얘기가 기억이 났다. 이래서 아줌마 수다도 중요하다, 좋은 정보의 교류의 장이니. 점심 먹으면서 수다를 떨지 않았다면 내가 긴급여권에 대해 어찌 알았을까!
"나 못 가는 거 아냐?"
"걱정 마, 긴급 여권 받으면 갈 수 있어"
외교부 사이트에 의하면 긴급여권은 긴급한 사유로 인하여 발급하는 비전자여권이며,
발급대상은 전자여권을 발급(재발급)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로서, 여권의 긴급한 발급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발급 가능하다.
본인의 과실로 여권 만기를 확인하지 않았는데, 긴급 여권 발급사유에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우리나라 외교부는 굉장히 관대하여 긴급여권을 3시간 만에 발급해 주었다. 긴급여권은 인천공항, 서울지역 구청등 여권 발급하는 관공서에서는 대부분 발급해 준다. 다만, 입국 국가에 따라 긴급여권 소지자는 입국이 거부될 수 있으니 방문국 대사관에 사전에 확인하여 당황스러운 일은 막아야겠다. 일본 대시관에서 대한민국 긴급여권 소지자는 입국이 가능하다는 확인을 유선으로 받았으며, 실제로 아무 문제 없이 입국하였다. 긴급 여권은 단수여권이라 단 한 번의 출국에만 사용할 수 있다. 추가적으로, 긴급 여권 소지자는 위탁수하물을 체크인을 할 수 없어서 나와 딸의 이름으로 수하물을 부쳤다.
많은 해프닝을 겪고, 남편까지 데리고 오사카로 출국하였다.
또 한 번 느낀 건 평상시 그의 성격이라면 본인 여권 만기 확인 안 했다고 여행 다녀오고 나서도 나를 나무라고, 잔소리를 했겠지만, 아프고 난 뒤라 그런지, 그저 당황스러워만 했다. 어쨌든 나는 수습해 주었니깐.
마지막으로, 공항은 우리나라가 최고, 여권 발급도 우리나라가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