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가 걸려있다면
여느 주말 저녁처럼 정신없이 저녁을 먹고, 나는 설거지 남편은 거실에서 빨래를 정리하고 있었다.
막내가 두 돌이 지난 가을날이었다. 아이들을 깔깔대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듯하고, 남편이 아이들 근처에 있었다.
"쿵" 하는 소리가 나긴 했으나, 남편이 옆에 있었기에 그저 어디에 부딪혔겠지 하며 뒤를 돌아보지 않았는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몇 걸음 되지 않는 주방에서 거실까지 고무장갑을 집어던지며 뛰어갔다. 막내가 소파에서 뛰다가 떨어졌단다. 남편이 아이를 들었는데 아이가 울지를 않고 축 늘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흔들어도 반응이 없었다. 앞이 하얘졌다. 남편도 사색이 되어 말도 못 하고 서로를 쳐다보는데 아이가 그제야 울기 시작했다.
"우앙!"
"119 불러"
"아이가 소파에서 떨어졌는데, 잠시 의식을 잃었습니다. 지금은 울기 시작하는데 도와주세요"
눈물도 나지 않았다. 내복바람의 아이를 담요 싸고, 설거지 하던 옷차림에 잠바만 입고 도착한 구급차에 올라탔다. 남편은 근처에 사시는 시댁에 첫째와 둘째를 맡기고 나를 따라오겠다고 하였다.
119 구급대원은 아이에게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셨다.
"이름이 뭐예요?"
"몇 살이에요?"
"어디 살아요?"
"무슨 어린이집 다녀요?"
"무슨 반이에요?
아이는 신기하게도 대답을 곧잘 했다.
일요일 저녁 응급실은 난리통이었다. 무서웠다. 고통을 참지 못하여 지르는 비명과 분주한 의사들의 움직임에 나도 모르게 아이를 더 꼭 껴안았다. 아이는 눈만 때굴때굴 굴리며, 나와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젊은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지금 생각해 보니 전공의 선생님이셨다) 사고 정황, 상태를 간단히 질문하고 확인하더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하셨다. 그 뒤로 와서는, 아이는 머리 쪽 CT촬영을 해야 하니 준비하란다. 또한 아이들을 대게 촬영 시 협조가 어려우니 전신마취를 하고 촬영을 진행할 수도 있다고 설명하셨다. 전신마취가 필요하면 6시간 금식을 해야 한다는 설명도 함께.
그. 러. 나. 가장 중요한 설명이 빠졌다. 왜, CT촬영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 아이가 왜 CT촬영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세요"
" 아이가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 게 언제죠?"
"CT촬영은 소아에게 방사능 노출의 위험이 있는데 감수하고라도 하시는 이유가 뭐죠? 더군다나 전신마취까지 할 거라면서요? 설명을 해주세요"
나는 내가 원하는 이유를 듣지 못하였고, 결국 언성이 높아졌다. 때마침 남편이 들어와서 나를 진정시켰고, 그 의사 선생님은 자리를 비웠다. 내 옆에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어린이 환자 보호자께서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우리 애도 고만할 때 CT촬영한 적이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결국 전공의 선생님은 교수님을 모시고 왔고, 우리 아이는 짧은 시간이지만 뇌진탕이 의심되니 방사능 노출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촬영을 하는 게 이득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의료진에게 맡기시라고 하셨다. 나는 그제사 감정을 가라앉히며 촬영에 동의하였다.
"엄마 똑바로 봐"
"집에 가고 싶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가 쿵하고 소파에서 떨어져서 머리를 아야 했어.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머리 사진을 찍으실 거야. 사진은 찍을 때는 침대에 누워서 동굴을 지나갈 거야. 그런데 꼭 약속할 게 있어. 막내는 사진 찍는 동안 절대로 움직이면 안 돼. 눈이라도 깜빡거리면 우리는 내일까지 집에 못 가. 대신 엄마가 막내 사진 찍을 때 손잡아 줄게. 할 수 있겠어?"
아이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마취 없이 촬영 시도하겠습니다"
병원에 배려에 나는 방사능 보호복을 입고, 촬영실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의 손을 잡아줬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잘 해냈다.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왔고, 며칠 뒤 신경외과 진료 시에도 아이의 뇌진탕은 경미한 것으로 더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다. 아이가 다쳐서 병원으로 갔는데, 충분한 정보를 전달받지 않은 상태에서 선택보다는 통보를 받으며, 시간의 압박을 받는 그 상황은 참기 어려웠다. 그 무엇보다 힘들고 감정적이 되었던 건, 내가 아이를 위해 선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 몸이라면 이렇게까지 날카롭게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새끼는 나보다 소중하기에.
그렇지만, 막무가내로 내 새끼만 앞세우는 엄마는 아니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응급실을 나올 때 정중히 사과드리고 나왔습니다. 경우는 지키고 살려고 노력합니다.
덧붙임: 아수라장인 응급실에 들어왔을 때 눈에서 레이저를 쏘며 따발총을 쏘던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차리면서 매우 부끄러웠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