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꿈 / 육군 장교 (2012. 3 ~ 2014. 6)
뭐든 기준을 높게 설정하는 까닭에 나는 나 자신의 퍼포먼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가 부대 내에서는 나름의 인정을 받았다. 짧은 소대장 임무 수행을 끝으로 '교육 장교'라는 보직에 임명된 것이다.
교육 장교라는 직책은 그 직책에 부여되는 임무가 굉장히 많고, 처리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아 장기 복무를 희망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맡고 싶어 하지 않는 자리였다. 대대 내 동기 중에 장기 복무 희망자가 없어 나를 포함한 4명의 중위 중 한 명은 필히 그 자리를 맡아야 했다. 일이 진척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운명의 화살이 나를 피해 가길 간절히 기도했고, 실제로 피해 가는 것처럼 보여 꽤나 안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일이 갑작스럽게 틀어지면서 내가 내정자가 되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한 번 틀어졌으니 다시 한번 틀어질 수도 있을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운명의 화살은 그대로 날아와 내 몸속 깊숙이 박혔다.
소대장 직을 내려놓던 날 계단에 쭈그려 앉아 울었던 기억이 난다. 희미한 기억과 감정들을 들춰내 그 눈물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본다. 그 눈물에는 정든 중대와 소대를 떠나는 데에서 오는 슬픔, 교육 장교 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고생길이 훤한 내 신세에 대한 한탄 등 많은 감정들이 버무려져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난 교육 장교가 되었다.
소대장 임무를 수행하며 전임 교육 장교님이 너무나도 고생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나도 똑같은 신세가 되겠구나 싶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전임 교육 장교님께서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하신 건 알고 보니 전 작전 과장님 때문이었다. 작전 과장은 교육 장교의 직속 상사로 대대 내에서는 대대장 다음으로 계급이 높은 직책이다. 전임 작전 과장님은 완벽주의자에 엄청나게 깐깐하시기로 유명하신 분이었고, 그분 밑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했던 전임 교육 장교님은 있는 고생을 다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교육 장교 임무를 시작하기 한, 두 달 전에 작전 과장님이 바뀌셨고, 바뀐 작전 과장님은 전임 작전 과장님과는 정반대 편에 있는 인물이셨다. 작전 과장님은 여러 모로 부족한 나를 덕으로 보살피셨다. 지나고 보니 내가 참 인복이 많았던 것 같다. 보통은 참모진과 중대장들과의 관계가 껄끄럽기 마련인데 우리 대대는 그렇지 않았다. 중대장님들이 본부의 지시에 잘 협조해주시고, 유기적으로 업무가 이루어지니 내가 일을 하기에 참 편했다. 본부 중대장님을 포함하여 네 명의 중대장님 모두 좋은 분들이셨다. 특히나 전임 교육 장교셨던 인사 과장님과 동기였던 정보 과장이 가장 가까이에서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
전역이 예정된 해에 또 한 번 새로운 작전 과장님을 모시게 되었는데, 이 분 또한 너무나도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셨다. 전역한다고 뺀질거리며 제대로 일처리를 안 한 것 같아 여태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꼭 한 번 만나 뵙고 죄송하다고 사과드리고 싶다. 아무튼 이 모든 귀인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교육 장교 임무를 제대로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교육 장교 시절은 관료제 조직의 핵심부에서 일하며 그 병폐를 면면이 확인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아주 미약하게 남아있었던 직업 군인의 꿈이 이때 완전하게 사라졌다. 아주 잠깐은 내가 장군이 되어 이 조직을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는 혁명적인 상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은 '군대는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며, 내가 가진 최고의 모습을 끌어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였다. 나는 다시 꿈을 찾아야 했다. 큰 틀은 정해졌다. 남 밑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