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외인의 똥간을 치웠던 육군 장교 이야기

오랜 꿈 / 육군 장교 (2012. 3 ~ 2014. 6)

by 정현태


부사관들과의 관계만큼 어려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병사들과의 관계 또한 쉽지는 않았다. 2소대 병사들 대부분이 상병이나 병장으로, 흔히 말해 짬밥을 많이 먹은 아이들이었다. 성격이 강하고, 개성이 뚜렷하여 속으로는 '이 아이들을 내가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도 교육 기관에서 들었던 것과는 달리 병사들이 나의 통제를 잘 따랐다. 여기서도 부소대장의 도움이 컸다. 병사들의 성격이 아무리 강해봐야 부소대장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이를테면 부소대장은 호랑이였고, 병사들은 표범이었다. 나는 얼떨결에 정글의 왕이 된 하룻강아지였다. 부소대장은 가끔 지나가는 말로 '소대장님 말씀 잘 들어라.'라고 말했고, 아이들은 그런 부소대장의 말을 곧잘 따랐다. 부소대장도 그렇고, 병사들도 그렇고, 가만 보면 겉으로 강한 사람들이 안에는 또 따듯한 정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부소대장과는 소대장 직책을 끝내면서 관계가 단절되었지만 당시 병장, 상병이었던 아이들 4명과는 거의 10년이 흐른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임무 수행도 제대로 못한 소대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일이나, 명절 같은 날이면 항상 먼저 안부를 물어온다. 종우, 재훈이, 동은이, 현준이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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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우가 전역하던 날(좌), 종우가 전역한 후(우) - 그 사이 종우는 요식업에서 크게 성공하고 예쁜 가정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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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이가 전역하던 날(좌), 얼마 전 재훈이와(우) - 알고 보니 옆 동네 살고 있던 재훈이와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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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꼼 얼굴만 나와 있는 친구 옆이 현준이, 우측이 동은이(좌), 얼마 전 동은이와(우) - 동은이는 외제차를 모는 카페 사장이 되었다.


전차 소대장의 주된 임무는 전차 3대를 관리하고, 그 전차에 탑승하는 약 12명의 승무원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임무마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나는 참 무능했다. 장비(전차)가 중요한 부대라 하루 일과표에 장비를 정비하고 관리하는 시간이 무조건 들어가 있는데, 이 시간에 적극적으로 소대원과 함께 하지 못한 것이 그렇게 후회가 된다. 비겁한 변명이지만 내가 몸 담았던 2중대의 환경이 날 그렇게 만들었다. 일일 정비는 소대장의 주관하에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2중대의 분위기가 그렇지 않았다. 다른 중대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대원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일하는 한 여름에도 소대장들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행정실 컴퓨터 앞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빨며 행정 업무를 봤다. 행정 업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면 그래도 할 말은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은 촌각을 다투는 일도 아니었을뿐더러, 일일 정비 시간 전에 충분히 다 끝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처음엔 이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가 한, 두 달 지나서야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소대장이 장비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일분일초가 급박한 전시 상황에서 전차가 고장 나 멈춰 섰을 때 뭘 할 수 있겠나? 소대장이 일일 정비를 주관하지 않는 것이 전차 부대의 심각한 병폐임을 깨달았지만 그때는 이미 나 또한 조직의 시스템에 완전히 물들어버린 후였다. 중대장님이라도 나서서 초임 소대장들을 주차장으로 보냈어야 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주차장에서 온 몸에 흙먼지와 기름때는 뒤집어쓰고 일하는 소대원들이 늘 마음에 걸렸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위대한 사람은 이런 환경 속에서도 오랜 관습에 물들지 않고 조직을 바꿔나갔을 테지만 나는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장교는 누구나 인정해주는 명예로운 직업이지만 나는 내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내가 한때 장교였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충분히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떤 현상을 바라볼 때 그 현상의 원인을 한 가지로 간추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대장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타성에 젖어 썩을 대로 썩은 조직의 문제도 있지만 분명히 개인의 문제도 있다. 장교 숙소에서 선배 장교들과 맥주 한 잔 하며 이 주제로 이야기한 것이 기억난다. 학군 장교들은 대부분이 2년 4개월의 의무 복무만 마치고 군을 떠나기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성에 경직된 조직 분위기가 더해져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차피 전역할 건데 대충 하자.'

'아니, 좋은 방법이 이렇게나 많은데 일처리를 왜 이렇게 해야 하는 거야?'

'아오, 짜증 나. 그냥 시키는 대로 대충 끝내버리자.'


책임을 회피하고, 무언가를 대충 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임에도 우리는 공공연하게 그렇게 말했고, 또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나 2중대 선임 소대장이셨던 서봉교 중위님은 생각은 달랐다. 선배는 개인이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며 후배 장교들을 부드럽게 나무라셨다. 선배님은 '직업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골자는 이러했다. 단기로 군생활을 하든, 장기로 군생활을 하든 지금 현재 나라의 봉록을 받고, 조국을 수호하는 군인인 이상 매사 책임감 있게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망치로 뒤통수를 후드려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이토록 자명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니. 웃긴 건 이렇게 충격을 받고도 내 행동에는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전역하는 그날까지 책임을 회피했고, 그럴 수 없는 일이 있다면 대충 끝내버리는 식이었다. 날 이렇게 만든 조직을 아무리 원망해봐야 내 무의식이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 선배가 해줬던 직업관 이야기는 이후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직업이 가진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지난 군생활을 만회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금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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