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꿈 / 육군 장교 (2012. 3 ~ 2014. 6)
교육 장교 임무를 수행하며 군 생활에 대한 미련이 완전히 사라졌고 나는 새로운 꿈을 찾아야 했다. 호주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이 무렵이었다.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고, 영어 실력을 키우고 싶었고, 그 와중에 어느 정도 돈까지 모으고 싶었다. 해외에서 일을 하며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라는 제도는 이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완벽한 제도였다. 전역 후의 일을 계획하며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국방부의 시계가 느리다고는 하지만 초침과 분침은 쉬지 않고 움직여 어느덧 2014년이 되었다. 동기들은 전역을 앞두고 취업 준비를 하느라 분주해졌다. 사병들은 전역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들어오는 학군 장교는 전역하고 나면 달리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동기들이 여기저기 지원서를 접수하는 동안 나도 호기심에 두 군데 정도 지원서를 넣었다. 군대라는 거대 조직을 경험하며 내가 회사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이미 명확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대기업에서 1년 정도 일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간절함을 가지고 지원해도 모자랄 판에 '안되면 말고'식의 태도로 취업에 임하니 성과가 있을 리 없었다. 한 군데는 1차 서류까지는 통과했고, 다른 한 군데는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아무런 노력도 안 했으니 아쉬워할 것도 없지만 괜스레 기분이 나쁜 것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었다. 무의미한 이력서 내기를 거기서 멈추었는데, 그것이 의도된 '결정'이었는지 '포기'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취업에 대한 희망을 접음으로써 호주로 떠나는 것이 더 명확해졌다.
2014년 5월 말에 마지막 훈련이라고 봐도 무방한 대대 전술 훈련을 끝마치고 나니 그제야 전역을 한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훈련이 종료되었다는 무전이 들리던 순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정보 과장이었던 동기 승연이와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싱글벙글했다. 수년이 흘렀는데도 이 순간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그때의 기분이 꽤나 강렬했던 것이 분명하다.
대대 전술 훈련이 끝나고 교육 장교 업무를 후배에게 인수인계하기 시작했다. 곧 2주 간의 긴 말년 휴가를 가기 때문에 그전까지 인수인계가 이루어져야 했다. 업무를 하나씩 인계할 때마다 그간 마음을 좀 먹던 짐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느낌이었다. 후임 교육 장교에게 딱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이 내가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기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평화로운 일상 속에 6월 30일 전역 날짜는 그렇게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