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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목 May 19. 2022

좋은 사람 찾는 걸 멈춰선 안 돼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서

한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34년의 '정현태'라는 서사에 다른 인물들보다 늦게 출현하였지만 비교적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정현태는 필자의 본명이다.) 이 친구와는 내가 31살 때 만났으니 햇수로는 3년이 조금 넘었지만 함께 들이킨 술의 양은 다른 누군가와 함께 들이킨 양보다도 훨씬 많고, 함께 나눈 대화의 양이나 그 농도 또한 오래 알고 지내온 친구들의 그것만큼이나 방대하고 짙으니 참 특별한 친구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친구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오늘은 이 친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인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언젠가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라는 주제로 이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다. 친구는 오랜 시간 품어온 보물이라도 꺼내놓듯 조심스럽게 '관계'라고 말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저자로 유명한 채사장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라는 책을 이 친구는 권했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책을 읽었다. 친구는 이 책을 보며 울었다고 했고, 나는 그 눈물의 의미를 책을 읽는 내내 곱씹었다. 이후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또한 '관계'가 되었고, 아마도 죽을 때까지 다른 어떤 단어도 이 단어가 내 인생에서 차지하고 있는 굳건한 왕좌를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다. 관계는 그렇게 내 삶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가 되었다.


이제와서는 이 친구에게 이 단어가 왜 그렇게 중요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에게 있어 이 단어가 중요한 이유와 친구의 그것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꽤나 확신한다. 자, 그렇다면 왜 관계인가?


인간의 가치는 서로를 연결하는 '관계' 때문에 그 빛을 발한다. 아무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시커먼 공간에 혼자 있는 사람을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을 때만이 나는 아들이 되고, 동생이 되고, 친구가 되고,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삶이 주는 본질적 허무에 빠져있을 때조차 내가 관계하고 있는 이들을 떠올리면 어떻게든 기운을 차리고 다시 한 발자국 내딛게 된다. 내 삶은 말 그대로 '나의' 삶인 것 같지만 때론 촘촘하게, 때론 헐겁게 이어져있는 관계들로 하여금 '우리의' 삶이 된다. 내가 수줍게 건넨 꽃 한 송이에 상대방의 볼이 먹기 좋게 익은 복숭아색으로 바뀌었을 때 어떻게 이 삶이 온전히 나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나?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특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 누군가에게 크든, 작든,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명료한 사실이다. 이 사실에 대해서 잠깐이라도 진지하게 고민을 해본다면 꽤나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과장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나의 태도나 행동,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나의 세계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체계를 세운 몇몇 관계들을 예로 들어보겠다.


첫째, 첫사랑 그녀. 이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나의 꿈은 공무원이 되어서 퇴근 후 좋아하는 게임을 실컷 하다가 잠드는 것이었다. 부잣집 딸이었던 이 친구를 만나고는 꿈이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커졌다.(부잣집 딸내미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 한 사람을 위해 성공하고 싶었던 욕망은 그 목적이 원대해져 지금은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명으로 바뀌었다. 그녀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녀와의 관계를 통해 나는 알을 깨고 나왔다.


둘째, 캐나다 임상심리학 교수 조던 피터슨. 20대 후반에 유튜브를 통해 만나게 된 조던 피터슨. 그는 지나치리 만큼 감성에 중독된 나의 세계에 이성이라는 해독제를 가지고 등장했다. 감성이라는 보기 좋은 껍데기 안에 숨겨진 본질, 즉 이성을 나는 그때부터 좇기 시작했다. 이성은 내가 세상을 좀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감성의 증폭은 빨간 것이 있다면 그것이 더 빨갛게 보이도록 했지만, 이성의 증폭은 빨간 것이 있다면 그 안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파란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감성과 이성은 모든 것이 그러하듯 적절하게 융합되었을 때만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기에 지속적으로 그 균형을 유지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셋째, 서두에 언급했던 친구. 이 친구는 나의 삶이 글자 그대로 '나의' 삶이 아니라 여러 관계로 오밀조밀하게 형성된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이제 관계는 내 삶의 기저를 받치고 있는 주춧돌이 되었다. 나의 핵심 가치가 된 것이다. 결국, 말장난 같지만 관계(우정)를 통해 관계(사전적인 의미)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이밖에도 무수히 많은 관계들이 나를 변화시켰고, 오늘날의 나를 구성하고 있다. 이런 관계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나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살과 뼈는 물리적으로 나를 구성하고 관계는 관념적으로 나를 구성한다. 관계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다시 친구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친구는 좋은 사람 찾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대단히 훌륭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하나라도 배울 수 있는 사람, 대화의 농도와 깊이가 같은 사람, 좋은 것이 있다면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 그는 이런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도 현관을 나설 것이다. 그에게는 이것이 허무와 고통으로 점철된 이 세상에 맞서기 위해 '의미'의 방벽을 쌓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정현태'라는 벽돌이 그가 세운 철옹성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세운 철옹성의 일부를 이 친구가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의미로 무장하여 고통과 허무로부터 나를 지켜줘서 고맙다고.


나의 스승이자 친구인 현진이와, 어느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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