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보험업 도전기 7

by 정현태

이맘때쯤 내가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티가 꽤 났었나 보다. 본부장님이 나를 호출하셔서 '마케팅이사 도전 그룹'에 계속 있을 것이냐 물으셨다. 마케팅이사는 한 해에 2000만 원 이상의 실적을 올린 사람에게 주어지는 직책이었고, 본부에서는 자체적으로 도전 그룹을 만들어 26년에만 30명 이상의 마케팅이사를 배출해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나는 신입인데도 불구하고 초반에 보여준 패기 때문인지 그룹에 속할 수 있었다. 본부장님은 사람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고, 나의 고통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룹에 속해 있든, 그렇지 않든 언제나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에 그룹에서는 일단 빠지겠다고 본부장님께 말씀드렸다. 빈말은 아니었다.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이 일에 적응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 날 저녁에는 지난번에 동료 선생님의 상담을 도와주셨던 지점장님께서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셨다. 지점장님께서는 요즘 내가 많이 힘들어 보인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솔직히 그렇다고 답했다. 지점장님은 여러모로 나를 위로하셨고, 때론 날카로운 말로 나를 꾸짖기도 하셨다. 어떠한 방식이 되었든 지점장님은 분명 따듯하셨다. 나는 예의상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나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대화가 통하지 않고 일방적임에 답답함을 느꼈다. 지점장님은 일을 관두더라도 세 달은 최선을 다해보라 조언하셨고, 나는 그렇게 해보겠다고 답했다.


나는 정말 궁금하다. 할 수 없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떻게 최선을 다해 고양이를 돌볼 수 있나? 이 시기 나는 보험이라는 시스템 자체에 회의가 깊어지고 있었고, 보험 상품을 최선을 다해 팔라는 요구는 내게 가치가 크지 않은 물건을 지인을 포함한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해 팔라는 요구와 같았다. 결론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일이 지독하게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든 일을 계속하기 위해 보험 상품 중에 내가 소신껏 팔 수 있는, 그러니까 충분히 괜찮은 상품이 있는지 다각도로 살폈다. 살펴보니 저축 목적으로 가져가는 종신보험과 애초에 저축성으로 만들어진 연금보험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가족을 책임져야 할 가장에게 사망 보험금이 보장되면서, 목돈이 필요한 경우 해약하더라도 원금까지 보전되는 종신보험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한창 돈 버는 시기에 차곡차곡 납입하여 노후를 준비하는 연금보험이라면 가치가 있지 않을까? 결론은 '아니다'였다.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보험이란 시스템에서 큰 가치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것은 전적으로 나 개인의 의견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보험 덕분에 생계를 이어갈 수 있고, 어떤 보험설계사는 이러한 사실에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허나 '정현태'라는 한 개인은 보험에서 어떤 본질적인 가치를 느낄 수 없다. 그게 전부다.


이 일은 그만두어야겠다고 확신한 순간은 친누나를 만났을 때다. 누나가 하나 가입해 주겠다며 저축 성격의 보험 몇 가지를 준비해 가져와보라고 했고, 나는 한 주간 나름의 준비를 해 누나를 만났다.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도 계속 회의감이 들었는데, 누나를 만나 상품에 대해 설명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치밀었다. 나는 누나에게 말했다. '누나, 그냥 가입하지 마라.' 상대방이 원한다면 모를까 자신이 좋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품을 가족에게 팔 수 없었다. 그건 명백한 사기였고, 한 사람을 수단으로 삼는 것이었다. 진심으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누나는 안 그래도 하나 해줘야지 하고 부담을 느끼고 있었는데, 하지 말라는 나의 말에 안도한 듯 보였다.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속이 시원했다. 물론 현실적인 고민은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전에도 한 번 해봤다. 고민은 고민일 뿐, 삶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아가며 하늘은 늘 내게 필요한 것을 준비해 둔다. 두렵지만 두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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