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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여행한 사람 - 김강민

by 정현태

강민이 형과의 인연은 2012년에 시작되었으니 올해로 꽉 찬 10년이 되었다.



함께 한 세월이 관계의 깊이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지만, 형과의 관계는 함께 한 세월과 정확히 비례하여 깊어지고 있다. 형과 처음 만난 것은 2012년 강원도 홍천의 어느 전차대대에서였다.


형은 나보다 1년 먼저 군생활을 시작한 선배 장교였다. 나는 전차 소대장으로 군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형은 대대 교육장교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처음에 어떻게 교제가 시작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처음 몇 마디 대화에서 어떤 접점을 발견했고, 그렇게 서로 친밀감을 쌓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사건 하나가 터졌다. 형이 부여한 임무를 내가 성의 없이 수행했고, 형은 나를 호되게 꾸짖었다. 나는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형을 원망했다. 그동안 꽤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형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형의 행동은 공과 사를 구분한 멋진 행동이었음에도 어렸던 나는 분개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빈틈없이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형에게 반항했다. 형도 이런 나의 불순한 의도를 읽었는지 빈틈없다고 생각한 임무에서 애써 결점을 찾아내 한 번 더 나를 꾸짖었다. 우리의 관계는 그때 완전히 어그러졌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나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형이 말해주길 며칠 뒤 내가 음료수를 사 와 사과했다고 한다. 그렇게 끝나버릴 운명은 아니었던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주말에는 늘 형과 함께 놀았다. 형이 아니었다면 장교 숙소에서 주야장천 게임만 하면서 의미 없이 시간을 허비했을 것이다. 차가 있었던 형 덕분에 그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도 꽤나 자유롭게 노닐었다. 특히 형과 함께 한 2013-2014년 겨울은 여전히 내 인생 최고의 겨울로 기억되고 있다. 부대 인근 스키장 시즌권을 끊고는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시간만 있으면 늘 형과 함께 스키장에 갔다. 스키장에 오고 가는 차 안 분위기, 눈 부신 설산, 스키를 타고 슬로프를 내려갈 때의 그 짜릿한 쾌감, 그리고 부대로 복귀해서 함께 마셨던 맥주 한 잔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던 그해 겨울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형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던 것이고, 형이 아니었다면 아마 똑같은 기회가 있었어도 그만큼 즐겁지 않았을 것이다.


KakaoTalk_20220806_222859721.jpg 2013-2014시즌 비발디에서 강민이 형과 함께


해를 거듭하며 형과의 관계는 끊임없이 깊어져 이제는 단순히 '우정'이란 단어로 이 관계를 묘사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든다.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형은 내게 있어 가족과 다름없는 사람이 되었다. 내 심층은 워낙 겹겹이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어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형에게는 비교적 표현이 잘 된다. 작년에 죽을 만큼 힘들 때도 형이 생각나 이른 아침 전화해 전화기를 붙잡고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엉엉 울었다. 죽을 정도로 힘들 때 생각난 사람이 형이었다는 사실이 형이 내 삶에 얼마만큼 중요한 사람인지 잘 말해주는 것 같다.


형은 가만 보면 좀 사기 캐릭터이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형이랑 같이 다니다 보면 형보다 잘 생긴 남자를 찾기 어렵다. 또 얼마나 똑똑한지 형이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놀라서 박수를 친 적이 여러 번 있다. 형은 내게는 부족한 지혜를 잔뜩 가지고 있는 지혜의 보고(寶庫)이다. 하나님은 어쩜 이렇게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들을 곁에 둘 수 있도록 해주셨는지...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번 2박 3일의 강원도 여행 동안 형이 운전을 하느라 고생을 참 많이 하셨다. 운전을 좀 거들었어야 했는데 형 차가 전기차라 형이 독박 운전을 했다. 나는 밤잠을 자주 설쳐 형이 운전할 때 옆에서 계속 자거나 졸았다. 형은 내가 이걸 쓰고 있는 지금도 옆에서 묵묵히 페달을 밟고 있다. 여행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제 곧 신탄진 IC에 도착하면 각자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형은 언제나, 또 어디에서나 내게 은은한 에너지를 보내왔고, 앞으로도 그리할 것이다. 존재 자체로 내 삶을 지탱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나도 형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겠다.


글을 쓰느라 편의상 '형'이라고 했지만 사실 내가 형을 부르는 호칭은 '과앙님(과장님, 군대에서의 호칭)'이다. 형은 편하게 부르라고 한 지 오래지만 도저히 입에서 형이라는 호칭이 나오질 않는다. 몇 번을 시도해봤지만 어색하게 느껴지고, 무엇보다도 '과앙님'이라고 부를 때의 온기와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모쪼록 과앙님의 행복을 응원한다. 과앙님은 대충 사는 인물이 아니기에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과앙님이 좋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다. 과앙님이 결혼하는 날, 내 애인과 다름없는 과앙님을 형수님께 행복한 마음으로 인계하고 싶다. 마무리를 어떻게 할지 몰라 계속 끄적이고 있다. 그만 쓰련다. 과앙님... 알러뷰.


KakaoTalk_20220806_214927713_04.jpg 2박 3일의 강원도 여행을 마치고 헤어지기 직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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