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외인의 똥간을 치웠던 육군 장교 이야기

꿈꾸는 나무 / 학생 (2005. 3 ~ 2012. 2)

by 정현태


장교가 되는 것은 오랜 꿈이었다. 군인으로서 대단한 목표가 있어 갖게 된 꿈은 아니었다. 당시 아버지는 육군3사관학교를 졸업하시고 야전에서 소령으로 예편하신 후 예비군 중대장을 하고 계셨는데, 매일 아침 칼 같이 다려진 전투복과 눈 부시게 빛나는 전투화로 무장한 채 현관을 나서는 아버지는 10대 소년인 나에게 그저 선망의 대상이셨다.


선배 육군 장교이셨던 아버지


장교를 양성하는 기관이나 제도 중에서 최고로 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육군사관학교였기에 수험생이었던 나는 당연히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목표로 혼심을 다해 학업에 매달렸다. 살면서 뭔가를 그렇게 열심히 했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대한민국 정상급 대학교에 입학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1차 필기시험에서 턱 없이 부족한 점수로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살면서 처음으로 '실패'라는 것을 해봤다. 노력을 안 했다면 어떻게 합리화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그 실패가 꽤나 아프게 다가왔다.


장교가 되는 것이 정말 간절한 꿈이었다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유일의 목표였다면 재수를 결심했겠지만 재수를 안 한 걸 보니 그렇게 간절하진 않았나 보다. 오히려 나중에는 육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진 것을 하늘에 감사해할 정도였다. 그 이유는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육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서 낙방한 뒤 얼마간은 의기소침해 있었지만 또 금방 기운을 되찾았다. 점수는 수능 당일까지 올라 결국 수능에서 역대 최고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최상위 대학교에 지원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점수였고, 어중간한 수도권 대학에 가느니 연고지에 있는 국립대나 다니자 싶어 충남 대학교에 지원했고, 결국 입학했다.


대학교 생활은 끔찍했다.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불리는 대학교의 수업은 철저한 주입식이었던 고등학교 수업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었다. 교수님들은 강단에서 열심히 목청을 높이셨지만 울림이 없었고, 신입생들은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무언가 열심히 받아 적기에 바빴다. 죽을힘을 다해 공부한 결과가 고작 이런 수업을 받기 위함이었나 짙은 회의감이 들었다. 1학년 1학기에는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던 습관이 있어 전액 장학금도 받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회의감이 극심해져 2학기에는 그냥 자퇴하고 군대나 다녀온 뒤 기술이나 배울까 진지하게 고민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우연히 장교 양성 제도 중 하나인 ROTC(학생군사교육단)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흔히 학군단이라고 부르는 이 제도는 대학교 3~4학년 기간 중, 방학을 이용해서 4번의 군사 훈련을 받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하는 제도였다. 거의 꺼져가던 오랜 꿈의 불씨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장교로서 리더십을 키울 수 있고, 일반 사병보다 돈도 훨씬 많이 벌 수 있다는데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유일한 단점이라고는 복무 기간이 2년 4개월로 일반 사병보다 몇 개월 더 길다는 것인데, 어차피 사병 대비 넉넉한 월급을 받고 하는 군생활이라 그것이 아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적성에 맞으면 의무 복무 이후에도 직업 군인으로 군생활을 계속 할 수 있기에 문제 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난 학군단에 지원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대부분의 대학 동기들은 1학년을 마치고 사병으로 입대했지만 나는 학군단 지원을 위해 학교에 남았다. 내가 생각하기엔 여러 장점이 참 많은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학군단 제도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까닭에 경쟁률이 그렇게 높지 않았고, 무난하게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정식 입단은 다음 해 2월에 예정되어 있었지만, 그전에 일반인 신분을 벗고 '군인'이라는 신분을 얻기 위해서 기초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다. 겨울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약 3주 간의 엄격하게 통제된 훈련을 받았다. 입소 첫날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던 눈과, 짧게 밀린 머리카락 사이를 뒤적이던 시원한 공기와, 훈련소로 향하는 버스 안의 무거운 공기가 마치 오늘 일과 같이 선명하다. 훈련은 혹독했지만, 지쳐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나를 쓰러뜨리지 못하는 고난은 결국 성장의 동력일 뿐이었다. 3주 간의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쯤에는 신체 에너지가 절정으로 치닿아서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img002.jpg 기초 군사훈련 수료 기념사진


그렇게 학군단에 입단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고, 드디어 2010년 2월에 학군단을 상징하는 푸른 제복을 입고 정식으로 학군단에 입단할 수 있었다. 모집에 응시하고,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입단까지 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에서 군인이라는 업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든 훈련에서 꽤나 우수한 성적을 받았고, 집단 속에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무엇보다 제복을 입은 내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나의 조국을 위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이 일이 나의 천직 같이 느껴지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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