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나무 / 학생 (2005. 3 ~ 2012. 2)
그렇게 본격적으로 대학교 3학년, 학군단원으로서는 1년 차 생활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였을 때만 해도 1년 차 장교 후보생은 2년 차 선배들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된 생활을 해야 했다. 군인이니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더라도 더러는 과한 부분들이 있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1년 차 후보생은 모자를 쓸 수 없었다. 군사학 강의가 있는 목요일, 금요일에는 반드시 제복을 입어야 했고, 그 외에는 일반 대학생처럼 자유롭게 의상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모자만큼은 허용되지 않았다. 물론 개인의 선택으로 학군단에 입단한 것이지만 한참 멋 부릴 20대 초반이었고, 어떻게든 군인 티를 벗기 위해 짧은 머리를 감추고 싶었던 사람들이 나를 포함하여 많이 있었다. 모자를 못 쓰게 하는 합당한 이유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냥 나때도 그렇게 했으니 너희도 그렇게 해라는 식의 지시는 너무나도 불합리했다. 대부분의 이러한 지시들은 '정보작전장교'라는 직책을 가진 2년 차의 한 선배로부터 내려왔는데, 당시 동기들 사이 그분의 악명이 자자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분의 생김새와 말투가 선명하게 기억날 정도다. 선배는 뭐 하나 잘하는 것이 없으면서 그저 직책을 이용하여 후배들을 못 살게 굴었고, 폭언과 폭력을 일삼으며, 그 모든 것들을 즐기는 듯하였다. 말과 권위의 힘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된 시기였다. 명령을 하고, 지시를 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자격이 있어야 하는데 그 선배는 그렇지 않았다. 나도 그 선배에게 몇 번의 폭언을 들었지만 어느 것 하나 와닿지 않고, 허공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그의 말에는 힘이 없었다. 그래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1년 차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여러 불합리한 지시에 어쩔 수 없이 순종하며 내가 2년 차 후보생이 되었을 때는 매사에 본보기가 되는 선배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참 우연한 일로 2년 차에 정보작전장교 직책을 맡게 되었다. 당시 가장 가깝게 지낸 동기가 '대대장'이라는, 이를테면 반장과 같은 직책을 맡게 되었고, 그의 추천을 받아 거의 반강제로 정보작전장교가 된 것이다. 앞서 설명했지만 학군단 내에서 정보작전장교의 주된 임무는 1년 차 후배들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막강한 권위를 가진 자리였고, 그만큼 후배들이 무서워하는 직책이었다. 처음엔 중책을 맡게 된 것에 부담을 느꼈지만 1년 차 때 고통을 주었던 악폐습을 철폐하고, 올바른 선후배 문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서면서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동기들 사이에서는 개구쟁이로 통하던 나였지만 정보작전장교라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이상 위치에 맞게 행동해야 했다.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실로 맞는 말이었다. 한 학기 동안 장난기를 최대한 감추고, 일거수일투족 후배들의 귀감이 될 수 있도록 행동했다. 위엄 있게 행동하며, 부지런히 자기 관리도 했다. 실효성 없는 관습들은 없애고, 좋은 문화를 새로 정착시키려고 노력했다. 등 떠밀려 맡게 된 직책이었지만, 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직책을 내려놓고 나니 지난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꼈구나 하는 것이 실감되었다.
한때 자퇴를 고민할 정도로 대학 생활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이 어려웠지만 학군단에 입단하면서는 다시 목적이 생기고, 의미가 생겼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중고등학생, 대학교 신입생이 있다면 학군단 지원을 진지하게 고려해보기 바란다. 내가 살면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결정 중에 하나는 단연코 장교가 되겠다고 한 것이었다. 월급을 일반 병보다 많이 받는 것도 큰 장점이지만 20대 초, 중반에 나만의 병력을 지휘할 수 있는 경험은 돈 주고도 못 하는 경험이다. 수백만 원짜리 리더십 강의를 듣는 것보다 직접 부하들을 지휘해보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전역한 학군 장교들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도 다 그러한 이유이다.
2년 차 후보생 때 삶을 크게 바꿀 뻔했던 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여러 훈련을 거듭하며 군인이라는 업에 확신이 든 나는 직업 군인이 되기 위해 '군장학생'이라는 제도에 응시한다. 이 제도는 합격자에 한하여 대학교 4년 간의 학비를 전액 지원하고, 그 기간만큼 군생활을 더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쉽게 말하여 군장학생으로 발탁되면 기존 의무 복무 2년 4개월에 학비를 지원받은 기간인 4년을 더 하여 총 6년 4개월을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한다. 의무 복무가 아니라 직업으로 군인을 생각하고 있다면 더없이 좋은 제도였기 때문에 큰 고민 없이 지원했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당시에는 적잖이 아쉬워했지만 시간이 흐르고는 군장학생에 발탁되지 않는 것을 하늘에 감사했다. 이 전 장에서는 육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진 것이 다행이라고 했고, 이 장에서는 군장학생에 발탁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하고 있다. 이유야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이것은 운명적인 사건이었다.
그렇게 학군단의 꽃이라 불리는 2년 차가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겨울 방학은 훈련이 없어서 임관 전에 좀 푹 쉬려고 했는데 앞서 한 번 등장한 적이 있었던 '대대장' 직책의 친구가 또 한 번 나를 반강제로 중요한 임무에 끌어 들였다. 입단 예정인 2년 후배들의 기초 군사훈련을 지도하는 임무였다. 피 같은 3주의 방학을 아무런 대가 없이 헌신하는 것이었다.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현했다면 임무를 맡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나도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못 이기는 척 수락을 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업무적으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후배들을 양성하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군인이라는 직업이 적성에 참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군대에는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할 때 태극기를 하강하는 의식이 있는데, 이때 연병장에 있는 모든 군인들은 하던 것을 멈추고 국기가 하강하는 동안 국기를 향하여 경례한다. 하강하는 태극기에 거수 경계를 할 때마다 온몸의 피가 끓는 듯했다. 이 젊음을 조국을 위해! 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인가? 난 내가 뼛속까지 군인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