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꿈 / 육군 장교 (2012. 3 ~ 2014. 6)
2012년 2월 28일, 이명박 전 대통령 주관 아래 합동 임관식이 거행되었다. 5천 명이 넘는 장교 후보생들이 오만 촉광의 다이아몬드 계급장을 달고 소위로 임관하는 행사였다. 가족 등 관계자까지 포함하면 2만 명이 넘는 엄청난 인원이 참석하는 의식이었고, 더군다나 한 나라의 수장인 대통령이 그 의식을 주관하다 보니 엄격한 통제 아래 이른 아침부터 예행연습이 진행되었다. 오랜 예행연습과 추운 날씨 때문에 빠르게 지쳐갔지만 그래도 꿈에 그리던 장교가 될 수 있음에 행복했다. 바람에 나부끼는 태극기 앞에서 조국에 충성을 맹세하며 덩달아 내 마음도 넘실거렸다. 나는 그렇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육군 장교가 되었다.
나는 기갑 병과 소위가 되었다. 여기서 병과란 일종의 '전공' 같은 것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탱크라 부르는 '전차'를 운용하는 병과로, 해당 병과로 분류될 시 많이 걷는 일이 없다고 하여 동기들 사이에 인기가 꽤 좋았다. 모든 소위들은 임관 후 야전 부대에 배속되기 전까지 약 4개월에 달하는 기간 동안 각자에게 분류된 병과에 대한 기초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나는 장성에 있는 상무대에서 기갑 병과 교육을 받았다.
육군 장교가 되어 조국을 수호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오랜 꿈은 상무대에서 교육받던 첫 달부터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실망한 부분은 평가에 대한 체계였다. 분명 누군가는 군에 뼈를 묻겠다는 열정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할 텐데 평가 간에 시험 감독들은 제 할 일을 하지 않았고, 동기들은 서로 커닝하기 바빴다. 군에 큰 뜻이 없는 동기들이 꿈나라를 헤매며 베갯잇을 적실 때, 몇몇 동기들은 훈련으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도 평가 준비에 힘썼지만 다음 날이면 전 날 단잠을 잔 동기들이 그들의 성과를 가로챘다. 군에 뜻이 있었던 나는 처음 몇 주 간은 성실히 훈련에 참여하며 평가 준비에도 열을 올렸지만, 얼마 못 가 관두었다. 엄격한 위계가 있는 군이라는 조직에서 그 위계를 나누는 평가 시스템이 낡을 대로 낡았다면, 열심히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성적 우수자에게 수여되는 표창도 일찍이 내정자가 있는 듯했다. 성적과는 무관하게 장기 복무를 희망하는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수여하거나, 군 조직 내부에 연줄이 있는 이들에게 표창이 돌아갔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독야청청 고고함을 지키기보다 이 썩은 조직에서 함께 썩어가는 길을 택했다. 그것이 편했기 때문이고, 이 결정은 아마 내가 죽는 그날까지 부끄러움으로 남을 것이다.
상무대에서의 생활이 끝나갔다. 공부하면서 나라의 녹을 받았던, 다시 오지 않을 참 평온했던 시기였다. 이 시기 군에 대한 오랜 꿈은 산산조각이 났지만 끝과 시작의 경계는 늘 맞닿아 있는 법, 내 마음 한 편에서는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겠다는 생각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난 누군가의 지휘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