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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목 Sep 17. 2022

소울메이트 찾기




이쯤 살아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래서 누굴 만나야 하는 지도.


부모님께서는 완벽에 가까운 결혼 생활을 하셨고, 그걸 보고 자란 까닭에 나 또한 결혼 생활에 대한 기대가 높음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스무 살에 난생처음 누군가를 사랑하며 온 세상이 별천지가 되었지만 뭇 연인들이 그러하듯 어느새 그 사람과 나도 서로를 물어뜯고, 할퀴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는 걸 한 번도 못 보고 자란 나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왜 다퉈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서른 해를 조금 더 넘게 살아내고서야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기저에는 무의식적인 자기애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가 여태 해로하실 수 있었던 것은 두 분 모두 스스로를 기꺼이 지우고, 그 자리에 상대방을 채워 넣어 완전한 합일을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 중에 하나이며,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떻게 두 분의 합작이 '나'인지는 나도 모르겠고, 부모님도 모를 정도로 나란 사람은 유별난 구석이 있어 두 분이 이루신 것을 다름 아닌 내가 꿈꾸는 것이 어쩌면 허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자기를 두드리는 바로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 나의 영혼의 반쪽을 기꺼이 잘라 내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 연인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 글을 써보기로 했다. 상상은 자유니까. 


순서가 갖는 의미는 없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쓸 것이다.




1. 물심양면으로 표현을 잘한다.

게리 체프먼의 『5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을 있다. 이 책은 사랑을 표현하는 데 다섯 가지 방식이 있고, 사랑을 느끼는 지점이 개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육체적 접촉, 봉사가 저자가 말하는 사랑의 다섯 가지 방식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놀라운 사실은 내가 '선물'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느낀다는 것이다. 뼛속까지 자본주의로 물들어버린 걸까? 선물의 양이나 질을 떠나 사랑하는 이가 내 생각을 하며 구매한 무언가를 건넬 때 깊은 사랑을 느낀다. 그다음은 봉사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아내가 남편을 위해 찌개를 끓이고, 반찬을 만드는 것 등 상대방을 위한 모든 행위가 봉사다. 그래서 나는 물심양면으로 사랑을 받고 싶은 사람인 것이다. 아, 이 남자, 벌써부터 피하고 싶다.


2. 나의 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

나는 사랑에 빠지면 쉽게 중심을 잃는다. 세상은 더 이상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구라는 축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맴도는 달처럼 나의 관심은 온통 상대방에게 쏠린다. 나를 지우고, 나를 태우는 방식으로 상대방을 사랑하게 된다. 이런 희생적인 사랑을 내가 달가워하여 끝까지 지속할 수 있다면 문제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성향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이 되면 나를 잃고, 내 주변을 잃는 일을 견뎌내지 못한다. 문제는 그럼에도 멈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를 완전히 태워 한 줌 재로 바꾸고서야 멈춰 선다. 나는 나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함에도 일단 사랑을 시작하면 상대방에게 그런 시간을 요구하지 못한다. 이것이 모순이다. 내가 가진 치명적인 양면성. 나를 완전히 내어줌과 동시에 완전한 나를 원하는 것. 그래서 나의 소울메이트는 나의 지나친 사랑을 멈춰 세울 줄 알아야 한다. 


3. 내면이 강해야 한다.

나의 중심을 잡아주기 위해선 내면이 강한 사람이어야 한다. 나와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 Introvert 성향의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인가? 내가 나의 동굴로 들어갈 때 그도 그의 동굴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나는 고독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나의 연인이 고독한 시간을 견뎌내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함께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강해서 연인의 곁을 쉬이 떠나지 못하는 나를 고독 속으로 떠밀 줄 아는 사람이라면 더 좋겠다. 만약 그리 해준다면 깊이 사랑받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완전히 충전하고 돌아와서는 또 나를 태우는 무식한 방법으로 나의 연인을 사랑할 것이다.


4. 세상 물정을 잘 알아야 한다.

난 사회의 중심에서 멀어져 있는 사람이다. 내 사주를 봐주신 한 선생님께서는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틀림없이 중이 되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나는 웃었다. 실제로 산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이 삶 가운데에서도 자주 하기 때문이다. 세상과 관계 맺는 일이 힘들다. 정치는 무엇이며, 경제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나의 보잘것없는 능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뿐이다. 그밖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사계절 피고 저무는 자연과 인사하며, 이따금씩 생각에 잠기는 일이 내 일과의 대부분이다. 가정을 세우는 일에는 대강이 없어야 하는데 나는 자신이 없으니 나의 연인이 그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돈은 내가 열심히 벌어오겠다.


5. 부모님을 지극하게 생각해야 한다.

부모님은 내가 이 삶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존재다. 나의 연인이 나의 부모를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 만약 그리한다면 나의 영혼을 팔아서라도 연인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나 또한 연인의 부모를 나의 다른 아버지와 어머니로 여겨 지극히 보살필 것이다. 구시대적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소용없다. 남들 하나, 둘씩 가진 보물이 내겐 가족이고, 부모님일 뿐이다. 


6. 멈춰있지 않아야 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영혼의 격이 같았을 지라도 세월이 흐르며 그 격이 달라지는 것은 큰 슬픔이다. 그리되면 대화는 상대방에게 닿기도 전에 번번이 부서질 것이다. 영혼과 육체를 돌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태생이 멈춰있을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어떻게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할 것이고, 이 삶을 더 깊이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 이것이 나를 숨 쉬게 하는 양분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친구를 찾는 이유는 대화할 상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친구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연인을 만나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그러니 나의 연인도 나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7. 요리를 잘해야 한다.

오랜 꿈이었다. 요리를 잘하는 배우자를 만나는 것. 어머니는 일평생 가족의 삼시 세 끼를 손수 만들어 먹이는 일을 삶의 과업처럼 여기셨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밥 한 끼를 거르는 일이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은 그래서 내게 깊은 사랑을 의미한다. 설거지를 비롯한 다른 집안일은 내가 다 할 수 있다. 그 대가로 나는 연인이 정성스레 만 계란말이가 먹고 싶다. 


8. 웃는 게 예뻐야 한다.

나는 웃음 콜렉터다. 주변 사람들의 웃음을 훔치는 일이 좋다. 한 장, 한 장 모아 앨범으로 정리하고 싶은 심정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웃음을 상상하면 행복하다. 그래서 웃음은 나의 아킬레스건을 후비는 예리한 칼날이다. 웃는 게 어여쁜 사람들을 보면 나는 맥이 탁 풀려버린다. 거기서 해를 만나고, 바다를 만나고, 들판에 핀 꽃들을 만나고, 갓난아기를 만난다. 미소가 아름다운 연인을 만난다면 소주 한 잔에 그대 미소 한 입, 또 소주 한 잔에 그대 미소 한 입, 그렇게라도 이 삶은 버텨지겠지.


9. 기준을 강요해선 안 된다.

기준이 없으면 더 좋겠지만, 있어도 그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옳고 그른 것은 애초에 없고, 있어도 시대적으로 변할 뿐이다. 삶의 진리라도 알고 있는 양, 막무가내로 상대방을 자신의 입맛에 맞추려고 하는 사람과는 함께 하고 싶지 않다. 아니, 함께 할 수 없다. 절대! 물론 더 좋은 생각들은 있다. 이를테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같은 것. 연인이 내가 늦게 잔다고 잔소리를 한다면 그건 사랑이다. 방 좀 치우라고 하는 잔소리도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달콤한 말이다. 그러나 중절 수술 합법화에 반대하는 나를 보고 '오빠는 여성 인권은 나 몰라라 하는 가부장제에 쩌든 사람이야.'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나를 투명하게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이상이다. 글쓰기 과정이 참 즐거웠다. 달콤한 꿈을 꾼 기분이랄까. 나의 내면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앞으로 이성을 바라볼 때는 확실한 기준을 가지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에 더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또 적어봐야겠다. 그렇게 한 줄, 두 줄 적다가 50번까지 나오고 나의 나이는 40살이 되었더라, 뭐 그런 엔딩이면 좀 난처한데? 이상은 이상일뿐이다. 위에 나열한 아홉 가지를 다 갖춘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있긴 있겠지, 근데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뿐이지.


그래서 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자격을 만들어 놓으면 내가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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