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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목 Nov 05. 2022

일태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

나는 무언가를 억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끈기가 없다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겠지만, 서른네 번째 해를 거의 다 보낸 지금에서는 이제 아는 것이다. 난 그냥 이렇게 태어났다는 것을. 나는 일에 즐거움이 있고, 보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수억 원의 연봉을 준다고 해도, 태산과 같이 높은 명예와 권력을 준다고 해도 즐겁지 아니한 일은 할 수가 없다. 그냥 그렇다. 


그런데 천직이라 생각한 선생 일이 언제부터 즐겁지가 않았다. 그만두어야 하나 심히 고민을 했던 시기가 있었다. 아무 이유가 없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싶은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아이들을 괴롭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공부를 억지로 시키고, 시험 기간이라도 되면 주말까지 아이들을 강제로 불러내 공부를 시키는 것이 어느 순간 너무 힘이 들었다. 공부를 좋아서 하는 학생이 얼마나 있겠으며, 시험 기간에 주말까지 불러내 공부시키는 것은 업계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었음에도 책상에 앉아 열심히 펜대를 굴리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고등학생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중학생들까지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 사회가 원망스러웠다. 시험 기간에 하는 공부들이 아이들의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라도 된다면 그런대로 합리화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시험공부를 한 사람들은 알잖는가? 시험장을 나오는 순간 시험 기간 내내 열심히 암기한 내용들이 대부분 휘발된다는 것을 말이다. 기가 막힌 날씨에 강의실에 처박혀 큰 도움 안 되는 공부를 하는 아이들도 불쌍했지만,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 자신도 불쌍해서 이 일이 두 배로 힘들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 때문에 이 일이 다시 그런대로 할 만해졌다.


아이들은 우리 학원이 아니어도 어차피 다른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되어있다. 아이들이 어딜 가든 힘들 것이 예정되어 있다면 우리 학원을 가장 덜 힘든 곳으로 만들면 되겠구나! 


그렇다. 내가 학원 문을 닫는다고 해서 아이들의 사교육이 멈추는 것이 아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학원에서 공부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다른 학원에 가게 되면 훨씬 더 긴 시간을 들여 많은 내용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사실 지금도 우리 학원이 비교적 편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학원이 수업 시간도 짧고, 숙제도 적다는 사실을 다른 학원에서 온 학생들이 말해줘서 알게 되었다. 이쯤에서 어쩔 수 없이 자랑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그 정도만 해도 다른 학원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다. 괜히 수업 시간을 짧게 가져가고, 괜히 숙제를 적게 내주는 것이 아니다. 내 방식이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에 그리 하는 것이다.


이리 생각해보고, 저리 생각해보니 아이들을 다른 곳에 맡기는 것보다 내가 품고 있는 것이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가장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생각보다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리고 욕심도 생겼다. 이 공간을 더 즐겁게 만드는 것! 가기 싫은 곳, 부담되는 곳이 아니라 가고 싶은 곳, 마음 편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천천히 고민을 해보고 계획을 세워서 내년부터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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