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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목 Mar 02. 2023

깊고 진한 시간의 향기를 찾아서

한병철 작, 『시간의 향기』를 읽고


시간이 향기를 잃고 있다. 삶에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의미를 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행위가 삶을 가속시키고, 삶은 의미를 더욱 잃게 된다. 가령 누군가가 살을 빼는 것을 목표로 했을 때, 즉 의미 있는 일이라고 여겨 마침내 목표에 다달았다고 했을 때 그는 무언가 성취했음에 뿌듯함을 느끼지만 이내 거기가 종착지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몸무게를 유지하느라 고군분투하고, 또 다음 목표를 향해 자신을 채찍질한다. 의미는 종결되지 않은 채 끊임없는 과정 위에 놓이게 된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의 현재에서 또 다른 현재로 바삐 달려갈 뿐이다." 현재가 미래로 연결되지 않으니 시간이 파편화된다. 


저자는 "시간은 지속성을 지닐 때, 서사적 긴장이나 심층적 긴장을 획득할 때, 깊이와 넓이를, 즉 공간을 확보할 때 향기를 내기 시작한다. " 라고 말하며 시간의 향기는 곧 시간의 지속성에서 나온다고 이 책에서 일관되게 역설한다. 시간이 파편화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고, 종결되어 있는 상태. 시간이 면면히 이어질 때에 거기서 시간의 향기가 난다고 저자는 말하는 듯하다. "이 세계는 ... 한 폭의 완성된 그림 같은 것이 아니다. 사건들은 이제 더 이상 정지된 평면이 아니라 계속 흘러가는 선 위에 배치된다." 저자는 이런 말도 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역사 이전의 시대는 분명히 삶이 한 폭의 완성된 그림처럼 느껴질 때가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 한 사람의 삶이 한 책의 목차처럼 분절된 시간을 갖고, 그 시간들이 서사적인 연대를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는 모양. 한 사람의 삶이 태어남과 동시에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이런 삶이 권태롭지 않겠느냐 반문하겠지만 저자는 "지속성과 반복의 상태에서 이탈한 이 시대야말로 권태에 취약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지속의 시간에서는 오히려 권태를 권태로 느끼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권태, 즉 지루함은 현대적인 개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 자극에서 다른 자극으로 옮겨가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 삶이 계절에 따라 순환하던 농업 사회 시기에 권태를 느낄 틈이 있었을까? 삶이 '당연한 순서'에 의해 진척될 때에 거기에는 권태가 낄 자리가 없는 것이다! 저자의 통찰이 놀랍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간의 향기를 되찾을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사색적 삶'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머뭇거리며 '한발 물러서는' 멈춤 속에서 비로소 전진하는 일의 과정에 폐쇄되어 있던 '정적'의 소리가 들려온다." 속도를 늦춘다고 해서 사물이 그 자체의 본질 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완전히 멈췄을 때에 사물은 오롯이 그 본질을 들어낸다. 달리는 기차 안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겠다. 멈춰있을 때만 보이는 그것! 결국 활동하는 삶을 멈추고 '나'로 돌아가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도 여전히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사색적 삶'을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그것도 속세와 관계하면서 말이다. 방법론에 대해서는 확실히 더 고민이 필요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세상에 대해 늘 놀라운 통찰을 제시하며, 또 그 문장들의 섬세함이 무척이나 뛰어나 책 읽는 시간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순간에는 시간의 달콤한 향기가 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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